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뇌 강국을 만들자]대기업, 스타트업에서 혁신 배우다
[두뇌 강국을 만들자]대기업, 스타트업에서 혁신 배우다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5-12-28 09:49
  • 승인 2015.12.28 09:49
  • 호수 1130
  • 3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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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첩함·빠른 의사 결정2016 新먹거리로 등장

[일요서울/이범희 기자] 스타트업 시장이 뜨겁다. 단순 창업이 아닌 대기업과의 협약으로 더욱 발전하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오너일가의 후계구도에도 영향을 미치며 창업 현장을 누비는 젊은 황태자의 모습이 종종 목격된다. 과거 경영의 세습과 수업에만 집중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지난 15일 서울 영동대로 ‘구글 캠퍼스’에서 열린 토크 콘서트(파이어사이드 챗)에서 순다 피차이 구글 CEO는 “대기업, 스타트업 인수하면 더 많은 사업 기회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만큼 스타트업 시장이 국내기업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하다.

▲ <뉴시스>

소프트웨어 넘어 하드웨어 영역 확산…헬스케어 급부상
소규모 회사서 수조원대 기업 성장…‘카카오그룹’ 대표적


스타트업 기업들이 작은 규모만큼이나 민첩하게 움직이며 기존 대기업들의 영역까지 거침없이 넘보고 있다. 핀테크 스타트업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 기관의 영역으로, IoT 스타트업들은 전자기업의 영역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굴해내고 있다. 과거 일정 규모 이상의 R&D 인력과 제조설비를 갖춰야만 가능했던 하드웨어 영역도 이제 스타트업들에게 새로운 사업기회로 열리고 있다.

지금까지 스타트업은 초기 소프트웨어 앱개발사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는 스마트폰 시대와 함께 개인 또는 소수의 개발자들로 구성된 앱 개발사들이 쏟아져 나와 성공적으로 산업을 형성했기 때문이다. 카카오톡도 처음에는 개발자 2명, 기획자 1명, 디자이너 1명으로 4명에서부터 출발한 스타트업이었다. 하지만 이제 카카오톡은 인터넷 포털 기업인 다음과 합병하면서 네이버와 경쟁하는 등 스타트업들이 기존 기업들과 나란히 경쟁하고 있다.

게임 시장에서도 초기에 로비오라는 스타트업이 앵그리버드라는 게임을 출시하면서 EA (Electronic Arts) 등 기존 게임 개발사를 위협했다. 최근에는 2012년 설립된 ‘캔디 크러시 사가’ 게임으로 유명한 킹(King)과 2010년에 설립된 ‘클래시 오브 클랜’으로 유명한 슈퍼셀 등 스타트업이 맹위를 떨치고 있다. 게임뿐만 아니라 사무용 앱시장에서도 에버노트 등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며, MS 오피스를 제공하는 마이크로 소프트웨어 등 기존 플레이어들을 위협하고 있다.

스타트업들의 움직임은 하드웨어 영역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하드웨어 스타트업들이 제품을 개발, 제조할 수 있는 인프라가 마련되고 있고, 스마트폰 확대와 사물 인터넷 시대 도래 등으로 새로운 시장 기회가 나타나고 있다.
그 예로 아마존에서 판매 중인 스마트 도어락 제품인 어거스트 스마트 락(August Smart Lock) 제조사인 어거스트의 임직원은 6명으로 알려져 있다. 샌프란시스코 소재 가정용 CCTV 제조사인 버터플아이(Butter fleye)도 임직원 수가 8명에 불과하다.

바이오테크와 디지털 헬스(Digital Health)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련 업체들에 대한 투자도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도에 의하면, 미국 시장에서 2015년 1분기에만 헬스케어 스타트업 기업들이 39억 달러의 자금을 끌어 모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최고치였던 2014년 2분기의 34억 달러 규모를 뛰어넘는 것이다. 바이오테크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전년 대비 72% 증가한 약 21억 달러로 나타났고, 디지털 헬스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전년 대비 56% 증가한 4.3억 달러로 나타났다.

의료현장도 변화의 움직임

대기업과 직접 손잡고 사세를 확장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헬스케어 스타트업 직토(Zikto·대표 김경태)는 지난 17일 삼성물산(패션부문 대표 윤주화)과 손잡고 웨어러블 밴드로 패션시장에 진출한다.

이번 제휴를 통해 양측은 삼성물산의 신규 액세서리 브랜드 ‘라베노바’가 디자인한 스트랩(끈)과 ‘걸음걸이 교정 웨어러블 밴드’인 ‘직토워크’가 결합된 제품을 국내외 패션시장에 선보이게 된다.
또 양측은 ▲콜라보레이션 분야 확대 ▲신규상품 공동 개발 ▲글로벌 전시회 공동참가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특히 직토와 삼성물산의 전략적 제휴는 ▲최근 각광받고 있는 ‘핏빗(Fitbit)’-‘토리버치(Tory Burch)’ㆍ‘애플(Apple)’-‘에르메스(Hermes)’ 등 글로벌 웨어러블 업체와 패션업의 만남 ▲국내 유망 스타트업과 대기업의 MOU를 통한 웨어러블 생태계 조성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통한 창조경제 실현 등의 의미로 주목받고 있다.

서한석 직토 이사는 “걸음걸이 교정을 통해 체형 비대칭 개선에 도움을 주는 헬스케어 웨어러블 밴드 ‘직토워크’와 삼성물산의 패션 브랜드 ‘라베노바’의 만남은 사용자의 건강은 물론 패션감각까지 만족시켜줄 것”이라고 밝혔다.

직토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스타트업 지원사업인 ‘2014년 창업발전소’에 선정된 43개 중 하나로, ‘걸음걸이 교정용 웨어러블 밴드’인 ‘직토워크’를 제조하는 ‘헬스케어 스타트업’이다.

배달앱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 또한 최근 네이버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소상공인을 위한 마케팅 지원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15만 개의 배달의민족 등록 업소로부터 신청을 받아 네이버의 모바일 홈페이지 제작 플랫폼인 ‘모두(modoo!)’를 활용해 홈페이지를 제작해준다.

또 지난해 4월에는 하나SK카드와 제휴를 맺고 배달의민족 앱을 통해 결제 시 사용하면 15%를 할인해주는 ‘배달의민족 마음만부자 카드’를 출시한 바 있다.
음악앱 ‘비트’를 서비스하는 비트패킹컴퍼니의 경우 현지 여행 서비스 전문 스타트업 ‘마이리얼트립’과의 협력을 통해 여행 콘텐츠와 음악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마이리얼트립 브랜드 채널’을 운영했다. 비트패킹컴퍼니 관계자는 해당 채널의 광고 반응률이 타 브랜드 채널 평균보다 2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고 밝혔다.

분야 가리지 않는 파격 행보로 사용자 혜택, 인지도 강화
수익창출이 관건…기존 투자자들 자금 의존 낮추는게 숙제

반대로 재벌이 직접 나서 스타트업을 후원하는 경우도 있다. 재벌가 중 가장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는 LS가(家)의 장손인 구본웅(37세) 포메이션8 대표다. 구 대표는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손자이자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의 외아들이다.

그는 한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 복무를 마친 뒤 미국으로 건너갔다. 스탠퍼드대 경제학과와 경영대학원(MBA)을 졸업한 구 대표는 실리콘밸리 벤처캐피탈에서 경험을 쌓은 뒤 2012년 포메이션8을 창업했다.
구 대표는 최근까지 28건이 넘는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투자를 진행했던 가상현실(VR) 기기업체 오큘러스VR이 페이스북에 인수되면서 투자금의 10배가 넘는 자금을 회수해 ‘대박’을 쳤다. 최근에는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워 4억 달러의 투자금을 모집하고 있다. 구 대표는 이를 통해 한국의 유망 벤처기업을 발굴하고 투자뿐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노하우와 전문지식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대기업 내
신속한 변화의 어려움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손녀이자 정몽준 현대중공업 전 회장의 딸인 정남이(32세) 아산나눔재단 기획팀장도 벤처업계 유명인사다. 아산나눔재단은 창업 종합지원 공간인 ‘마루180’을 운영하고 있는데 정 팀장이 마루180 운영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연세대 철학과를 다니다 미국으로 건너가 남가주대학교 음대에서 공부했다. MIT 경영전문대학원을 졸업한 이후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컴퍼니에 다니다 아산나눔재단으로 자리를 옮겼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차남인 김동원(31세) 한화그룹 디지털팀장 역시 국내 벤처기업 육성 및 투자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룹 내 벤처 육성 사업인 ‘드림플러스’를 직접 챙기고 있는 것이다.

드림플러스는 한화그룹 시스템통합(SI) 계열사인 한화S&C가 2013년에 만든 창업지원 투자조합이다. 역량 있는 국내 정보통신기술(ICT) 스타트업을 선발해 육성해 오고 있으며 현재 국내 4개 스타트업에 투자를 진행했다. 특히 한국을 포함한 세계 11개국 12개 대표 액셀러레이터와 드림플러스 얼라이언스(연합)를 구축했다.

미국 세인트폴고와 예일대를 졸업한 후 소규모 공연기획사 등을 운영하다 지난 2014년 한화L&C(현 한화첨단소재)에 입사한 김 팀장은 인터넷과 IT 분야에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드림플러스데이’ 등 벤처 관련 다양한 행사에 참석하며 스타트업 발굴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외국에서는 좀 더 구체적인 사례들이 알려진다.

GE는 오랜 역사를 가진 대기업임에도 스타트업 기업에서 생존 방식을 활발하게 찾고 있는 대표적인 기업이다.  2012년, 스타트업 구루인 에릭 리스의 도움으로 기존의 제품 개발 프로세스를 개선하여 신속한 제품 개발을 가능하게 해주는 패스트웍스(FastWorks)라는 프로그램을 도입한 바 있다.

스타트업 기업의 린 스타트업 방식을 적용한 패스트웍스는 완성도는 낮지만 어느 정도 기능이 구현된 제품을 빨리 만들어낸다. 고객에게 피드백을 받아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 제품 개발 방향을 수시로 민첩하게 전환함으로써, 제품 개발 속도를 촉진하며 고객의 요구에 근접해가는 방식이다. 가스 터빈 개발 기간을 5년에서 3년으로 단축시키는 성과를 거두었고, 전사적으로 확대 적용하여 2014년말 기준 4만여명 이상의 구성원을 대상으로 훈련을 진행하였으며 300여개 이상의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코카콜라는 스타트업 기업뿐만 아니라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기업가’로까지 협업의 범위를 넓혔다. 코카콜라는 2013년 ‘파운더즈(Founders)’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스타트업 경험이 있는 기업가들과 네트워크를 형성해, 코카콜라의 관리자들과 함께 사업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해결책을 고민하게 하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스타트업 기업을 만들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이다.

코카콜라는 파운더즈에 참여하는 기업가들이 경험한 스타트업 기업의 일하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 코카콜라의 혁신 담당 임원 로스 킴벨에 따르면, 파운더즈 프로그램에서는 적은 비용으로 최대한 빠르게 실행하는 린 스타트업의 방식을 체득하고 있는 기업가들을 찾고 있다. 이를 통해 기존의 전통적인 마케팅과 유통 방식에서 벗어나 소셜, 스마트 기기 등의 매체를 활용한 새로운 방식을 발굴하기 위함이다.

현 정부의 ‘창조경제’가 국정의 중심으로 급부상하면서 대기업들의 벤처 지원책이 줄줄이 나오는 것도 호재다. 각 지역의 창조경제혁신센터는 창업 인프라를 지원하고 있고 SK그룹과 CJ그룹의 전략적 사업 협력에서도 스타트업 지원 펀드가 500억 원 규모로 조성되는 등 창업을 준비하는 입장에서는 없는 것보다 훨씬 좋은 지원책들이 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스타트업 시장이 뜨는 이유는 무엇일까. 조직이 오래되고 규모가 클수록 변화는 어렵다. 수많은 이해관계자들 사이의 갈등과 조정, 오랜 기간 누적된 복잡한 업무 프로세스, 신화처럼 굳어진 과거의 성공 방정식, 층층이 쌓인 보고체계 등이 혁신을 위한 의사결정을 지연시키는 걸림돌로 작용한다. 내부의 복잡한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다지 혁신적이지도 않고 이미 때늦은 혁신안이 채택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변화를 추진하던 구성원들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를 보며 무력감에 빠지기 십상이다.

반면 스타트업 기업의 혁신은 조직이 작고 가벼운 만큼 무엇보다 민첩성이 가장 큰 특징이다. 고객의 목소리에 기민하게 움직이고 환경 변화에 빠르게 대응하여 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한다. 빠른 만큼 비용도 적게 든다. 조직 구조나 업무 프로세스의 변화도 용이하다.

따라서 민첩하게 움직이는 스타트업 기업들을 보며 스스로를 혁신하는 대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 스타트업 기업에 자본을 투자해 사업 영역을 확장하거나 아이디어를 얻던 방식에서 더 나아가 스타트업 기업의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일하는 방식을 배우려고 한다.
전재권 LG경제연구원은 “스타트업 기업들이 고객의 요구와 환경 변화에 신속하게 대응하며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고 있다”며 “(반면) 대기업은 상대적으로 의사결정 속도가 더디고 변화도 쉽지 않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스타트업 기업이 가진 혁신의 민첩성을 배우려는 대기업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초기 스타트업들의 몰락

한수연 LG경제연구위원은 “외부 역량을 통해 혁신과 시너지를 창출하려는 대기업의 스타트업 투자는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일부 스타트업 기업들이 무너지는 주요 이유로 수익모델 창출의 실패를 꼽기 때문이다.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들은 투자자들의 자금에 의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처음에는 투자금을 기반으로 무료 앱·서비스를 제공해 고객을 확보하는 것은 쉽지만, 장기적인 수익모델을 창출로 성공하는 기업들은 일부에 불과한 상황이라고 업계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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