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아동학대 방지 종합대책 세울 방침”
[일요서울 | 장휘경 기자] 두 살배기 입양 딸을 때려 숨지게 한 ‘울산 계모 사건’, 8살 난 의붓딸을 학대해 숨지게 한 ‘칠곡 계모 사건’, 아버지에 의해 집에 감금됐던 ‘인천 학대 소녀 사건’. 가해자는 모두 부모였다. 그중 아버지가 친딸을 학대해 더욱 국민적 공분을 산 ‘인천 학대 소녀’ 사건이 발생하면서 가정의 아동학대 예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특별법 제정 이후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늘어났지만 ‘사각지대’는 여전해 조기에 발견할 수 있는 촘촘한 그물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지난 12일 오전 11시경 인천 연수구의 한 슈퍼마켓에서 6~7세 정도로 보이는 박모(11)양이 추운 겨울임에도 맨발로 돌아다니자 슈퍼마켓 주인이 “아동 학대가 의심된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슈퍼마켓 주인은 박 양을 처음 발견했던 당시 “슈퍼마켓 밖에서 가게 안의 빵 진열대를 들여다보며 서성거리고 있었다”며 “영하의 추운 날씨인데도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양말을 신지 않은 맨발이었다. 팔다리 곳곳에는 시퍼런 멍 자국이 있었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박 양은 인근 다세대 주택 2층에 살고 있었으며 발견 당시 키가 120㎝, 몸무게는 4살 아이 평균인 16㎏에 불과할 정도로 몹시 야위어 있었다. 또한 영양부족에 의한 빈혈과 간염, 늑골골절과 전신 타박상에 노출돼 있었으며, 급성 스트레스 반응과 과잉 불안장애를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박 양의 아버지 박(32)씨는 온라인 게임에 중독된 상태로 동거녀 A씨(35), A씨의 친구 B씨(36)와 함께 2013년 가을부터 올해 12월까지 인천 연수구 내 주거지에서 2년 넘게 A양을 감금하고 세탁실, 욕실 등에서 손, 발, 옷걸이, 쇠파이프 등을 이용해 폭행했다.
박 양은 심각한 영양실조 상태로 생존을 위해 주택 2층 창문에서 가스배관을 타고 탈출, 슈퍼마켓에서 과자를 훔치다 주인에게 발견됐다.
박 양은 경찰에서 “배가 너무 고파 집 세탁실에서 가스 배관을 타고 도망쳤다”며 “수돗물만 먹으니까 배가 너무 고파서 빵이라도 훔치려고 탈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아빠는 먹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 말고는 거의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만 했다”고 전했다.
아버지 박 씨는 박 양이 초등학교 2학년 1학기를 마친 2013년, 경기도 부천시에서 지금의 집으로 이사를 온 뒤부터는 박 양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음식도 제대로 주지 않았다. 특히 박 씨는 2마리의 애완견에게는 먹을거리를 꼬박꼬박 챙겨주면서 박 양이 배가 고파 냉장고라도 뒤지면 주먹이나 쇠파이프 등으로 마구 때린 것으로 조사됐다.
박 양의 담임교사에 따르면 박 양은 글씨를 예쁘게 잘 썼고 독서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을 만큼 명석했다.
그러나 1학년 2학기에 부천의 한 초등학교로 전학한 후부터 박 양은 결석이 잦았다고 한다. 1학년 때 65일, 2학년 때는 20여일을 결석했다. 2학기가 시작된 2013년 8월 20일부터는 아예 등교를 하지 않았다.
이에 담임교사는 연속 3일째 결석을 한 박 양이 걱정돼 8월 23일부터 29일까지 3차례에 걸쳐 박 양의 집을 방문했다. 그러나 그때마다 집 현관문이 굳게 잠겨 있어 이웃들에게 알아보니 “이사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9월 어느 날, 박 양의 친할머니가 학교에 찾아와 학교 관계자에게 “손녀가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 수 있냐”며 “아들이 내 인감도장을 훔쳐서 집을 팔고 도망갔다”고 하소연했다.
이에 담임교사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 곧장 인근 경찰 지구대로 달려가 아이에 대한 실종신고를 했으나 경찰은 받아주지 않았다. 담임교사가 부모나 조부모 등 친권자가 아니었을 뿐 아니라 박 양이 ‘부모와 함께’ 이사를 갔다는 이유로 접수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아이가 사라진 이유가 부모 때문인 것 같아도 ‘부모가 같이 갔다’고 하면 실종신고를 못하게 돼 있다.
학교는 박 양과 연락이 닿을 방법이 없어 8월 28일과 9월 6일 비어 있는 박 양의 집으로 출석 독려문을 보냈다. 9월 17일에는 주민센터에도 통보해 주민센터 관계자가 다시 한번 확인하게끔 했으나 역시 “아무도 없는 빈집”이라는 응답만 받았다.
박 양은 부모와 함께 부천 인근의 한 월셋집을 거쳐 2013년 인천 연수구의 한 빌라에 정착했다.
아버지 박 씨는 인천으로 이사한 뒤 전입신고조차 하지 않은 채 그의 동거녀 A씨와 함께 박 양을 학대하기 시작했다.
담임교사의 실종신고만 경찰에 접수됐어도 2년 동안 지속된 박 양에 대한 학대를 막을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지적이다.
박 양은 경찰서에서 “집이 어디냐”고 묻는 경찰의 질문에 처음에는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질 것이 두려워 “고아원에서 나왔다”고 답했다가 경찰의 설득 끝에 결국 학대받은 사실을 털어놓았다.
박 양의 아버지 박 씨와 동거녀 A씨는 딸의 탈출사실을 눈치채고 달아났다가 16일 오후 차례로 경찰에 검거됐다.
현재 나사렛국제병원에 입원해 회복 중인 박 양은 음식에 대한 집착이 남아있긴 하지만 발견 당시보다 4㎏이 늘어나는 등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보건복지부 산하 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의 장화정 관장은 “박 양에게 아빠가 처벌을 받기 원하느냐고 질문하자 ‘네’라고 정확히 대답을 했고 다시는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밝혔다.
장 관장은 “박 양이 시기는 언제인지 모르지만 앞서 집에서 탈출했던 적이 있는데 행인이 자신을 다시 집에 넣어줬고, 이번에 재차 집에서 나왔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장 관장은 “아이가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생활하지 못한 것 같아 쉼터나 시설보다는 가정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위탁가정에 장기 위탁할 계획”이라며 “이후 아버지 친권 문제가 해결되면 최종적으로 거처를 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아동학대 사건을 계기로 의무교육 테두리에서 벗어난 아동들을 살피기 위해 정부가 합동점검을 실시한다. 점검 결과를 토대로 장기결석 아동에 대한 관리대책이 마련될 예정이며, 경찰도 힘을 합해 아동학대 의심 사례에 적극 대응할 방침이다.
교육부와 보건복지부는 “합동점검은 초등학교 장기결석 아동 중 최근 발생한 인천 연수구 아동학대사건과 유사한 사례가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에서 계획됐다”고 밝혔다.
합동점검은 각 지역별로 일선 학교와 동주민센터 간 구체적인 협의를 거쳐 최대한 빠르게 진행해 내년 1월 중에 완료할 예정이다. 이는 개별 학교의 초등학교 장기결석 아동 명단을 기반으로 학교 교직원 및 동주민센터 사회복지전담공무원이 직접 해당 가정을 방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정부는 점검 결과를 토대로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장기결석 아동 관리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경찰도 장기 결석 아동 조사와 관련해 발견되는 아동학대 (의심) 사례에 적극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경찰은 "최근 어린이집 아동학대 사례들에 이어, 가정 내에서의 아동 유기ㆍ방임 등 일련의 아동학대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며, "전수조사를 계기로 관련부처와 유기적으로 협조해 아동학대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을 통해 사회적 관심을 환기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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