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국소부위를 마취하는 부분마취와는 달리, 수면마취·전신만취는 과정 중 의식이 몽롱해지는 상태가 된다고 알려지고 있다. 때문에 수면마취 주사를 맞은 환자는 마취 과정 중의 짧은 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 이 때를 틈타 환자 몰래 유령수술을 한 경우가 있다. 특히 성형외과가 번성한 국내에서 환자가 기억을 하지 못할 때 다른 의사나 간호사·간호조무사가 대신 수술을 진행하는 경우가 있다고 알려지고 있다.
대형 성형외과 압수수색…불법 관행 도마에
고질적 병폐 이제야? 관심 높아져
최근 검찰이 서울 강남의 그랜드성형외과를 압수수색했다고 밝히면서 성형업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뜨겁다.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대형병원 중 하나인 그랜드성형외과를 압수수색한 것은 지난 12일. 지난 2013년 12월 대입 수학능력시험을 끝낸 한 여고생이 이 병원에서 수술을 받던 중 의식불명에 빠진 적이 있었다.
특히 최근 일부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던 중 의식을 잃거나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보도되고 있어, 유령수술 및 섀도 닥터에 대한 논란 또한 연일 불거지고 있다. 성형업계에 따르면 유령수술 등의 성형외과 내 범죄 행위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유령수술 문제는 지속적으로 제기했던 문제”라고 말한 바 있다.
‘유령수술’은 환자에게 전신마취제를 투여해 의식을 잃게 한 후, 처음 환자의 동의를 얻었던 집도의사가 아닌 간호사·간호조무사 등 다른 사람이 대신 수술하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이를 엄연한 불법으로 규정하고, 법원 판례에서도 ‘유령수술’에 대한 정의 및 불법을 명시한 바 있다. 유령수술은 곧 범죄다.
유명 집도의는 얼굴마담?
수술 과정 중 수면마취를 할 때, 다른 의사나 간호사·간호조무사 등이 대신 수술을 해도 모를 수 있어 더욱 문제라는 지적이다. 국소부위를 마취하는 부분마취와는 달리 수면마취는 주변인들의 얼굴을 볼 수 없고 말소리도 제대로 들리지 않는다. 현재 상당수 병원들이 수면마취 이후 수술을 진행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수면마취·전신마취가 (유령수술을 하는 등) 범죄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어 문제”라며 “환자가 마취를 해 정신이 없을 때 (환자의) 집도의가 아닌 다른 의사가 들어와 수술을 하는 경우가 상당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청한 의사 A씨는 “사실 성형외과 전문의사가 아니어도 (수술을) 할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A씨는 “실제로 의사 출신이 아닌 사람이 수술을 많이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사람은 (성형 전문의처럼) 실제로 수술을 잘 한다고 들었다”고 덧붙였다. 현재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섀도닥터 및 간호조무사의 유령수술이 상당할 수 있음을 짐작하게 하는 발언이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의 말도 A씨의 증언에 신빙성을 더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K 성형외과에서 남자 간호조무사가 의사인 척하며 수술을 직접 한 사건이 있다”며 “이 남자 간호조무사의 경우 어깨 너머로 배운 성형수술을 가짜 의사면허증을 가지고 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특히 이 간호조무사를 데리고 온 사람이 해당 병원의 원장이었다는 사실은 업계 내 고질적 문제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원장이 직접 조무사에게 유령수술을 시킬 만큼 업계에서 유령수술이 횡행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의사회 관계자는 “2013년 그랜드성형외과에서 쌍꺼풀 수술을 받던 여고생이 뇌사상태에 빠지기 전에도 유령수술에 대해 뒷말이 무성했다”며 “하지만 이런 관행이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언급했다.
성형외과 유령수술은 엄연한 불법이고, 이에 대한 수사권은 검찰에 있다. 통상 성형수술도 일종의 계약으로 본다. 환자는 집도의가 수술을 할 것이란 가정 하에 돈을 지불하고 수술을 한다. 때문에 환자의 동의 없이 집도의를 바꾸는 등의 유령수술은 엄연한 사기행위라는 지적이다. 이 과정에서 환자의 신체가 손상되는 문제가 발생된다면 상해 혐의까지 추가된다.
의사회 관계자는 “성형외과 유령수술 문제는 비윤리적 행태인 것에 더해 사기·상해 범죄에 속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한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신체에 대한 권리는 환자로부터 나오는 것인데, 유령수술은 이 점을 간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과다한 수요와 돈…
이런 유령수술의 원인엔 ‘과다한 수요’ 및 ‘돈’이 있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방학 시즌 등 특정 시기에 환자들이 몰리는 경우, 전문의가 모든 환자를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는 연휴 기간인 ‘대목’을 놓치지 않기 위해 유령수술을 거리낌 없이 하는 경우도 많다.
A씨는 “쌍꺼풀 수술은 워낙 간단한 것이 되었기 때문에 수술 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코나 턱 등 시간이 꽤 걸리는 수술은 하루에 한 전문의가 할 수 있는 건수가 정해져 있다”며 “하지만 만일 특정 시기에 수험생이나 중국인 관광객들이 몰리면, 이를 놓치긴 싫고 이렇게 되다 보면 유령수술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의사회 관계자 역시 “결국은 돈”이라고 언급했다. 한 의사가 하루에 수술할 수 있는 환자 수는 정해져 있다. 이 관계자는 “유령수술의 근본적인 문제는 비윤리적인 의식 때문이다”면서도 돈을 더 벌기 위한 자본주의적 탐욕 또한 문제로 지적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범법 행위를 저질러도 발각이 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발생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특히 불법 성형 중개업체도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지난 2009년 정부가 개정한 의료법 제27조2항 ‘외국인 환자 유치에 대한 등록’에 따르면, 일정한 자격요건을 가진 경우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환자 유치 중개업이 예외적으로 허가됐다. 중국관광객을 상대로 한 성형 중개업체가 많아진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식 등록업체가 아닌, 불법 브로커들이 환자를 유치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지난 1월 서울 청담동 성형외과에서 한 50대 중국인 여성이 사망한 사건도 이 같은 문제 때문에 발생한 것이란 목소리가 나왔다. 이 여성은 이마, 눈, 코 수술을 받던 중 뇌사 상태에 빠진 뒤 사망했다.
당시 이를 두고 유령수술 때문에 발생한 의료과실이라는 지적이 있었다. 사고의 발생 원인엔 유령수술이 있고 유령수술의 원인엔 과다한 환자 유치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수요 창출, 즉 많은 환자를 유치하려는 데에는 자본주의 원리가 작용한다는 비판이었다.
한편 연이어 발생한 성형외과 내 불법 유령수술을 계기로 몇 해 전부터 불거진 ‘일부 의사들의 범죄 행위 및 비윤리적 의식’이 또다시 여론의 재판에 올랐다는 평이다. 일각에선 의사들의 윤리교육 등 사후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특히 이번 수사가 철저히 이뤄져 성형업계 내 고질적 병폐를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