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급 문화재 16만여 점 해외 유출…약탈 아닌 선물로 준 것도 많아
[일요서울 | 장휘경 기자] 한국 근대사 100년은 우리 민족 역사상 가장 큰 수난의 시기였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등 외세의 침략과 일제강점기를 겪는 동안 우리는 소중한 것을 많이 잃었다.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문화유산도 예외일 순 없었다. 약탈과 분실, 도난, 소실, 훼손 등 문화재가 겪을 수 있는 온갖 수난과 위험을 다 겪었다. 다행히 훼손과 소실을 피했더라도 도난과 약탈 등 불법적인 수단과 방법에 노출돼 그 피해가 적지 않았다. 혼란의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의 무지로 지키지 못한 문화재도 많다. 이제 세계에 흩어져 있는 문화재들을 찾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한 만큼 총력을 기울여 우리의 것을 되찾아야 할 것이다.
일본 6만7,708점ㆍ미국 4만4,365점ㆍ영국 7,945점ㆍ독일 1만940점ㆍ러시아 5,699점ㆍ프랑스 2,896점ㆍ중국 9,806점ㆍ덴마크 1,278점ㆍ캐나다 2,192점ㆍ네덜란드 1,174점ㆍ오스트리아 1,511점….
이 숫자들은 해당 국가에 있는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이다. 이처럼 많은 문화재들이 다양한 국가에 퍼져 있다.
유출경로를 모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임진왜란, 일제강점기, 6.25 등 전쟁이나 나라의 혼란기에 약탈당한 것으로 드러난 경우가 많다.
문화재는 조상들의 얼과 삶이 살아 숨 쉬는 것들이고, 다음 세대들에게 그대로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다. 21세기는 문화재 반환운동이 세계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도 지금이 문화재들을 돌려받을 가장 좋은 시기다.
우리 정부는 한국인들의 정신과 영혼이 담긴 한국 문화재는 한국의 보물이자 역사이기에 반드시 돌려주기를 바란다고 세계인들을 설득하고 있다.
숫자 가늠키 어려워
세계는 지금 문화재 반환을 위해 움직이고 있다.
2010년 11월. 미국은 예일대학교가 보관하고 있던 잉카문명의 유물 4만6,000점을 모두 페루에 반환했다. 연구를 이유로 18개월 대여 형식으로 빌려간 유물이 무려 100년 만에 주인에게 돌아간 것이다.
힘없고 가난한 나라 페루. 그러나 그들에게는 미국이라는 강대국조차 꺾을 수 없는 숭고한 정신의 힘이 있었다. 바로 조상들의 유물을 되찾겠다는 페루 정부와 시민들의 뜨거운 열망이었다.
이집트는 문화재 반환 운동의 개척자다. 2010년 영국 런던대학교는 20만 년 전 구석기 유물을 되돌려 주어야 했고, 프랑스는 이집트 ‘왕들의 계곡’ 근처 무덤에서 출토된 벽화 부조를 이집트에 반환해야 했다.
최근 8년간 이집트가 반환 받은 해외 유출 문화재는 무려 3만1,000여점에 이른다.
중국은 미국, 영국, 프랑스가 약탈해간 문화재 실태파악을 위해 전담팀까지 구성했다. 중국은 이 실태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해당 국가들에게 공식적인 반환을 요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처럼 세계적으로 약탈 문화재를 돌려받으려는 움직임은 점점 더 거세지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공식적으로 확인된 해외 유출 문화재가 무려 16만여 점에 달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강임산 조사연구팀장은 “이 숫자는 박물관과 전시관 등이 소장하고 있는 유물들에 지나지 않는다”며, “얼마나 많은 문화재가 해외에 있을지는 그 숫자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소재 파악이 힘든 개인 소장 유물들까지 모두 감안한다면 그 수는 훨씬 더 많을 것이다”고 추정했다.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 황평우 소장 또한 “비공식적으로 개인이 소장한 것까지 합하면 일본에 있는 우리나라 문화재만 100만 점 이상 될 것”이라고 추산했다.
황 소장은 “우리나라가 정부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문화재 환수 운동을 벌이지 못하는 것은 정부의 잘못된 판단 때문이다”며 “정부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해외 유출 문화재에 대해 대처하고 민간 활동도 충분히 지원한다면 문화재 환수 성공 사례가 더 많아질 수 있을 것이다”고 꼬집었다.
또한 “국외에 떠도는 문화재 반환을 위해서는 전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고 문화재 반환을 추진하는 데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문화재 환수는 장기 프로젝트라는 것을 인지해 모두 냉정하고 차분하게 환수 과정을 지켜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해외소재문화재 = 약탈문화재?
우리가 지난 60여 년간 회수한 문화재는 불과 9,800여점.
이집트가 8년간 3만1,000여점을 반환 받고, 페루가 4만 6,000점을 되찾은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현재 일본은 우리가 6,479점의 문화재를 환수했음에도 아직 총 6만7000점이 넘는 한국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프랑스는 1866년 강화도를 습격해 약탈해 간 외규장각 도서 298권을 2011년에 모두 돌려줬다. 한국의 끊임없는 반환 요구를 번번이 거절했었던 프랑스와 협상하기 시작한 지 20여년 만에 맺은 결실이었다. 비록 반환이 아니라 5년 단위로 갱신되는 대여의 형식을 빌리기는 했지만, 프랑스에 되돌려줄 필요가 없는 사실상의 영구 대여라는 점에서 한국은 실리를 얻고 프랑스는 명분을 살린 윈-윈 협상이었다.
그러나 프랑스는 한국인들이 해외 유출 문화재 가운데 가장 큰 관심을 갖는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 인쇄본인 ‘직지심체요절’은 반환은 물론 임대 형식의 반환조차도 거부하고 있다.
직지심체요절은 부처와 스님들의 말씀, 대화, 편지 등에서 중요한 내용을 뽑아서 만든 책이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 활자본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서 보관하고 있다. 100여 년 전 주한 프랑스 대사였던 콜랭 드 프랑시가 직지심체요절을 수집해서 프랑스로 가져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인쇄 연도는 1377년으로 구텐베르크의 42행 성서보다 78년이나 빨랐고 1990년 파리 만국박람회에 처음 소개돼 세계를 깜작 놀라게 했다. 이로써 서양 중심으로 기록돼 오던 인쇄 역사를 한국 중심으로 다시 쓰게 만들기도 했다.
세계 유명 언론들은 지난 1,000년간 인류문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발명품으로 금속활자를 꼽았고, ‘직지’는 2001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한국인들에게 ‘직지’는 ‘한글’, ‘거북선’과 더불어 가장 위대한 문화유산이다.
혹자는 문화재 반환에 정답이 없다고도 말한다. 우리의 유산인 만큼 당장이라도 가서 가져와야 할 것 같지만, 상대국가와의 외교 문제를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만약 우리나라에서 손실될 가능성이 높았던 문화재를 상대국이 정성스레 보존해오고 관리해 왔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 강 팀장은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 가운데는 약탈에 의한 것이 아닌 나라 간 교류로 선물한 것도 많고 국내에서 정당하게 사간 것도 꽤 많기 때문에 강제로 다시 가져올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예를 들어 덴마크의 경우 국립박물관에 ‘한국실’을 만든다는 조건 하에 우리나라가 스스로 113점의 유물을 주기도 했다”며 “‘해외 소재 문화재는 약탈문화재’라는 등식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결국 소유주로부터 기증을 받거나 구입하는 방법 외에는 이해 당사국 정부 간 협상으로 풀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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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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