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현지 르포 ‘유승민 고립 작전 노골화’
대구 현지 르포 ‘유승민 고립 작전 노골화’
  • 류제성 언론인
  • 입력 2016-01-04 09:52
  • 승인 2016.01.04 09:52
  • 호수 1131
  • 1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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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공천의‘보이지 않는 손’누구?
▲ photo@ilyoseoul.co.kr

곽상도 전 수석 등 선거사무소 개소 돌연 연기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친박계 ‘전략공천’에 목매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 대구에선 4·13 총선을 앞두고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청와대 참모와 내각 출신들이 ‘국회법 파동’ 때 유승민 의원 입장에 섰던 초선 의원들을 퇴출시킬 ‘자객’으로 속속 대구에 모여든 건 이미 잘 알려진 일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대구에 이상기류가 흐르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대통령 참모 출신들의 출마지역이 교통정리되는 모습이다.

대구의 새누리당 공천경쟁에 이상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건 공교롭게도 친박계 핵심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국회 복귀가 임박한 시점과 맞아떨어졌다. 최 부총리는 12월 21일 단행된 개각에 의해 후임 유일호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끝나면 여의도 정치판으로 돌아온다. 이와 때를 맞춰 대구의 공천구도가 다시 짜이고 있어 눈길을 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의 지역구였던 대구 달성군에 출사표를 던졌던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12월 29일 예정됐던 선거사무소 개소식을 연기하면서 여러 시나리오가 난무하고 있다. 곽 전 수석은 앞서 출마 기자회견을 하면서 ‘특명 받은 곽상도’라는 문구를 내걸어 마치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대구에 온 것처럼 인식되게 했다.

여의도로 돌아온 최경환

곽 전 수석은 사무소 개소식을 연기하는 이유로 국회의 선거구획정 지연을 들었지만 석연치 않다. 달성군은 선거구획정 대상 선거구가 아닌 까닭이다. 의문을 풀 수 있는 단서는 개소식 예정일 전날 달성지역에서 실시된 한 여론조사다. 주체가 불명확한 이 조사는 현역인 이종진 의원에 맞설 후보로 추경호 국무총리실 국무조정실장(장관급)을 내 세웠다.

추 실장은 대구 계성고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에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바 있다. 이 때문에 이종진 의원의 저격수로 곽 전 수석 대신 추 실장을 대체 투입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왔다.

곽 전 수석이 출마 기자회견을 할 때 대구 서구와 북구갑에 각각 출사표를 던진 윤두현 정 청와대 홍보수석과 전광삼 전 춘추관장이 나란히 참석해 대통령 참모 출신들이 스크럼을 짜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전 전 관장은 그 직후 북구갑 출마를 포기하고 경북 영양-영덕-봉화-울진 선거구로 방향을 틀었다. 울진이 고향인 그는 19대 총선 때 이 선거구 공천에 도전했으나 현역인 강석호 의원에게 밀려난 바 있다. 강 의원은 비박계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 대표의 중동고 후배로 핵심 측근이다.

정가에선 친박계의 설계자가 전 전 관장이 북구갑에서 도저히 지지율이 오르지 않자 이 지역을 제3의 인물에게 주고 전 전 관장을 강석호 저격수로 돌렸다는 말이 나돈다. 북구갑에선 김종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한동안 활동하다가 돌연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대구의 다른 선거구에서도 심상찮은 움직임이 포착된다. 특히 중-남구를 둘러싸고 여러 가지 소문들이 나돈다. 이곳의 현역은 국회법 파동 때 끝까지 유승민 의원 편에 섰던 김희국 의원이다. 중-남구의 예비후보들 가운데 확실한 ‘박심’(朴心·박 대통령 의중)을 등에 업은 것으로 파악되는 인물이 아직은 없다. 이 때문에 중-남구에 친박계의 지원을 받는 인물이 조만간 투입될 것이란 말이 파다하다.

당초 대구 동구갑에 출마할 것으로 알려졌던 정종섭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최근 들어 부쩍 선거구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도 중-남구 교통정리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 전 장관은 동구갑의 현역인 류성걸 의원과 경북고 57회 동기다. 류 의원과 정 전 장관, 그리고 또 한 명의 정치인 동기생이 얼마 전 만나 “꼭 친구끼리 싸워야 하느냐”는 말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진박 감별사’ 조원진 의원

친박계 핵심들의 유승민 의원 포위, 고립 작전도 점차 노골화되고 있다. 홍문종 의원은 이재만 전 동구청장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했다. 대구 동구을의 유승민 의원에게 도전장을 던진 이 전 청장은 원래 친박계가 아니다. 그러나 홍 의원은 “진실한 사람을 선택해달라는 대통령과 일할 사람은 이재만 후보다. 그가 진실한 사람이란 것을 여러분도 잘 알 것”이라고 추켜세웠다.

‘진박(眞朴) 감별사’를 자처하는 조원진 의원도 참석해 “제가 가는 곳은 모두 진실한 사람이 있는 곳”이라며 거들었다. 또 “박 대통령을 잘 도우라는 대구시민의 천명을 따르지 못한 사람이 있다”며 유 의원을 비판했다.

엄연히 같은 당 소속으로 원내대표까지 지낸 현역 국회의원의 지역구에 도전한 다른 인물을 응원하는 이 자리에는 역시 친박계인 이장우 대변인도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상황은 대구에서만 국한되지 않는다. 경북과 부산·경남은 물론, 수도권의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서도 본격적인 교통정리가 이뤄지는 징후들이 나타난다. 김무성 대표는 안대희 전 대법관,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을 만나 ‘험지 출마’를 설득하고 있지만 친박계는 오히려 안전지대에 대통령의 사람들을 꽂으려 하고 있다.

특히 친박계는 당헌·당규에 규정된 ‘단수추천제’와 ‘우선추천지역’을 근거로 이들을 경선 없이 전략공천으로 포진시키려 한다. 현역 의원들에게 절대 불리한 결선투표제의 확대 실시를 거세게 요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렇다면 친박계가 전략공천을 수단으로 대통령의 사람들을 20대 국회에 대거 진출 시키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여권 주변에선 ‘친박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라는 분석이 나온다. 총선을 통해 세력을 확장한 뒤 ‘김무성 대항마’를 띄워 박 대통령 후계자를 만들겠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안대희 전 대법관, 황교안 국무총리 등이 대입되고 있다. 이런 카드들이 여의치 않을 경우 홍문종 의원이 제기했던 이원집정부제 개헌에 의한 ‘반기문 대통령-친박계 총리’ 조합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런 구상의 막후에 최경환 부총리가 있다는 데 크게 이의를 제기하는 인물은 없다. 최 부총리는 그동안 내각에 몸담고 있는 관계로 공천구도를 짜는 일에 개입하기엔 한계가 있었다. 이 때문에 친박계의 구심점이 없는 상황에서 여러 사람이 나름대로 ‘박심’을 팔아 공천 초기 작업을 했다고 한다.

그 결과 한 선거구에 청와대 참모 출신들이 중복 출마하는 등 어수선한 상황이 얼마 동안 이어졌다. 이 때문에 진박, 가박, 용박 논란이 일면서 오히려 박 대통령에게 부담이 되는 일이 발생했다.

결국 여의도 정치에 복귀하는 최 부총리가 박 대통령의 돈독한 신임을 바탕으로 진박과 가박, 용박을 가려내는 교통정리를 새로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최 부총리 측은 “전략공천이 얼마나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함부로 ‘공천을 준다’며 이야기하고 다닐 수 있겠느냐. 정치 호사가들이 하는 말일 뿐”이라며 공천 조정설을 일축하고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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