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대한민국 제1호 시민·회원운동단체인 ‘서울YMCA(기독교청년회)’가 극심한 내홍(內訌)을 겪고 있다. 서울YMCA 안창원(60) 회장의 비리를 폭로한 심규성 감사가 이사회로부터 제명을 당하자, 이에 반발한 직원들이 ‘안창원 회장 퇴진운동’에 본격적으로 돌입했다. 심 감사 제명과 관련해 서울YMCA 간사들은 이를 취소해달라며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냈다. 간사 모임은 이사회에서 심 감사에게 징계 이유와 절차를 알리지 않았고, 최소한의 해명 기회도 주지 않아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사회가 내부 비리를 고발한 심 감사를 제명한 것은 감사 직무 수행을 방해하고 내부 비리를 은폐하려는 것이라며 이런 비상식적인 행위가 서울YMCA의 명예를 훼손시키는 것이라고 밝혔다.


‘배임·보복인사’ 논란 조기흥 이사장 소환 초읽기
서울YMCA 간사 “내부고발자 제명 취소” 가처분 신청
심규성 서울YMCA 감사와 복수의 회원들에 따르면 이사회는 지난해 12월 22일 서울YMCA에 대한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심 감사의 제명을 의결했다. 지난해 10월 30일 심 감사가 안창원 서울YMCA 회장과 조기흥(84) 이사장 등을 업무상 배임(背任) 혐의로 검찰에 고발한 것이 서울YMCA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서울YMCA는 지난해 11월 20일 회원위원회를 열어 심 감사의 제명을 결의한 데 이어 12월 22일 정기 이사회에서 최종 의결했다.
앞서 심 감사는 서울YMCA의 재단인 서울기독교청년회유지재단이 2008년 경기도 고양시의 도시계획으로 일산 토지 일부가 수용돼 받은 보상금 30억 원을 고위험 금융파생 상품(주가연계파생결합증권·ELS)에 투자해 대부분 잃은 것을 두고 임원들을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서울YMCA와 서울중앙지방법원 제37민사부에 따르면 재단은 박모(50) 당시 감사가 투자관리사인 또다른 박모(51)씨를 소개하면서 투자 결정을 내렸다.
투자 초기에는 수익이 났지만 계약기간 만료일인 지난 2014년 말에는 원금을 대부분 잃고 불과 18만여 원밖에 남지 않았다. 이에 재단은 2014년 말 박씨와 박 전 감사 등을 상대로 원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냈고, 법원은 지난해 12월 29일 “투자한 30억 원을 반환하라”며 재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고양시에 수용된 토지가 재단의 ‘기본재산’이라는 점에서 새로운 문제가 불거졌다. 기본재산은 법인의 기초와 실체를 이루는 재산으로서 주무 관청의 승인 없이 함부로 사용할 수 없으며, 기본재산을 처분해 얻은 금액도 원칙적으로 다시 기본재산에 편입돼야 하기 때문이다. 주무 관청인 종로구청 관계자는 “재단이 기본재산을 고위험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을 승인한 적이 없다”면서도 “토지는 기본재산인데, 토지 보상금이 기본재산에 해당되는지는 더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심규성 감사는 “당시 투자가 불법(不法)으로 드러나면 112년의 역사를 가진 서울YMCA의 재단이 법인 취소까지 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법 제38조는 법인이 목적 이외의 사업을 할 때 주무관청이 법인 설립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서울기독교청년회유지재단은 당시 투자금이 기본재산에 해당됐는지에 따라 설립허가가 취소될 위기에 처한 셈이라는 게 심 감사의 주장이다.
이와 관련해 서울YMCA 관계자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투자는 당시 담당자들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문제가 되지 않도록 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심 감사의 제명 소식이 알려지자 그를 지지하는 ‘새로운 YMCA를 세워가고자 행동하는 간사 일동’은 “심 감사 제명을 결의한 회원위원회는 본인에게 통보조차 하지 않아 무효”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했다.
안창원 회장의 사퇴를 촉구했던 이들은 지난해 12월 24일 성명서를 내고 “안 회장이 하루 전인 23일 자신의 비리(非理)와 불법사건 등에 대해 책임을 추궁했던 실무 간부들에게 ‘보복인사’를 가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안 회장의 퇴직을 촉구한 간부의 상당수가 ‘좌천성 전보’등 부당한 인사를 당했으며, 모임을 주도한 여봉구, 신종원 두 본부장도 보복인사를 당했다”고 주장했다. 여봉구 위탁사업본부장은 레저사업본부장으로, 신종원 시민문화운동본부장은 위탁사업본부장 겸 망우청소년수련관장으로 전보됐다. 이에 대해 서울YMCA 측은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인사는 정상적인 정기인사일 뿐”이라며 선을 그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해 12월 24일 “지난 12월 19일 안창원 회장을 소환조사했다”며 “아직 조기흥 이사장은 부르지 않았으며 조만간 조 이사장도 불러 조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안 회장은 경찰 조사에서 “좋은 뜻으로 투자를 결정했지만 생각만큼 성과가 나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안 회장은 혐의에 대해서는 완강히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YMCA의 재정상태는?
서울YMCA는 서울 종로1가 회관을 비롯해 각 지회의 부동산, 국제청소년센터를 짓고 있는 고양시 땅 등 자산이 1조 원을 넘는다. 하지만 지난해 4월 직원 급여와 퇴직 적립금을 지급하지 못해 고발당하는 등 재정(財政)이 사실상 파탄난 상태다. 2008년 일산 청소년수련원 부지 매각(약 93억 원) 등 최근 7년동안 부동산 등을 매각해 들어온 돈이 350억 원이 넘었지만 직원 급여를 제대로 지급하지 못해 대출을 받았다. 이에 대해 심 감사는 30억 원 불법 투자를 비롯해 80억 원을 쓰고 중단한 일산 골프연습장 건설, 특정 기업에 일감 몰아주기(10년간 650억 원) 과정에서 공사대금 부풀리기 의혹 등 재단 이사회와 운영진의 비리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심규성 감사는 “서울YMCA는 41년간 이사와 18년간 이사장을 지내며 오직 자기 사람으로 단체를 장악해 온 표용은(83) 명예이사장을 중심으로 조기흥 이사장, 안창원 회장 등 지인과 친인척 등이 요직을 맡아 사실상 내부 견제가 불가능한 구조”라며 “이사회 독점과 불투명성을 개선할 수 있는 조직개혁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1975년부터 이사를 맡아 1988년 이사장으로 취임했던 표용은 명예이사장(목사·전 감리교 감독회장)은 2003년 비자금 의혹이 불거지자 잠시 물러났다가 2005년 명예이사장으로 돌아왔다. 안창원 회장은 표용은 명예이사장의 외조카다.
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