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룡들 ‘방북 러시’ 허와 실
대선을 앞두고 유력 대선주자들의 북한 방문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남북관계가 역대 대선에 주요 화두가 됐던 점을 감안하면, 이들의 방북을 이해 못할 것도 없다. 하지만, “별 소득도 없이 그저 ‘눈도장 찍기’ 식으로 방북이 추진돼서는 안된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정치적 목적을 갖고 이루어진 방북도 비판을 받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3월 초 이해찬 전국무총리 일행의 방북은 ‘남북정상회담 추진용’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를 위해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 안희정씨 등이 비선에서 대북채널을 가동했던 점도 적지 않은 논란을 불러왔다. 김대중 정권의 불법 대북송금 사건으로 남북관계의 투명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것.
일방적으로 북한 군부 또는 고위층에 의해 좌지우지되고 있는 정치인들의 방북 스케줄로는 북측과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기가 어렵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남북 직항로를 이용할 경우, 1인당 250만원 안팎의 비용이 든다. 고비용을 들이고도 별다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그 증거다.
최근 잇따라 방북 플랜을 밝힌 범여권 유력주자들의 방북 일정과 그에 따른 득과 실을 따져봤다.
‘유행’따라 대선정국의 화두도 변한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 대권주자 사이에서 일종의 ‘트렌드’가 만들어지곤 한다. 인터넷 카페를 이용한 지지층 결집에서부터 의상, 해외방문 등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대권행보가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진다.
최근에는 이른바 ‘방북 러시’라고 할 정도로 유력주자들이 잇따라 방북 계획을 발표하면서 뒷말이 무성하다.
남북관계는 대선주자 ‘전공필수’
남북관계가 한국 정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다보니, 대통령의 자질에서 대북정책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는 것. 이들은 북한을 방문하고 고위직 인사들을 만나 남북교류 증진을 위한 자리를 갖는다. 유력 정치인 입장에서 본다면, 방북은 선거를 앞두고 자연스러운 행보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내 정치에서 방북은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움직임이라는 시선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그동안 방북했던 ‘잠룡’들은 이렇다 할 성과를 올리지 못하고 단순히 방북자체에 의미를 두곤 했다. 이에 따라 이들의 ‘묻지마식’ 방북행렬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지난 3월 초 방북했던 이해찬 전국무총리 일행도 남북간 정식교류 보다, 비선에서 추진된 사안으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움직였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이 전총리 일행의 방북을 위해 지난해 말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 등이 비선조직을 가동했다는 사실이 전직 코트라 직원 출신 권오홍씨의 폭로로 드러난 것이다.
이 전총리의 방북은 남북정상회담 추진용이라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이들은 또, 돼지 농장을 지어주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퍼주기’ 논란까지 불거졌다. 김대중 정부시절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5억불이라는 막대한 ‘뒷돈’을 전달한 사실이 오버랩된 순간이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는 “특별한 이슈도 없고 성과를 기대하기도 어려운 상황에서 유력 정치인들이 무작정 평양을 찾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북측에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식으로는 남북관계가 개선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럼에도 범여권 주자들의 방북행렬은 이달에도 계속해서 이어질 전망이다.
한나라당을 탈당한 손학규 전경기지사는 5월 8일부터 4박5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할 예정이다. 이들은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평양으로 입국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남북교류 활성화’라는 명분을 가지고 가지만, 평양행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음에도 불구하고 구체적인 일정은 ‘협의 중’에 있다.
이수원 공보특보는 “구체적인 일정과 기자단 포함 여부 등이 아직 확정되지 않아 협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3박4일이 될지, 4박5일이 될지 아직 모르겠다”고 말했다.
범여권 ‘잠룡’들도 잇따라 방북 계획을 발표하고 나섰다. 영남권 ‘잠룡’으로 통하는 김혁규 의원과 김두관 전행자부장관이 그 주인공이다.
김 의원의 경우, 자신은 물론 일부 국회의원과 경제계 인사들까지 동원한 대규모 방북단을 꾸렸다. 배기선, 이화영, 이광재, 김종률 의원이 동행하고 경제계에서는 손경식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대근 농협중앙회 회장, 이원걸 한국전력공사 사장, 김원창 대한석탄공사 사장 등이 일행에 동참할 예정이다.
이들은 남북기업간 교류협력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개성공단을 거쳐 평양으로 향하는 일정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방북은 이화영 의원이 앞서 이루어진 방북에서 북한 군부와 직접 조율해 성사됐다는 후문이다.
김 의원의 보좌진은 지난 26일 “구체적인 일정은 아직 우리도 잘 모른다. 이화영 의원실에 문의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했다.
김두관 전장관의 방북길은 순탄치 않은 케이스. 지난 4월 초에 이미 방북 일정이 잡혀 있었지만, 북한 최고의 명절인 ‘태양절’과 겹친다는 이유로 일방적으로 일정이 연기됐다. 그러나, 4월 25일 인민군 창설 75돌 기념일을 맞아 평양 시내에서 전격 실시된 군사 퍼레이드로 또 한 차례 일정 연기 통보를 받았다.
김 전장관측은 이에 따라 이달 중순경 중국을 경유해 방북하는 일정을 다시 북측과 조율하고 있다.
방북과 관련된 모든 일정이 일방적으로 북한, 특히 군부의 ‘움직임’에 따라 좌지우지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정치인들이 북한을 방문해 누구를 만나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치권 일각에선 ‘묻지마식’ 방북에 대해 비판적인 분위기가 상당하다.
김 전장관의 한 측근은 “우리 방북 일정은 민화협을 통해 북한과 조율해 확정됐다”며 “하지만, 북측이 서로간 양해 없이 일방적으로 일정을 연기하고 있어 애를 먹었다”고 토로했다.
방북 일정에 소요되는 비용도 논란의 대상에서 빠지지 않는다.
전세기 이용 3박4일에 250만원
김포에서 남북 직항로를 타고 평양을 방문, 3박4일간의 일정을 보내려면 1인당 250만원의 비용이 든다. 여기에 사실상 방북 일행의 ‘자비’로 열리는 각종 만찬 등의 비용이 보태지면 금액은 더 늘어난다. 결국, 북한은 평양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방북을 허락해 막대한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는 셈이다.
대선정국이 가열될수록 남북관계에 대한 ‘친밀도’가 더욱 중요한 ‘화두’가 될 것이다. 그로 인해 북측은 상당한 ‘실리’를 챙기겠지만, 범여권 유력주자들은 과연 무엇을 얻을 수 있을까.
김대현 suv15@dailysu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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