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5년 공식 활동을 마친 울리 슈틸리케 감독은 올 한 해를 한국 축구에 대한 냉정한 평가로 마무리하며 축구계에 숙제를 안겼다. 그는 “당신들은 대회에서 우승했을 때와 제자들이 1~2년 뒤 크게 성장한 것을 볼 때 어디에서 더 만족을 느끼는가”라는 물음을 던지며 학연과 지연에 얽매여 선수들의 발전을 도모할 수 없는 한국 축구를 냉정하게 평가했다. 하지만 2015년을 정의해 A매치 팀의 최고 해임을 확인시켰다.
불합리한 축구유망주 시스템, 대표팀 기본기 미달 이어져
향후 강팀과의 경기로 어려운 고비…변화보다 강화로 대응
그는 90여 분간 이어진 올해 대표팀이 치른 20차례 A매치를 편집한 영상을 선보이며 “20경기에서 15차례 기술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특정 선수의 실수가 아니다. 유소년 때 익혀야 할 기본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이와 함께 슈틸리케 감독은 한국 선수의 장점으로 나이별로 고르게 잡혀 있는 규율, 배우려는 의지, 성실성이라면서도 승부세계에 억눌린 문화가 유소년들의 질적 성장을 저해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한국축구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
슈틸리케 감독의 평가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후 열린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각 구단 용병 가운데 경기를 뛰지 못하는 선수가 절반가량은 되는 것 같다. 이는 축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구단의 결정권을 쥐고 있기 때문인 것같다”며 비축구인 출신이 구단 운영을 맡는 등 합리적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추지 못했음을 단적으로 지적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또 텅 빈 관중석에 대해 “경기장을 갈 때마다 느끼는 게 관중 수 부족이다. 예외가 있다면 전북 정도”라며 “많은 구단들이 투자가 줄고 다른 문제까지 작용하면서 좋은 경기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축구를 할 수 없는 환경이 돼가고 있다. 구단과 지역 간 활발한 소통이 부족한 것 같다”며 K리그의 당면 과제를 상기시켰다.
이와 더불어 슈틸리케 감독은 “삼성이 수원에서 물러나거나 현대자동차가 전북을 포기하거나 성남시가 성남 운영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면 고민이 많아진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변의 아시아 국가와 비교보다는 세계의 흐름을 꾸준히 연구하고 분석해야 한다”며 “단순한 모방이 아니라 제도적, 문화적 차이를 연구해서 어떻게 K리그만의 것으로 만들지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일침 속 A매치 수장의
고민도 담겨
이 같은 슈틸리케 감독의 한국 축구에 대한 냉철한 평가에는 A매치 팀을 끌고 가야 하는 스스로의 고민도 담겨 있다.
당장 슈틸리케 감독은 2016년부터 진정한 시험대에 올라서게 돼 올해와는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 특히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최종예선이 열리게 돼 4.5장의 티켓을 두고 아시아 12개 국가가 혈전을 펼친다.
이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올해 단 한 번밖에 지지 않았다. 팬들의 기대치가 높을 수밖에 없다. 지면 안된다는 압박감이 찾아올 수 있다. 분명 2016년에는 더 어려운 한해가 될 것”이라며 “높은 수준의 팀을 상대로 올해 좋았던 흐름을 이어가는 게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슈틸리케 감독은 2016년 변화보다 올해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기존 체제를 공고히 하는 전략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올해 보여준 기록들을 바탕으로 우리 선수들이 자신감이 생겼다. 이 자신감을 바탕으로 2016년 강팀들을 상대할 것이다. 쉽지 않겠지만 올해와 같은 철학, 정신력을 가져가야 한다. 누구를 상대해도 방식이 달라져서는 안 된다. 강팀을 상대로 우리의 방식을 바꾸거나 포기하면 안된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특히 슈틸리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의 성장에 기대를 걸고 있다. 그는 “이재성은 많은 활동량과 적극적인 플레이를 장점으로 한다. 하지만 그가 뛰는 포지션은 공격 포인트로 판단해야 한다. 이제 이재성은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 수 있는 선수로 성장했다. 앞으로도 젊은 선수들이 성장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속내를 드러냈다.
다만 한국대표팀의 수장으로서의 고뇌는 여전했다. 해외파와 국내파를 놓고 그간 철칙처럼 적용해왔던 ‘출전시간’ 문제에 대해서는 고집을 한풀 꺾은 모양새다.
슈틸리케 감독은 이청용을 예를 들면서 일부 유럽파들은 소속팀에서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고 그간 ‘경기출전=선발’ 원칙을 고수하고 있지만 최종예선 같은 큰 무대에서 유럽파들의 기량과 경험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솔직한 의중을 내비쳤다.
그는 “그때그때마다 판단을 내려야 하는 부분이다. 유럽리그에서 뛰지 못하는 선수와 K리그에서 매 경기 뛰는 선수가 있다. 매 경기 K리그에서 뛰어도 대표팀을 못하는 선수와 K리그에서 매 경기 뛰는 선수가 있다. 매 경기 K리그에서 뛰어도 대표팀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수 있는 실력을 갖추지 못 했다면 경기에 못 뛰는 유럽파들을 뽑는 것이 나을 수 있다”며 고충을 털어놨다.
이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은 출전시간이 부족한 유럽파들과 면담을 통해 동기 부여를 높이고 있다며 출전시간이 적더라도 팀에 필요한 선수는 안고 가겠다는 원칙 변화도 내비쳤다.
자신감에서 비롯된
변화된 철칙

또 핵심 선수도 기량에 따라 대표팀에서 제외될 수 있음을 보여줘 선수들 스스로에게 위기감을 불러일으켰다. 실제 남태희의 경우 아시안컵 이후 경기력이 만족스럽지 못하자 대표팀에서 제외시키기도 했다. 대신 이재성, 권창훈 같은 신예를 기용해 주전급 선수들 사이에서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결국 출전시간에 상관없이 해외파를 뽑을 수 있다고 밝혔지만 크게 달라질 것 없다는 자신감을 드러낸 셈이다.
이를 놓고 일부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전직 감독들의 비교하며 슈틸리케 감독에 대한 실망감을 표출하고 있지만 이런 발언을 통해 슈틸리케 감독이 책임감 있게 팀을 꾸려가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는 긍정적인 신호로 판단해야 한다는 게 관계자들의 의견이다.
다만 슈틸리케 감독은 2015년에 대해 ‘큰 만족감’이라는 한 단어로 정의했고 좋은 모습을 보여준 선수들에게는 ‘고맙다’라는 한 단어로 마무리해 2016년을 어떻게 정의할지를 놓고 축구 팬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편 슈틸리케 감독은 오는 16일 사랑의 연탄배달 행사, 23일 축구의 날 시상식에 참석한 뒤 24일 스페인으로 휴가를 떠날 예정이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