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예창작과에 다닐 때부터 시를 가장 좋아했나.
▶대학교 입학 전에는 시를 읽어본 적도 없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들어갔다. 하지만 소설에 관심이 많았을 뿐 잘할 수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시를 쓰게 됐는데 재미있었다. 수업 시간에 시를 접하면서 점점 시와 가까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소설을 많이 읽는다. 찾아서 읽는 비율은 소설이 많다.
-갈등 구조 조성 등이 어려워서 소설이 맞지 않다고 느꼈나.
▶이야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문예창작과에 들어왔지만 그 즐거움이 꼭 소설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를 좋아하게 해준 교수님이 있었나.
▶과목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수업도 열심히 듣게 되는 것 같다. 이수명 시인에게 강의를 들었는데 매우 멋있었다. 한 번은 자작시를 제출했는데 칭찬을 해주셨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이후로 시를 더 자주 썼던 던 같다.
-등단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과 2학년 때 칭찬받았던 수준의 격차는 꽤 나는 편인가.
▶당연히 차이가 나지만, 세계관과 작법은 크게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습작하면서 스스로 쓰는 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있었는데, 등단하는 것과는 별개로 생각했다. 등단하는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있었다.
-감정을 예민하게 만들거나 소재와 단어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타협하고 느슨해지는 때가 있나.
▶항상 그 부분과 싸워야 하는 것 같다. 시를 쓰는 게 힘든 것은 당연하다. 힘이 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정도 했으면 잘 쓴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위험하다. 내가 뭔가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주하면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
-등단 후 느꼈던 시의 매력과 한계는 어떤 것이었나.
▶언어를 근원적인 형태, 순수한 형태로 다루는 문학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다른 예술로 느끼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소설의 경우 이야기라는 더 큰 구조로 굴러가는 것인데 시는 이보다 작은 층위의 기본 단위로 굴러간다. 동시에 언어라는 게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크게 확장적이지 못하다. 개념과 생각을 옮길 때 답답한 순간이 있다.
-읽은 시집 중 감동을 했던 시집은 무엇이었나.
▶신대철 시인의 <무인도를 위하여>다. 처음으로 시에 대한 쾌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시집이 워낙 많다. 김춘수, 김수영 시인도 좋아한다.
-이성 간의 사랑,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 같다.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한 시도 많이 썼나.
▶시는 1인칭 장르다. 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를 중심으로 어떤 관계를 불러일으킨다. 그 관계의 형상은 ‘너’와의 사랑으로 다가온다. 연애 경험을 불러들이긴 하지만 그것을 주된 주제로 삼은 적은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시가 멀리 나가는 힘을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근원에 성욕이 깔린 것은 맞지만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서 창작을 할 필요는 없다. 그 요소를 빌리면서 다른 지점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를 쓰거나 감수성 짙은 메모를 할 때 내면의 욕망을 최대한 정직하게 옮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지 않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솔직하다’라는 것은 착각이다. 일시적인 감정은 조금만 지나면 변한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기분은 종이 위해 적는 순간 훼손된다. 내면에 담겨 있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닌데, 적기 위해 선택을 하면 다른 곁가지들이 잘려나간다. 사실 그 곁가지들이 있기 때문에 내면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하는 순간 진정성은 사라진다. 그래서 시는 그 관념을 우회하면서 보존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면서 다른 가능성이 생기고 의미가 강해진다.
-자신의 시를 지배하는 시절이나 특정 이미지가 있는가.
▶시집을 두 권 내는 동안 중학교 고등학교를 많이 떠올렸다. 학교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이미지다. 이를 활용해 다른 이미지를 환기했다.
-서정시를 쓰게 되더라도 철학, 인문학 책을 많이 읽어야 할까. 아니면 여행, 영화, 사진 등 이미지가 위주의 경험으로도 시가 성장할 수 있나.
▶철학서를 읽는다면 지식적인 부분보다는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부분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통념을 의심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하는 태도 가지고 있어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시를 많이 읽고 써야한다.
-시가 써지는 상태는 평온할 때인가. 아니면 외롭고 불안할 때 쓸 수 있는 상태가 되나.
▶그 자체는 크게 상관이 없다. 감정보다는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나. 충분히 ‘딴짓’을 했는지에 달려있다. 딴짓을 해야 딴 생각이 나더라. 시는 하나의 생각을 쭉 물고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딴생각들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생각이 무르익도록 기다리면서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를 쓰다 보면 처음 발단이 됐던 아이디어도 버릴 때가 있다. 써둔 것들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떤 것을 가져올 수 있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쌓아올린 것을 포기해야 할 때는 항상 온다. 생각을 다 쓴다고 작품이 되지 않는다. 생각을 하는 것은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버려가는 것 같다. 쓰는 시간보다 방향을 고민하고 포기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hojj@ilyoseoul.co.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