최근, 단아하고 우아함의 상징이었던 톱여배우들이 거침없이 망가지면서 열연을 펼쳐 화제가 되고 있다. 톱스타 고현정과 장진영 등이 바로 그들. 삼성가의 며느리에서 10년만에 SBS 드라마 ‘봄날’로 화려하게 연예계에 복귀한 고현정은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 ‘3류 성인잡지 기자’로 변신했고, 영화 ‘싱글즈’와 ‘청연’ 등으로 쿨하고 당찬 이미지를 과시해오던 장진영은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 거침없이 욕설을 퍼붓는 술집 아가씨로 분한다. 이들의 파격적인 연기 변신, 과연 시청자들과 관객들에게 얼마나 통할까.
“영화, 드라마에서 대책없이 망가져요”
“욕 연기, 너무 자연스러웠나요?”
“완벽한 몸매, 쭉쭉 빨아주고 싶은 입술~ 뇌쇄적인 눈빛~”
“망가지는 캐릭터 너무 좋아요.”
지난 12일, 쉐라톤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의 제작발표회에서 보여준 시사회에서 고현정이 거침없이 내뱉는 극중 대사다. 10여분 가량의 짧은 내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화면속 고현정의 모습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오는 20일부터 방영되는 MBC 수목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 3류 성인잡지 기자 역할을 맡은 고현정. 드라마는 처음 시작부터 보는 이의 시선을 확 사로잡을 만큼 강렬했다. 극중 상상속의 야릇한 장면, 이혁재와 고현정은 조선시대 한복 의상을 입고, 이혁재는 기생인듯 보이는 고현정의 엉덩이를 과감히 주무르고, 여기에 한술 더 떠 고현정은 야릇한 탄성과 표정을 지으며, 옷을 벗어 어깨라인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어지는 또 한 장면. 한 사무실속 거울 앞에 서 있는 고현정. 가슴과 허리라인을 강조하며 “완벽한 몸매~”, 입술을 한껏 모으고 “쭉쭉 빨아주고 싶은 입술~”,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거울을 쏘아보며 “뇌쇄적인 눈빛~”을 외치는 그녀, 과연 고현정이 맞을까 눈이 의심스러울 정도다.
고현정은 이미 영화 ‘해변의 여인’에서 자유분방한 카피라이터로 분해 해변에서 만난 낯선 남자와 원나잇스탠드를 즐기는 여성의 캐릭터를 보여준 바 있다.
워낙 노출이 많기로 유명한 홍상수 감독의 영화라서 고현정이 이 영화에서 노출연기를 선보이지 않을까 기대를 했었지만, 정작 고현정은 옷을 모두 입은채 김승우와 베드신을 펼쳤다.
하지만 영화에서 고현정의 노출보다 더 강렬한 인상을 남겨줬던 것은 바로 고현정의 ‘망가짐’이었다. 술에 취해 낯선 남자와 뜨거운 하룻밤을 즐기는가 하면, “똥차”, “지랄~!”, “같이 잠을 자야 애인이지~” 등 서슴없이 욕설을 내뱉고, 자유분방한 행동을 보여준다. 이렇게 영화를 통해 고현정의 망가짐을 한번 경험했지만,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 보여지는 고현정의 망가짐은 여전히 생소하고 낯설다. 하지만 맛깔스럽게 잘 어울리는 것 또한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인기 작가와 감독보고 고른 작품?
톱스타에서 10여년 동안 삼성가의 며느리로 살아온 그녀. 연예계에 복귀하면서부터 수없이 많은 언론의 집중 스포트라이트를 받았고, 방송사로부터는 최고대우를 제공받았다. 이어지는 화장품과 가전제품 CF역시 ‘황후’, ‘최고’, ‘상위 1%에 대한 이미지를 강조하며, 우아하고 럭셔리한 이미지를 가꾸어왔다.
이랬던 그녀가 거침없이 망가지는 역할들을 연이어 선택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영화 ‘해변의 여인’을 두고 사람들은 고현정이 ‘홍상수’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선택했다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고현정 역시 마찬가지. 우연히 극장에서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라는 영화를 보고 홍상수 감독의 팬이 되었다는 그녀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가 해외에서 더욱 유명하다는 점을 들어, 고현정이 해외 영화제에 욕심을 냈을 수도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물론 고현정은 “영화에 처음 데뷔하면서 어떻게 그런 욕심을 내냐”며 손사레를 쳤고, 분명히 “그런 의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이에 대해 의심의 눈길을 보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번 드라마를 선택한 이유는 뭘까. MBC 수목드라마 ‘여우야 뭐하니’는 지난해 50%의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국민드라마로 인기를 끌었던 ‘내이름 김삼순’ 김도우 작가의 작품이다. 보통 드라마 성패는 작가의 비중이 매우 높게 작용한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번 김도우 작가의 차기작은 누구나 탐낼 만한 작품이기도 하다. 이 드라마에 같이 출연하는 배우 안선영 역시 김 작가의 작품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로 선택했음을 인정했다.
고현정은 여자 주인공의 캐릭터가 마음에 들어서 작품을 선택했다고 밝혔지만, 김 작가의 작품이었기에 선택했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
또한 고현정이 연달아 선택한 두 작품은 이 대책없이 망가지는 것뿐만 아니라 자유로운 ‘성(性)’을 표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 비슷한 공통점을 갖는다. 고현정은 이에 대해서 “좀더 대중들에게 다가가는 느낌”, “(남들 위에 있지 않고) 이제야 땅을 밟고 서 있는 느낌”이라는 표현을 통해 ‘삼성가의 며느리’ 고현정이 아니라 대중들 곁에 있는 ‘배우’로서의 길을 가고 싶은 마음을 밝혔다. 영화 ‘해변의 여인’은 관객들에게 저조한 성적표를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 ‘여우야 뭐하니’에서는 어떤 평을 받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
여주인공 망가져야 사랑받는다?!
쿨하고 똑똑한 커리어 우먼의 이미지가 강했던 또 한명의 여배우, 장진영. 영화 ‘싱글즈’에서도 자신의 주장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영화 ‘청연’에서 한국최초의 여류비행사를 연기하며 똑부러진 이미지를 과시해오던 장진영은 최근 개봉한 영화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에서는 술집아가씨로 분해 관객들을 찾는다.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부분은 ‘씨X’, ‘쌍X아’ 등 장진영의 거침없는 욕설. 장진영에게 적나라한 욕설을 퍼붓게 만든 김해곤 감독 역시 “장진영씨는 욕에 대한 습득 속도가 너무 빠르고, 천재적이었다”고 설명할 정도였다. 또한 극중 장진영은 술집 아가씨를 표현하기 위해 목과 어깨라인이 시원하게 드러난 의상을 주로 입고, 헝클어진 머리에 줄담배는 기본, 폭탄주, 욕설, 폭행까지 서슴지 않았다.
특히 장진영은 극중 김승우와 내연의 관계를 그의 부인에게 폭로한 이후, 김승우에게 날려차기를 당하고, 주먹으로 얼굴을 강타당하는 등 몸을 사리지 않고 수위높은 폭행 장면을 소화해내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내기도 했다. 장진영은 지난 2001년 영화 ‘소름’, 2003년 ‘싱글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면서 연기력까지 인정받고 있는 배우다. 또한 가전제품, 화장품 등 각종 CF까지 섭렵하면서 CF의 여왕이라는 타이틀까지 얻었다.
이렇게 영화와 CF를 통해서 세련되고, 똑부러진 이미지를 추구하던 그녀가 이렇게 서슴없이 망가지는 역할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진영은 이 영화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시나리오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지만, 영화 관계자들은 여기에 동조하지 않았다. 한 영화 관계자는 “최근 스크린과 브라운관에서는 여자 주인공들이 망가져야 사랑을 받는 게 대세”라며 “관객들과 시청자들의 수요를 충족시켜주기 위해 이런 작품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런 영화계의 흐름을 감독이나 배우들도 거스를 수 없을 것이라는 게 관계자의 전언. 즉, 장진영 역시 결국 관객들의 수요를 의식한 선택이었을 것이라는 것.
이어 그는 “요즘처럼 먹고 살기 힘든 시기에 멀리에만 있어 보일 것 같았던 톱스타가 한없이 망가지는 모습을 보며, 서민들이 알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 같다”며 “이런 분위기 때문에 요즘 영화계와 방송쪽은 여성들의 망가지는 캐릭터가 더욱 늘어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김민주 kimm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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