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신년에 특히 ‘장사’가 잘 되는 곳이 있다. 바로 ‘점집’이다.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아 ‘앞으로의 1년’을 미리 점치고, 무속인의 발언에 따라 위험한 것을 피하는 등의 주의를 하기 위함이다. 때문에 연말 혹은 신년에 유명한 점집은 예약 고객들로 북적인다. 고객의 불안한 심리를 좋은 말로 위로하거나 위험한 행동을 미리 경고하는 등 점집의 긍정적 효과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무속인들의 사기 사건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 바 있어, 이에 대한 주의를 당부하는 목소리가 높다.
동자승이 시켰다며 여중생 성추행
새해 부적·굿값도 ‘부르는 게 값’
2014년부터 지난해 하반기까지 전 국민의 공분을 산 ‘세모자 사건’. 남편 A씨가 부인 B씨 및 이들의 두 아들에게 수년간에 걸쳐 성폭력을 행사한 데다, 가족들을 동원해 이들 세모자에게 변태적인 성행위를 강요했다는 게 사건의 중심내용이었다.
특히 남편을 중심으로 한 가해자들이 세모자를 성매매로 내몰기도 했다는 사실에 대중은 분노했다. B씨와 두 아들 간에도 강압적인 성행위가 이뤄졌다는 등 엽기적 내용의 이 사건은 연일 사회적 논란이 됐다. B씨는 남편을 포함, 총 45명을 성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세모자 사건엔 이들 외에 한 무속인도 관련돼 있었다. 목사였던 남편 A씨의 재산을 노린 무속인이 세모자를 사주해 거짓말을 하게 했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SBS의 시사교양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가 세모자 사건을 취재했고, 방영 뒤 검찰은 무속인과 B씨를 무고 및 무고 교사, 아동학대 등으로 기소했다. 재판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사회 여론은 무속인의 사기란 목소리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현재 이 무속인과 B씨는 기소된 혐의를 모두 부인하고 있다.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에서 열린 이들에 대한 첫 공판에서 무속인 측은 “B씨에게 허위 진술을 강요한 적이 없으며, 두 아들을 학대하거나 거짓 진술을 강요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B씨 역시 무속인의 사주 등을 모두 부인했다. 결과를 지켜봐야 알겠지만 세모자 사건이 결국 한 무속인의 자작극 아니냐는 여론이 높다.
사기 잇따라
이 사건을 계기로 일부 무속인들의 사기에 관심이 집중됐다. 이들이 점을 보러 온 손님들에게 사기를 치는 사건도 끊이지 않아, 이에 대한 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연말연시에 신년점을 보는 사람들이 많은 만큼, 일부 무속인들이 지나치게 많은 금액의 복비를 요구하거나 굿을 강요하는 행태에 경각심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최근 잇따라 확정된 일부 무속인들의 사기 사건에 대한 실형 선고도 이런 지적과 궤를 같이한다.
지난 16일 자신과 약 10년간 알고 지낸 지인을 속이고 굿과 부적 등의 명목으로 1억6000여만 원을 뺏은 무속인에게 징역 2년6월이 확정됐다.
이 날 대법원 2부(주심 김창석 대법관)는 이 무속인 C씨(55)에 대해 징역 2년6월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약 10년 전에 자신에게 점을 본 이후로 알고 지낸 피해자와 무속인 C씨. 피해자가 점차 C씨에게 의존하는 성향을 보이자, 이를 악용해 C씨는 지속적으로 피해자를 속여 돈을 뜯어냈다.
이 과정에서 C씨는 피해자의 몸에 신이 와 있다며 굿을 강요했다. 굿 값 명목으로 많은 금액의 돈을 요구했을 뿐더러, 피해자의 약점을 악용하기도 했다. 문제는 C씨 자체가 신내림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것. 통상 신내림을 받아야 굿을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C씨는 피해자에게 굿을 강요하면서 정작 본인은 굿을 할 능력도 없었기 때문에 이번 사건이 의도적이라는 지적이다.
이에 재판부는 “종교행위로서 허용될 수 있는 한계를 벗어났다”고 판시했다. 특히 C씨의 강요에 피해자는 은행뿐만 아니라, 제2금융권 대출도 받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억대에 달하는 돈을 요구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상담한 고객을 성추행한 사건도 발생했다. 지난 6월 한 무속인은 여중생에게 먼저 상담을 해주겠다고 꾀어낸 뒤, 이 학생의 몸을 만진 것. 결국 재판에 넘겨졌지만 이 무속인은 자신의 행위를 ‘동자신이 한 것일 뿐,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진술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무속인의 주장과 달리 “접신상태라면서도 당시 상황을 상세히 진술한다”며 징역 1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일부 무속인의 사기, 성추행 등 사건이 ‘무속인’이라는 직업적 특수성을 이용해 자주 일어날 수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상대 처지 악용하기도
특히 전반적인 경기상황이 악화일로인 시대환경을 악용해 일부 무속인들이 벌인 파렴치한 사례 때문에, 점집 방문 시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는 당부가 잇따르고 있다.
연말을 맞아 새해운수를 보기 위해 서울의 한 점집을 찾았다는 D씨(여·29). ‘내년엔 자신이 원하는 회사에 취직을 할 수 있느냐’는 D씨의 질문에 해당 점집의 무속인은 운이 좋지 않다며 부적을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다. D씨는 “그 무속인이 부적을 만들어 지갑 안에 넣어 다니라고 했다”면서 “문제는 부적 값이 시중보다 약 2배나 비싸서 놀랐다”는 것이다. 대개 부적의 가격은 약 10만 원 안팎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D씨가 간 점집의 부적은 20만 원 가량이었던 것.
D씨는 나중에서야 해당 점집이 높은 부적값을 부르는 것은 물론, 굿값도 수천에서 수억에 달하는 가격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물론 시중 가격보다 높은 금액의 부적값을 요구하는 것 만으로 ‘사기’에 해당되는 건 아니지만, 상대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인천에서 점집을 운영하는 60대의 무속인 E씨는 “진혼굿(영혼을 보내는 굿)이나 이런 굿들을 요즘 제대로 하는 무속인들이 과거보다 없다”며 “높은 금액의 돈만을 요구할 뿐, 실제로 굿을 한 적이 없는 무속인도 많다”고 말해 일부 무속인들의 사기 및 비도덕적 행태를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신년에 점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에서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