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구역 상 강남구 내에서 진행중인 건설 사업수주를 노리는 기업들은 양측 대립을 지켜보며 눈치싸움이 한창이다. 강남구는 서울시가 수서역 인근 케이티(kt) 수서지점 터를 매입해 임대주택(행복주택)을 지으려 하자 kt쪽에 부지 매각을 하지 말라는 공문을 보내기도 했다.
해당 지역 공사를 서울시가 주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인근 지역에서 국토교통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해서는 찬성 입장을 보인다. 이에 따라 일각에선 국토교통부에 줄대기하는 기업이 생기고 있다는 풍문마저 나돈다.
구룡마을 앙금? 사사건건 발목ㆍ갈등…‘비방댓글’ 정점찍나
‘밥그릇 싸움’에 등 터지는 현대차·KT·임대주택 참여 회사들
강남구는 지난 8일 서울시 수서동 727번지 일대에 추진하는 44가구의 행복주택 건립사업을 구룡마을로 변경할 것을 서울시에 요구했다.
강남구 관계자는 “서울시에서 추진하는 행복주택 자리는 지리적으로 아파트가 들어설 만한 위치가 아니다”며 “현재도 수서역 주변은 보금자리주택지구 개발에 밤고개로 등 극심한 교통 혼잡에 시달리고 있다. 내년 6월 KTX 역사가 준공되면 교통혼잡이 가중될 것이 불 보듯 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해당 부지는) 삼성~동탄 광역급행철도, KTX, 수서~광주 간 복선전철, 지하철 3호선, 분당선 등 5개 노선이 지나는 광역 교통 요충지다”며 “KTX 역세권 개발을 위해 도로 확장이나 교통시설(역사) 또는 수서역 이용객의 휴식공간 등 공공 이용시설 확충이 시급히 필요한 곳”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서울시가 현재 추진 중인 구룡마을로 행복주택을 이전하는 대안을 제시했으나 시는 이를 검토조차 하지 않고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며 “박원순 시장의 임대주택 8만호 공약사업 목표 달성에 급급한 나머지 수서동 행복주택 건립을 SH공사에서 현물출자하는 방식으로 확정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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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강남구는 국토부가 추진 중인 KTX수서역 행복주택에 대해서는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적극 환영하는 입장이다. 국토부는 KTX 수서역사부지와 남측구역에 행복주택 1900가구를 건립할 계획이다.
강남구 관계자는 “정부에서 젊은층, 대학생, 신혼부부를 위해 건립하고자 하는 행복주택 사업의 좋은 취지를 공감하기 때문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KTX수서역 행복주택은 지리적으로 아파트가 들어서기에 적합한 위치라고 판단한다”고 강조했다.
툭하면 대립
그동안 서울시와 강남구는 구룡마을 개발 방식을 놓고 수년간 갈등을 빚어왔다. 서울시가 지주에게 개발 토지를 돌려주는 환지방식을 주장하자, 강남구가 일부 토지주에게 특혜를 주는 것이라며 반대하면서 갈등이 불거졌다. 결국 서울시가 외연상 구의 입장을 수용하면서 갈등이 일단락됐다.
하지만 1조7000억 원에 달하는 현대차 부지의 사용처를 놓고 양측의 갈등이 수면위로 다시 떠올랐다. 서울시는 현대차 부지와 잠실운동장 리모델링 사업을 같은 지구단위 계획으로 묶어 기부채납 자금을 리모델링에 사용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강남구는 기부채납 자금이 영동대로 지하 통합개발에 우선 사용돼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최근에는 강남구청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인터넷포털 사이트에 서울시를 비방하는 댓글을 작성했다는 의혹이 확산되자 서울시는 9일 실질감사를 한 뒤 위법성이 확인되면 수사의뢰 등 법적조치를 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문제는 서울시와 강남구청 간 밥그릇 싸움에 애먼 기업만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우려다. 앞서 현대차는 서울시와 강남구의 팽팽한 대립으로 오는 2017년 초로 예정된 현대차그룹의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 착공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이 일정대로 오는 2017년 초부터 GBC를 착공하려면 올 연말까지 한전 별관 부지 지하에 위치한 삼성변전소를 옮겨야 한다.
삼성변전소는 축구장 절반 크기로 삼성동 일대 주택과 병원 등 6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각종 전력설비를 이전하고 철거하는 데 최소 1년6개월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이에 현대차그룹은 지난 6월 변전소 사업부지를 가장자리로 옮기는 이전 증축 허가를 강남구청에 신청했다.
건축법 제8조 및 제11조에 따라 새 변전소 건물은 21층 이하, 10만㎡ 이하의 소규모 건축물로, 인허가권한이 서울시장이 아닌 강남구청장 소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연희 강남구청장은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지 않는 한 법적으로 신축을 허가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반려했다. 서울시의 지구단위계획은 내년 상반기에나 확정된다.
이와 관련, 서울시의 판단은 다르다. 강남구가 변전소를 인질로 삼아 현대차의 신사옥 착공을 지연시키면서 서울시를 압박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와 현대차는 문제없이 협상을 이어가고 있다”며 “강남구는 지구단위계획이 확정되지 않았더라도 규정상 도시계획위원회 자문을 받아 변전소 이전을 허가해줄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어 “강남구가 변전소를 볼모로 ‘부당결부금지 원칙’을 위배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는 강남구청장의 직권남용으로도 볼 수 있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변전소 이전 허가가 서울시와 강남구의 공공기여금 갈등 문제로 확전된 것이다.
문제는 양측의 갈등이 심화될수록 그 피해는 현대차가 오롯이 떠안게 된다는 데 있다. 양측의 갈등으로 변전소 이전이 늦어질수록 그만큼 착공시기도 지연되기 때문이다.
MB 시장 때
행정국장 지내
일각에선 서울시와 강남구의 싸움은 박원순 시장과 신연희 구청장의 대립으로 보는 시각이다.
특히 신 구청장이 ‘정치적 효과’ 때문에 서울시와 사사건건 충돌하는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서울시와 갈등을 일으켜 ‘박원순 저격수’로 평가받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신 구청장은 고려대를 졸업한 뒤 1973년부터 서울시 공무원으로 일했고, 이명박 시장 시절 행정국장을 지냈다. 서울시에서 근무할 때는 온화하고 합리적인 행정을 펼쳤다는 평가가 많았다. 2007년 1월 여성가족정책관(1급)을 끝으로 명예퇴직했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 17대 대선 때 한나라당 서울시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을 지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여성 전략공천으로 당선됐고, 지난해 재선에 성공했다. 그와 함께 근무했던 서울시 공무원들은 “정치가 사람을 바꾼 것 같다”고 말하곤 한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