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한계기업 살생부를 통한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의 줄도산 우려가 번지고 있다. 기업구조조정 전문회사로 조직을 전면개편한 유암코(연합자산관리)는 이미 구조조정 대상 기업들에 대한 실사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또 대기업들의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담당하는 금융당국과 채권은행들도 분주한 모습이다. 채권은행들은 대기업 330여 개에 대한 신용위험평가를 연내에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한계기업 퇴출 칼날…연쇄 도산 참극 벌어지나
신용위험평가 연내 마무리 속도 올려…성역 없어
유암코(연합자산관리)가 비공개로 구조조정 대상 기업 실사작업을 시작했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신용위험평가 결과에 따라 부실징후 기업을 선정하고 경영정상화 가능성에 맞춰 신속히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고 천명한 것과 맞물린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C등급 기업은 워크아웃을 통해 조기 정상화를 지원하고, D등급 기업은 회생 절차를 통해 신속한 시장 퇴출을 유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아울러 기업 구조조정에 속도를 내기 위해 관련 조직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1년간 한시적으로 기업구조조정개선과를 운영하는 방안 역시 살펴보고 있다.
모든 것이 정부가 올해 산업·기업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는 계획의 연장선이다. 채권은행들은 경영이 악화됐거나 잠재적으로 부실이 우려되는 대기업에 대해 수시 신용위험평가를 통해 구조조정 대상을 선정한다.
이른바 대기업 살생부로 볼 수 있다. 이들은 앞서 중소기업 가운데 부실징후기업 175곳을 선별, 구조조정에 착수했다.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 등을 통해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있는 부실징후기업 70개(C등급), 정상화 가능성이 없어 회생 절차가 필요한 기업 105개(D등급)가 각각 포함돼 있다.
산업 구조조정은 철강, 석유화학, 건설, 해운 등 경기에 민감한 업종이 주를 이룰 것으로 보인다. 특히 당국은 기업신용평가를 신속하고 엄정하게 하고 기업의 자구 노력을 전제로 한 경영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아울러 구조조정 추진 과정에서 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의 구조조정 여력을 확보하기 위해 정책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부실기업을 집중매각한다는 방침 역시 내세우고 있다.
현재 상태로 보면 정책금융기관 등 공적부담이 초래되는 경우엔 대주주, 채권단, 노사 등 이해당사자가 고통분담할 수 있도록 한 이상 산업·기업 구조조정으로 대규모 실업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보인다.
노심초사
더군다나 모기업이나 거래처로 있던 대기업이 연말 구조조정 대상에 포함되면 중소 업체들도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올해 퇴출명단 부실 대기업이 지난해보다 늘어날 공산이 큰 가운데 여러 모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그렇다면 살생부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있는 기업은 어디일까. 금융감독원의 한계기업 선정기준은 ▲ 3년 연속 적자 ▲ 2년 연속 이자보상배율 1 미만 ▲ 2년 연속 마이너스 영업 현금흐름을 보인 업체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종전 이자보상배율과 마이너스 영업 현금흐름 평가 기준도 3년에서 2년으로 강화됐다. 미국의 금리인상과 중국 실물경기 둔화 등에 대비해 회생 가능성이 없는 기업을 선제적으로 정리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이다.
가장 먼저 유암코는 구조조정 대상으로 시멘트, IT, 제지, 부품 등 다양한 제조업종을 주로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다른 업종과는 달리 제조업종이 고용 유지가 적합해 구조조정 대상으로 알맞다는 것이다.
경제개혁연구소(소장 김우찬 고려대 교수)는 지난 6월 2일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정하는 자산 5조 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 가운데 공기업과 금융그룹을 제외한 48개 그룹의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 등 재무비율을 연결 기준으로 분석한 보고서(작성자 이수정·이은정)를 발표했다.
해당 자료 기준으로는 지난해 기준 연결 부채비율이 200%를 넘고, 연결 이자보상배율이 1배에 못 미쳐 부실징후 위험 그룹으로 분류된 곳은 현대, 동부, 한진, 한국지엠, 한솔, 한화, 한진중공업, 대성, 동국제강, 대림 등 10곳이었다. 이 가운데 현대, 동부, 한국지엠, 한진중공업, 동국제강, 대림 등 6곳은 아예 영업적자를 면치 못했다.
동부, 한국지엠, 한솔, 한화, 대림 등 5곳은 2013년에 비해 부채비율이 더 높아지고, 이자보상배율은 더 낮아지는 등 재무상태가 나빠졌다.
부채비율과 이자보상배율은 부실기업 판단 잣대로 쓰이는데, 흔히 부채비율 200%와 이자보상배율 1배가 기준으로 활용된다. 부채비율이 높은 그룹은 이자보상배율까지 낮은 것이 일반적이다.
가장 위험한 곳은 건설업종이다. KCC건설, 한라, 코오롱글로벌 등은 지난해 이자보상배율이 각각 0.1, 0.4, 0.12로 2년 연속 (2013년 -3.2, -2.3, 0.3) 1 미만을 기록했다. 한라(442%, 3분기 별도기준)와 코오롱글로벌은 부채비율 역시 300%가 넘는다.
금융위원회 기준으로 부실기업 대상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기업의 채무상환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이자보상배율은 1 미만일 경우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갚지 못한다는 의미다. 이런 관점에서 대형건설사들도 방심하긴 이르다.
한화건설, 대림산업, 쌍용건설, SK건설의 이자보상배율은 지난해 -3.8, -3.3, -0.1, 0을 각각 기록했다. 지난 2013년에도 0.3, 0.5, -4.4, -5로 이자보상배율이 1을 넘지 못한 바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대체로 경기 불황이 지속된 건설, 해운 업종이 대상 명단에 자주 거론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특정 업종만 대대적으로 구조조정한다면 적지 않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어 쉽게 단행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