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13일 천 창당대회-안 탈당 제로섬 게임의 날
- 千 신당창당 공식 면허증 安 대중성 시너지 효과
바쁜 연말만큼이나 바쁜 여의도 정가다. 지난 13일 천정배 의원은 가칭 국민회의 창당발기인대회를 성대하게 열고 한국정치를 전면적으로 재구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소위 ‘87년 체제’를 낡은 정치체제로 규정하고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새로운 정치체제를 만들겠다는 선언이다. 4.29 보궐선거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심장이라고 하는 광주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된 천정배 의원이 본격적으로 야권재편에 나선 것이다.
13일에는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 창당발기인대회도 있었지만, 오전에는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에서 철수하는 기자회견도 있었다. 누군가 신당창당발기인대회를 치룬 천정배 의원의 국민회의는 잔칫날인데,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새정치민주연합은 초상집이라고 비꼬았다. 이익을 보는 정치세력이 있으면 손해를 보는 정치세력이 있기 마련이다. 이익과 손해를 더하고 빼면 제로가 된다는 것이 정치학에서의 제로섬 게임이론인데, 이 이론이 제대로 적용된 상황이 12월 13일이었다. 지난 13일이 금요일은 아니었지만, 새정치민주연합에게는 <13일의 금요일> 영화만큼이나 공포로 다가왔던 하루였을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 이후 새정연 내부에서 비주류를 자처하던 문병호, 유성엽, 황주홍, 김동철, 임내현 의원 등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탈당 대열에 합류했다. 모두가 안철수 의원과 함께 신당을 차리겠다는 의지를 불태웠고,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재인 대표 패권체제를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가치와 노선의 측면에서만 보면 이들이 안철수 의원과 한 살림을 차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그렇지만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는 여전히 오리무중으로 이들이 진정으로 한 배를 타고 나아갈지는 미지수다.
안철수 의원은 작년 초 신당 창당을 추진하다가 두 손 두 발 다 들어버린 전력이 있다. 당시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은 2012년 대선에서 실패한 민주당이 그 실패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없이 패권적으로 군림하고 있던 것에 대한 국민적 비판여론이 형성되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말하자면 신당 창당의 명분이 있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의원은 결국 창당을 포기하고 민주당에 백기투항했었다.
그때에 비하면 지금의 안철수 의원은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는 듯하다.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의원들과 함께 신당 창당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되었으니 말이다.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의원들이 합류하면 조직(창당세력)과 돈(창당자금)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수 있다. 작년 초 나 홀로 정당을 창당하려고 할 때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창당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의원은 그때와 다른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바로 명분의 문제다.
실제로 안철수 의원의 탈당은 국민적 관심사가 아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내에서의 권력투쟁의 문제였던 것이고, 그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안철수 의원이 탈당한 것에 불과하다. 물론 안철수 의원의 탈당으로 말미암아 새정치민주연합의 패권적 행태가 도드라지게 드러난 면도 없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도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차려야 할 명분이 생기는 것은 아니었다.
안철수 의원의 탈당 후폭풍으로 여의도 정가, 특히 야권은 시계 제로 상황이다. 3년 전 대선 국면으로 되돌아간 듯하다. 모두가 문재인과 안철수에 주목하고 있다. 문재인 대표가 어떻게 칼을 휘두를 것인지, 아니면 언제쯤 대표 자리를 던질 것인지가 문재인 대표에 대한 주요 관심사다. 안철수 의원이 철수정치를 청산하고 당을 만들 수 있을 것인지, 언제까지 지금의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지는 안철수 의원에 대한 주 관심사다. 문재인, 안철수 두 정치인에 대한 관심이 커질수록 상대적으로 관심 밖으로 밀려나는 정치인도 있다. 국민회의를 만들고 있는 천정배 의원이 거기에 속한다.
그런데 필자는 그 천정배 의원에 주목하고 싶다. 아니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가 한국정치, 적어도 야권재편에 관해서는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현재의 야권재편 상황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은 누가 뭐래도 천정배 의원이다. 그가 4.29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광주에서 당선된 것에서부터 야권재편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호남개혁정치 복원’이라는 명분을 가지고 광주에서 당선된 천정배 의원은 ‘한국정치의 전면적 재구성’, ‘풍요롭고 공정한 대한민국’이라는 슬로건을 가지고 지난 13일 신당창당준비위원회 발기인대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868명의 창당발기인 규모도 대규모였지만, 발기인들의 자발적 모금에 의해 3억 5천만 원이 넘는 회비가 모아지고, 그 종잣돈을 가지고 여의도에 당사를 마련했다고 하니, 그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 정당사에 한 획을 긋는 대사건임에 틀림없다.
천정배 의원은 지난 20일 김동철 의원의 탈당에 대해 “곤혹스럽다”라고 했다. 김동철 의원은 ‘호남개혁정치의 복원’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개혁의 대상이 되는 사람이기 때문이었으리라. 김동철 의원은 안철수와 함께 신당을 만들겠다며 행동을 함께하고 있다. 천정배 의원은 그런 안철수 의원과 신당 창당을 같이 해야 하는지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는 것 같다. 소위 가치와 노선의 차이가 있는 듯이 보인다.
한편, 신당 창당의 명분은 지난 4.29 보궐선거에서 승리한 천정배 의원에게만 광주시민들이 배타적으로 부여한 권리였다. 신당 창당에 필요한 면허증은 천정배 의원만이 소지하고 있는 것이다. 신당 창당의 명분이 부족한 안철수 의원은 정치개혁, 정당혁신을 전면에 내걸고 있지만, 그와 함께하고 있는 현역의원들의 관심은 오로지 안전하게 재선에 성공하는 데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안철수와 함께 함으로써 공천 걱정 없어지고, 현역프리미엄을 최대로 누릴 수 있게 된다. 안철수의 입장에서는 함께하고 있는 현역의원들이 정치개혁, 정당혁신의 걸림돌이 되어버린 형국이다.
안철수 의원은 지난 13일 탈당 기자회견에서 “이대로 가면, 총선은 물론 정권교체의 희망은 없습니다. 저의 부족함과 책임을 통감합니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드립니다.”며 기존의 어법과는 다르게 사과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결연한 의지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런데 현재 그의 정치행태를 보면 기성의 구태정치를 많이 모방하고 있는 듯 보인다. 안타깝다. 안철수 신당이 잘 될 것 같지 않다. 그러한 안철수 의원의 정치행태에 대하여 천정배 의원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신당 창당을 앞둔 안철수 의원의 조급함에 경고를 보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현재 야권의 정치재편 과정에서 주목할 사람은 천정배 의원과 안철수 의원이다. 천정배 의원은 신당 창당의 공식 면허증을 소지하고 있고, 안철수 의원은 대중성이라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 두 사람이 모두 상대에게 시너지 효과를 줄 수 있는 기본 조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이 의미있게 결합하는 것은 야권재편의 성공을 위해서도 매우 중요하다.
치밀한 전략, 세심한 배려, 무엇보다 적확한 타이밍 정치를 통해 새정치민주연합과 동등하게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신당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안철수 의원의 단순한 세 불리기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적절한 시기에 천정배와 안철수가 만나 신당 창당의 로드맵, 가치와 노선에 대해 결단을 내려야만 한다. 더 중요한 것은 신당 창당의 과정에서 주도권을 행사할 갑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안철수 의원이 아니라 천정배 의원이라는 점을 안철수 의원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는 점이다. 권은희 의원이 천정배 의원을 만난 이유를 곱씹어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야권재편, 신당 창당의 성공 그 모두는 안철수가 아닌 천정배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김영필 전북대 겸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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