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상도 출마 회견장에 ‘특명 받은 후보’ 팻말 눈길
PK에도 안대희 등… 후반기 국정운영에 ‘전위대’ 역할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곽상도 전 청와대 민정수석은 12월 14일 대구 달성군청 백년타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내년 4·13 총선 때 달성에 출마하겠다고 선언했다.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지역구였다. 곽 전 수석의 이날 출마선언은 두 가지 장면에서 눈길을 끌었다.
첫째, 곽 전 수석이 선 연단 앞면에 붙은 ‘특명 받은 곽상도’라는 문구였다. 마치 박근혜 대통령의 특명을 받아 출마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그는 ‘청와대로부터 특명을 받았느냐’는 기자 질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달성의 군민들로부터 특명을 받아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앞장서겠다는 의미”라고 비켜 나갔다. 하지만 그는 이날 출마선언문에서 ‘박근혜 대통령’이란 말을 17차례나 사용해 ‘특명’과 묘하게 연결시켰다.
둘째, 출마 회견장에 윤두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전광삼 전 청와대 춘추관장이 나란히 참석했다. 세 사람은 주먹을 불끈 쥐고 함께 ‘파이팅’을 외쳤다. 윤 전 수석은 대구 서구, 전 전 관장은 대구 북갑에 출마한다, 이 때문에 ‘특명’을 받아 대구에 출사표를 던진 박 대통령 참모 출신 3인방이 합동 출사표를 던지는 것 같은 장면이 연출됐다.
이런 모습은 앞으로 공천경쟁이 본격화 되면 대통령 참모 출신들이 스크럼을 짜고 공동전선을 펼쳐 나갈 것임을 예고한다. 이 경우 청와대 참모 출신들과 경합을 벌일 현역 의원들도 공동대응에 나설 전망이다.
초선 현역의원들 미운털
앞서 대구의 친박계 재선으로, 원내수석부대표를 맡고 있는 조원진 의원은 ‘천기 누설’ 같은 발언을 했다. 조 의원은 12월 7일 대구지역 중견언론인 모임인 ‘아시아포럼21’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서 “내년 총선 대구 출마예정자로 거론되는 인사 가운데 4~5명 정도는 청와대와 교감을 하고 나선 것 같다”고 말했다.
조 의원은 나중에 “정종섭, 윤두현, 곽상도, 전광삼…”이라고 실명을 거론했다.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12월 8일 장관직 사퇴의사를 밝혔다. 대구 동갑에 출마할 예정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출마하는 곳의 현역 의원은 초선들이다. 정종섭의 동갑은 그의 경북고 동기인 류성걸, 윤두현의 서구는 김상훈, 곽상도의 달성은 이종진, 전광삼의 북갑은 권은희 의원이 버티고 있다. ‘유승민 파동’ 당시 대구의 초선 의원 7명이 똘똘 뭉쳐 유승민 의원의 입장에 서는 바람에 청와대로부터 미운 털이 박혔다는 말이 나돈 바 있다.
‘청와대 교감론’을 제기한 조원진 의원의 지역구인 달서병에도 청와대 참모 출신이 예비후보 등록을 했다. 대선 때 박근혜 캠프에서 공보단 팀장이었고, 청와대에 입성해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한 남호균 전 행정관이다. 조 의원과 남 전 행정관 사이에 ‘박심’(朴心·박 대통령 의중) 논란이 일고 있다.
남 전 행정관은 “대통령의 바로 뒤에 배석해 앉아 정치권의 도움을 받지 못해 홀로 대한민국을 떠받치고 있는 그분의 외로운 어깨를 볼 때마다 작은 힘이라도 되어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수없이 해왔다”며 자신이 ‘진박’(眞朴·진짜 친박, 진실한 친박)임을 은근히 강조했다.
특정세력이 대구 출마를 희망하는 대통령 참모 출신들을 교통정리하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북갑에 전광삼 전 관장과 함께 출사표를 던졌던 김종필 전 청와대 법무비서관이 예비후보등록 시작 하루 전날인 12월 14일 불출마를 선언한 까닭이다.
이와 관련해선 대구지역에 출사표를 던질 ‘대통령의 사람들’이 더 있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조원진 의원도 “청와대와 교감을 나눈 한, 두 명이 추가로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가에선 원외 친박계로 분류되는 공기업 사장 K씨, 공공기관장 L씨, 중견언론인 K씨 등의 이름이 나돈다. 이들은 대구 현지 사정을 예의주시하며, 친박계 핵심부와 긴밀히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한다.
이들도 청와대의 눈 밖에 난 초선 의원들이 뿌리를 박고 있는 선거구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진다. 중-남구(김희국 의원), 달서갑(홍지만 의원), 달서을(윤재옥 의원)이다.
한 가지 의문이 생기는 점은 대구의 초선 7명을 움직이며 청와대와 대립각을 세웠던 유승민 의원 지역구인 동을에 대통령의 사람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곳엔 지역기반이 비교적 탄탄한 이재만 전 동구청장이 도전장을 내밀었다. 그는 친박계가 아니다.
이 전 청장은 출마의 변에서 유 의원을 겨냥해 “본인의 정치적 야망을 위해 야당의 입장을 우선시 하고, 국정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자기정치’에 몰두했다. ‘배신의 정치’를 응징하고, 끝까지 의리를 지키는 일꾼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박 대통령이 유 의원에게 직격탄을 날렸던 용어를 그대로 썼다.
대구 정치권 관계자는 “유승민 의원 지역에 대통령의 사람을 내려 보내면 너무 노골적인 ‘찍어내기’라는 인식이 확산돼 수도권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계파색이 엷은 이재만 전 청장을 내세운 것 아니겠느냐”고 내다봤다. 남의 칼을 빌려서 사람을 죽인다는 ‘차도살인’(借刀殺人)인 셈이다.
향후 유승민의 행보 주목
유 의원은 본인의 원내대표직 사퇴를 놓고 벌어졌던 ‘국회법 파동’ 당시 자신을 도왔다는 이유로 초선 의원들이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경우 가만있지 않겠다고 경고한 상태다. 혼자만 살기 위해 초선 의원들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의미여서 향후 유승민의 행보가 주목된다.
경북지역에서도 성추문에 휘말렸던 심학봉 의원이 사퇴한 구미갑을 중심으로 대통령의 사람들이 등장하고 있다. 백승주 전 국방차관이 “박근혜 정부의 성공을 위해서”라며 출사표를 던졌다. 여기에 왕보경 전 청와대 행정관(여)이 “박근혜 대통령의 개혁정신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며 뛰어들었다. 이곳에서도 교통정리가 이뤄질지 주목된다.
경북의 다른 선거구에서도 청와대 참모를 비롯해 박심을 등에 업었다는 출마자가 연달아 나타날 수 있다. 경북의 경우 선거구조정이 아직 이뤄지지 않은 상태임을 감안해 최종 결심을 미룬 대통령의 사람들이 여럿 있다고 한다.
‘박근혜 벨트’는 TK(대구·경북)를 넘어 PK(부산·울산·경남)까지 울타리를 넓힐 가능성이 높다. PK에서도 ‘진박 마케팅’ 바람이 부는 까닭이다.
박 대통령이 국무총리로 지명했지만 인사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한 안대희 전 대법관이 대표적이다. 안 전 대법관은 “박근혜 정부의 성공에 헌신하겠다”며 부산 해운대구 출마를 준비 중이다. 그가 국회 입성에 성공하면 부산 동향인 김무성 대표의 대항마로 등장할 전망이다.
경남 진주을에 출마하는 김영호 전 감사원 사무총장은 “박 대통령께서 보내주신 각별한 관심과 격려에 이제는 제가 보답할 차례”라고 했다. 이 외에도 박근혜 정부에서 일했던 PK 출신 전·현직 공직자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부산 지역의 한 언론인은 “재공천이 어렵다고 판단한 비박계 현역 의원 중에서도 일부가 ‘월박’(越朴)을 감행하기 위해 친박계 핵심과 접촉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영남권, 특히 TK지역에 ‘박근혜 벨트’가 구축되면 박 대통령의 임기 후반기 국정운영에서 든든한 우군(友軍)이 된다. 박근혜 정부 청와대와 행정부 등에서 보필했기 때문에 ‘배신’하거나 ‘자기정치’를 하지 않고 ‘진실’하게 입법부에서 국정과제 수행에 매진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박 대통령을 끝까지 지키는 ‘호위무사’ ‘전위대’ 역할을 할 전망이다. 특히 19대 국회 임기는 2020년 5월까지이므로 박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2018년 2월 이후에도 ‘전임 정권’을 보호하는 현실 정치세력이 될 수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