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사람이 미래다’는 두산그룹(회장 박용만)이 ‘명퇴가 미래다’, ‘사람이 노예냐’는 반문을 듣고 있다. 계열사 두산인프라코어가 신입사원에게도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단 사실이 알려지면서다. 사원·대리급 직원들의 무차별 퇴직으로 인해 두산그룹에는 22세 명예퇴직자가 나타나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퇴직 강요 프로그램을 가동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 같은 논란은 그간 두산그룹이 인재경영을 중요시해왔다는 점에서 더욱 큰 충격이 되고 있다.

퇴직강요프로그램 가동·불법파견 의혹도 나와
‘20대 명예퇴직자’의 등장으로 두산그룹 전반이 흔들리고 있다. 통상 명예퇴직은 40대, 50대 경력사원들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그런데 20대가 명예퇴직을 한다는 믿기 힘든 이야기가 두산인프라코어에서 일어나 논란이 된 것이다.
두산그룹은 2009년부터 ‘젊은 청년에게 두산이 하고 싶은 이야기’란 주제의 광고를 통해 ‘사람이 미래다’는 말을 강조해왔다. 이는 박두병 두산그룹 초대 회장의 경영 철학이다. 무엇보다 사람이 가장 큰 핵심 자산이란 것이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 역시 인재경영을 중시해왔다. 광고 내용도 박 회장이 SNS를 통해 젊은이들과 취업, 학교, 직장생활 등에 대해 소통했던 내용이 소재로 사용됐을 만큼 박 회장은 늘 인재경영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모습을 보였다.
이 같은 두산의 광고는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공감대를 형성했고, 두산그룹 이미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2010년 두산 광고효과조사에 따르면 두산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 및 취업 의향률은 3.7%에서 13.4%로 3배가량 증가했다. ‘두산’과 ‘사람·인재’의 연상율도 70%에 달했다.
그런데 정작 내부에서는 ‘사람이 미래다’는 말을 무색케 하는 경영을 실시하고 있어 두산그룹을 향한 배신감은 배가되고 있다.
두산그룹의 희망퇴직 논란은 두산인프라코어의 희망퇴직 실태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공개되면서 시작됐다. ‘30대에 명예퇴직은 쉰 떡밥(옛말)이다. 29살에 명퇴당하는 경험을 다 해본다’는 등의 글들이 잇따른 것이다. 이 중에는 22살에 명예퇴직을 한 여직원도 존재했다. 신입사원을 비롯한 사원·대리급 직원들도 희망퇴직 대상에 포함돼 무차별 퇴직을 하고 있던 것이다.
공개된 글에는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그룹이다. 인원의 반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상황에서 제조, 건설 기반인 회사에서 무슨 광고와 홍보가 필요하며 야구단에는 왜 그토록 투자하면서 유지하는지…공놀이 하는 사람에겐 4년에 100억 원을 보장하고, 두산맨이 되고자 들어온 1, 2년차들은 갖은 협박과 회유로 푼돈 쥐어주면서 추운날 쫓아내고”, “현재까지 사원·대리급 90%가 전멸했다. 살아남은 중역자제들은 잘 있네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사람이 미래다’의 광고에 등장했던 직원들도 퇴직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퇴직이 미래다’
패러디 봇물
두산인프라코어의 연결기준 영업이익은 2011년 6796억 원에서 2012년 3624억 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난 상태다. 2014년에는 영업이익이 4530억 원으로 반등했으나 올해 다시 3337억 원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당기순이익도 2012년 3933억 원에서 2013년 순손실 1010억 원으로 떨어졌다. 올해에는 1294억 원의 순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이다.
경영실적 악화는 두산인프라코어의 희망퇴직 신청으로 이어졌고, 지난 2월과 9월, 11월에 진행한 희망퇴직으로 수백 명의 직원들이 떠나갔다. 자발적 퇴사를 우선으로 하지만 내부적으로 팀별 할당제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사실상 강제 퇴직인 셈이다.
이에 여론은 ‘사람이 미래다’는 두산그룹을 향해 ‘사람이 노예다’, ‘퇴직이 미래다’ 등의 패러디 문구를 만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다른 곳에 갈 수 있는 기회까지 날리게 해 놓고 1년 만에 퇴사를 시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지적한다.
또 야구단 운영에는 FA(자유계약선수)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겠다면서 직원들은 감원하는 것에 대한 비판도 나온다.
논란이 커지자 박용만 회장은 “신입사원에 대한 보호조치를 계열사에 지시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1~2년차 사원들이 낸 희망퇴직 의사는 반려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비판은 여전하다. 퇴직 권유 프로그램을 가동했다는 사실도 밝혀진 것이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최근 사외 컨설팅 기관에 의뢰해 희망퇴직 거부자 20여 명을 대상으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들에게 이뤄지는 교육은 ‘이력서 쓰기’나 ‘직업상담사’ 등의 내용을 강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는 사실상 막내급인 4년차 직원도 존재한다. 생산직 직원들도 마찬가지다. 두산그룹이 이 교육을 위해 지불하는 비용은 1인당 300만 원으로 알려졌다.
현재 일부 직원은 교육을 거부하고 있지만 교육 미수료로 인한 인사고과 저평가 및 해고빌미 제공 등에 대한 우려가 높은 분위기다.
뿐만 아니라 희망퇴직으로 떠난 이들을 다시 불러 한 달간 일을 시키고 있다는 의혹도 나왔다. 지난달 말 희망퇴직으로 인력이 빠진 인천공장 운영에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보이자 회사를 떠난 노동자 173명과 12월 한 달간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금속노조 두산인프라코어지 측은 “인력이 부족해 회사를 떠났던 희망퇴직자와 한 달짜리 기간제 계약을 맺는 상황에서 정리해고를 협의하자는 사측의 제안은 앞뒤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인천공장의 엔진 공정 중 일부를 외주화 했는데, 희망퇴직으로 생긴 빈자리에 사실상 용역직원을 투입하는 불법파견이란 비판도 있다. 생산 시스템은 그대로인데 사람만 바꾸는 방식이기 때문에 불법파견의 소지가 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요서울]은 두산그룹 및 두산인프라코어 측에 연락을 했지만 응답을 받을 수 없었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