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원이 SM 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CF 모델 유민호(22)의 손을 들어주면서 ‘연예인 불공정 계약’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공정위는 “10년 이상 원고의 연예 활동에 관한 모든 권리를 피고에게 귀속시켜 계약 위반시 투자금의 5배, 예약 이익금의 3배를 물도록 한 조항은 쌍방의 권리·의무에 지나친 불균형이 있다”면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미 SM엔터테인먼트는 2001년 HOT가 해체되면서 ‘불공정 거래’ 문제로 논란을 일으킨바 있고, 2002년 공정위로부터도 시정권고를 받은 적이 있어 또 한번 대내외적 이미지에 타격을 입게 됐다. 하지만 SM엔터테인먼트 뿐만 아니라, 지난해 5월 논란을 일으켰던 개그맨들의 ‘노예 계약’ 파문 등에서 알수 있듯, 아직도 이런 불공정 계약이 연예계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현재 소속사와 ‘노예계약’을 맺고 있다는 인기그룹 A를 통해, 연예인-기획사간의 실체를 파헤쳐 본다.
“우리 계약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일 뿐이다. 처음 신인들은 무조건 소속사와 불공정 계약을 하게 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이름만 대면 쉽게 알 수 있는 ‘인기그룹 A’의 한숨 섞인 한탄이다. 지난 16일, 신인 CF 모델이 SM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불공정 거래’에 대해 승소했다는 소식을 접한 직후, 바로 기자는 자신들도 역시 ‘노예계약’이라고 밝히는 인기그룹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은 “연예계 안팎에는 아직도 수없이 많은 신인들이 소속사와 ‘노예계약’을 맺고 있다”면서 “자신들 역시 그 피해자 중의 하나”라고 밝혔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계약서 초본이 워낙 옛날 것이어서,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옛 관행대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처음 연예계에 데뷔하는 신인들은 대부분 수익에 대한 분배를 2(연예인) : 8(기획사)로 나누는 등 상당히 불리하게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대부분의 신인들은 처음에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기획사의 요구조건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는 것.
게다가 신인이 스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어 보이면, 보통 5년에서 10년까지 어처구니없이 전속계약을 맺는 것은 기본, 그 밖에 말로 설명할 수 없이 눈에 보이지 않는 부당한 계약을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A그룹은 “연예인의 입장에서는 계약은 무조건 짧게 하는 게 좋다”면서 “하지만 연예인의 입지가 올라갈수록 소속사는 더 많은 돈을 벌 수밖에 없기 때문에 어떤 기획사도 짧게 계약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렇듯 5~10년 장기 전속계약에 대한 매니저들의 입장은 연예인 당사자들과 사뭇 달랐다. 10년 경력의 매니저 C씨는 “반대로 생각해서 아무것도 없는 신인을 데뷔시키는데, 홍보비만 적게는 1억원 많게는 3억원이 든다”면서 “1,2년 전속 계약을 했는데, 조금 뜨고 나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죽 쒀서 개 주는 꼴’과 뭐가 다르냐”고 심경을 밝혔다.
이어 그는 “특히 여자들 같은 경우는 몸매 관리, 스킨케어, 네일케어, 의상, 메이크업, 헤어, 차 유지 비용 등 진짜 돈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기본으로 5년은 계약해야 소속사에서도 투자한 돈을 뽑을 수 있다”고 토로했다.
이어 그 연예 관계자는 “잘 아는 선배가 유명 가수 M양을 신인때부터 발굴해서 키워놨는데, 뜨자마자 더 큰 회사로 옮겨 버렸다”면서 “오빠 동생 하던 친한 사이였기 때문에 특별한 계약서 없이 구두계약으로 잘해보자고 했다가 돈만 날리고 파산하는 경우도 봤다”고 밝혔다.
즉, 신인들이 처음에는 어떻게 계약해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스타만 되게 해달라고 매달리다가 조금만 인기를 얻고 뜨게 되면 다른 곳으로 가버리는 경우가 종종 생기기 때문에 ‘5년, 10년 전속 계약’, ‘노예계약’이라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이라고.
기획사 대표 “신인들 적자만 낳는다”
그렇다고 모든 신인들이 소속사와 불공정 계약을 맺는 것은 아니다. 일부 연예인들의 경우에는 신인때부터 5:5 혹은 6(연예인):4(소속사)로 계약을 해서 활동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최근 기자와 만난 유명 연예기획사의 대표 B는 “신인과 5:5 혹은 6:4로 계악을 했을 경우 기획사에서 돈을 버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인기 탤런트 K를 데리고 있던 B 대표는 “인기 연예인 K가 벌어들인 3억원중에서 2억원을 K에게 주고 1억원으로 K에게 딸린 로드매니저, 코디네이터 등의 월급과 차량 유지비 등을 쓰고 나면 아무 것도 남는게 없다”면서 “그밖에 홍보비 등 까지 따지면 K를 데리고 있어봤자 회사에 도움 되는게 없다”고 토로했다.
결국 B 대표는 “신인들이 벌어들이는 수입이 너무 적어 적자가 난다”면서 “소속 연예인들과 결별을 선언한 후 매니지먼트 사업을 부득이하게 축소했다”고 밝혔다. 상황이 이렇기 때문에 기획사들은 신인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면서 계약을 계속하고 있는 것.
앨범 10만장 이후부터 수익계산
A그룹은 그들의 현소속사와 5년 동안 5장의 앨범을 내는 계약을 맺었다. 앨범 수익 역시 10만장이 팔린 이후인 10만장부터 한 장에 100원씩의 인세를 받게 된다. 만약 20만장이 팔리면, 1,000만원의 수익이 나게 되는데, 이 금액을 또 멤버들끼리 나누어 가지면 형편없이 적은 금액이 된다.
이에 대해 한 음반제작 관계자는 “요즘같이 음반시장이 장기침체되고 있는 시기에 10만장의 음반이 팔리는 것은 ‘초대박’에 가까운 일”이라며 “3~5만장만 팔려도 대박으로 친다”고 10만장 이상 음반이 팔리는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밝혔다.
보통 앨범에 대한 인세는 몇 십원에서 많아봤자 몇 백원이기 때문에 가수들이 이로 인해 얻는 수익은 얼마 되지 않는다. 때문에 음반 판매로 수익을 내기보다는 기타 행사 활동으로 돈을 벌고 있는 게 가수들의 현실이다. 앨범을 제작하고, 방송을 통해 얼굴을 알린뒤 각종 행사 등에서 돈을 벌어들이는 구조로 되어 있는 것.
우리나라 가수의 수익구조가 그러하기 때문에 A그룹 역시 앨범수익이 아니더라도, 각종 행사를 통해 충분히 수익을 창출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에 대해 A그룹은 “회사에서는 자신들이 돈을 버는 게 싫어 일부러 행사를 잡지 않았다”며 “5,000만원을 준다는 행사에, 1억원을 줘도 안간다며 거절해 버렸다”고 주장했다. 즉, 행사에 대해서는 5(연예인) : 5(기획사)로 계약을 했기 때문에, A그룹이 비교적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연예계의 한 관계자는 “가끔 연예인들을 길들이기 위해 행사를 뛰지 못하게 하는 경우를 보기는 봤다”면서 “보통 신인들이 돈을 벌면, 3배의 위약금을 물고 더 좋은 회사로 옮기려고 하기 때문에 돈을 못벌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회사 입장에서도 이익이 될텐데 수입이 많은 행사를 못하게 하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요즘에도 그렇게 악덕한 회사가 있냐”고 혀를 내둘렀다.
A그룹, 소속사 상대 소송준비
또한 A그룹은 1집 앨범이 좋은 반응을 얻어서 인기가 높아져도 인세는 5년내내 계약대로 100원씩 밖에 못 받는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대해 음반 제작 관계자는 “보통의 경우 처음 신인일 때 제작비 등 투자를 많이 하게 되니까 불리하게 계약을 하더라도 앨범이 잘 팔리고 해당 가수의 인기가 높아지면 대우를 높여주는 게 당연한 처사”라며 “연예인과 기획사도 사람인데 그렇게 해야 오래 같이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했다. 즉 A그룹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사실이라는 것.
이 A그룹은 얼마전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소송 중 기획사 대표의 “다시 잘해보자”는 제의를 믿고, 소송을 취하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소속사 대표의 태도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A그룹은 “다시 소속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든 결말을 낼 것”이라고 비장한 각오를 밝혔다. 또한 A그룹은 “우리가 겉보기에는 연예인이지만, 일반인들보다도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빛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면서 “결국 이런 생활을 오래 견디는 사람만 살아남게 되는 것 같다”고 안타까운 심경을 밝혔다.
# “가족에게까지 해갈까 두렵다”
연예인A씨는 소속사의 사장이 소위 말하는 조폭 출신이라 무서워서 계약조건이 불리해도 말 한마디 못 꺼낸다고 밝혔다.
계약 조건이 해당 가수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되어 있는 것은 물론, 다른 회사에서 “3배의 위약금을 물어주겠다. 우리 회사로 오라”고 나서도 쉽사리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는 것. 그 이유는 바로 사장의 은근한 압박 때문.
사장은 “계약을 위반할 경우 너를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공공연히 엄포를 놓았는데, 그 사장이 실제 조직폭력배 출신이기 때문에 그 말이 장난처럼 들리지 않는다는 것. 이어 연예인 A씨는 “위험을 무릅쓰고, 다른 회사로 옮길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가족에게까지 해가 미칠까봐 걱정돼서 못 움직이는 것”이라고 토로했다.
또 한명의 유명 가수 B씨 역시 계약이 끝나기 전에 ‘소속사에서 나오겠다’고 대표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산에 끌려가 묻힌 적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산속에 끌려가 얼굴만 내놓은 채 몸은 땅속에 묻혀 있었다는 것. 이 사건 이후로 같은 회사의 다른 연예인들은 감히 계약기간내 다른 회사로의 이동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 한다.
또한 가수에서 연기자로 변신을 선언한 연예인 C씨는 계약기간 3년 동안 이성친구를 사귀지 못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는데, 소속사 대표에게 걸릴까 마음을 조이며 살고 있다고 한다.
<민>
# 톱스타들 ‘귀족계약’ 성행
‘얼굴마담’하려면 11:0 쯤은 돼야
신인과 소속사간의 계약이 2:8 혹은 1:9로 ‘노예계약’이라고 불리는 것에 반해, 톱스타들은 정반대로 10:0 혹은 11:0의 ‘귀족 계약’을 맺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10:0(스타:소속사)으로 계약을 하는 경우는 중소기업의 소속사들이 A급 스타가 없을때, 이런 계약을 맺는다. 특별한 스타가 없는 중소 매니지먼트사일 경우 ‘얼굴마담’ 형식으로 톱스타를 영입해 해당스타에 대한 모든 일을 봐주면서 돌봐주되 한 푼도 받지 않는다.
대신 소속사는 스타로 인해 회사의 이미지와 인지도가 급상승 하는 것은 물론, 같은 회사 소속의 이름없는 배우들까지 덩달아 드라마나 영화에 ‘끼워넣기’가 용이해진다. 게다가 코스닥에 상장되어 있는 회사는 스타급 연예인의 영입으로 단숨에 주가가 폭등하는 효과를 얻기도 한다.
실제로 한 연예계 관계자는 “K스타를 영입하려고 최대한 높은 금액으로 계약조건을 내놓았으나, 결국에는 무산됐다. 나중에 알고보니, 10:0의 조건으로 중소 매니지먼트사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씁쓸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이밖에 톱스타의 경우 11:0의 계약을 맺는 경우도 있다. 이는 스타가 작품 활동을 할때마다 해당 소속사로부터 보너스를 받게 되는 경우로 즉, 공식적인 수입에 대한 ‘세금’까지 회사에서 부담하는 계약을 말한다.
신인들은 ‘노예계약’, 톱스타들은 ‘귀족계약’. 연예계의 이런 양극화 계약 관행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민>
김민주 kimmj@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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