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왜 욕하나” vs “할 말을 한 거다”
“대통령 왜 욕하나” vs “할 말을 한 거다”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6-01-04 09:57
  • 승인 2016.01.04 09:57
  • 호수 1131
  • 11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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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박·가박 논란 대구 현지 르뽀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박근혜 정부의 산실 대구에는 지금 진박(眞朴·진짜 친박), 가박(假朴·가짜 친

박), 용박(用朴·박심을 이용하는 사람) 논란이 한창이다. 친박에도 등급이 있다며 ‘성골-진골-6두품’ 이야기까지 나돈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구의 대표적 정치인이었던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직에서 내치고 ‘배신의 정치를 심판해 달라’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 달라’고 호소한 이후부터다.

특히 일부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출사표를 던지며 속속 대구로 모여들자 시민들도 누가 진박인지 가박인지, 용박인지에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단순한 흥미 차원일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총선에서 투표를 하기 위해 감별을 하기도 한다.

연말연시 분위기에 서서히 접어들던 12월 29일에 찾은 대구의 총선 민심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정말 ‘진박’을 찾아서 지지를 해야겠다는 ‘적극 행동파’다. 개인택시 기사 A씨는 “승객들이 진박, 가박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일단은 청와대나 정부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도운 참모들이 국회에 들어가면 대통령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많다”고 귀띔했다.

상인 B씨(여)는 “박 대통령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느냐. 일 좀 하려고 하면 정윤회 사건, 성완종 사건이 터지고, 지금부터라도 일을 하려면 제대로 된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대통령이 믿고 일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제일”이라고 했다.

식당 주인 C씨는 “유승민 의원에 대한 평가는 연령대별로 엇갈린다. 연세가 드신 분들은 ‘누구 때문에 자신이 세 번이나 국회의원을 했는데 자기만 살려고 대통령을 욕하고 다니느냐’고 한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은 ‘할 말을 한 거 아니냐’고 편을 든다”고 말했다.

진박, 가박 논란이 대구에서 나오는 데 대해서 자존심이 상한다는 의견도 들을 수 있었다.
지역 언론인 D씨는 “솔직히 그런 말이 나오는 데 대해 기분이 좋지 않다. 대통령이 찍어서 내려보내면 무조건 표를 줄 것이란 생각은 지역 유권자를 우롱하는 말이다. 다른 지역에서 대구를 어떻게 보겠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회사원 E씨도 “정말 대구의 민도(民度)를 무시하는 발상이다. 청와대 참모 출신이라고 무조건 찍을 것이란 생각 자체가 한심하다. 자칫 역풍을 맞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박 대통령 본인이 그런 의도를 갖고 있지는 않다고 본다. 주변에서 호가호위하는 친박계 일부에서 ‘박심’을 파는 것이다. 지역 유권자 대부분은 다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역 정가에서 오랫동안 활동한 F씨는 “사실 청와대 참모 출신 가운데 대구로 내려온 사람 중에는 일을 제대로 못해서 일찌감치 나온 사람들도 있지 않느냐. 그들이 청와대의 밀명을 받았다는 식으로 얘기하고 다니는 건 박 대통령을 욕되게 하는 일”이라고 쏘아붙였다.

새누리당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이 맞붙은 대구지역 최대 격전지 수성갑의 민심도 양 갈래로 나뉘어져 있었다. 지역 언론의 여론조사 결과 아직은 김부겸 전 의원이 큰 차이로 김문수 전 지사에 앞서고 있다.

시민 G씨는 “전남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이 승리했듯이 수성갑에서 의미있는 선거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면 시민 H씨는 “그래도 결국 투표장에 가면 손이 새누리당 후보 쪽으로 가지 않겠느냐”며 “김부겸이 사람은 좋지만 늘 싸우기만 하는 야당 후보에게 표를 주고 싶지는 않다”고 말했다.

결국 여러 명의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서로 진박이라고 주장하는 진풍경이 이어질수록 유권자들이 식상해 하면서 역풍이 불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부터 대구에선 지역의 행토 일꾼을 뽑자는 ‘토종 TK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김문수-김부겸의 승부는 뚜껑을 열기 전까지는 여전히 예측불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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