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황인찬 인터뷰, ‘딴 짓을 하고 세계를 의심하면서 무르익는 시적 상상’
시인 황인찬 인터뷰, ‘딴 짓을 하고 세계를 의심하면서 무르익는 시적 상상’
  • 이창환 기자
  • 입력 2015-12-07 12:32
  • 승인 2015.12.07 12: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요서울|이창환 기자] 데뷔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김수영 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황인찬은 벌써 문단에서 나름의 개성을 구축하고 있다. 두 번째 시집 [희지의 세계]는 온라인 서점에서 시집치고는 꽤 상위권이다. 대중적인 몇몇 시선집을 제외하고는 가장 많이 팔린다. 시인 김행숙과 김기택은 각각 황친찬의 시를 두고 “언어에게 옷을 입히는 방식이 아니라 언어를 씻기는 방식을 통해 그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적 경험을 제공한다.”, “언어가 닿지 않는 지점 또는 사물이나 사물과의 관계에서 생성되는 무수한 질문과 운동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을 보여 준다.”고 평했다. 시는 다른 장르와 달리 독자들의 깊이 있는 해석이 어렵다. 대부분은 시가 풍기는 묘사와 분위기를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친다. 물론 그것도 서정시의 매력이다. 시인 황인찬을 만나, 시집에 대한 전문적인 대화보다는 시를 어떻게 좋아하게 됐고 어떤 순간에 시적 영감이 떠오르는지를 들어봤다.

-문예창작과에 다닐 때부터 시를 가장 좋아했나.

▶대학교 입학 전에는 시를 읽어본 적도 없다. 소설을 쓰고 싶어서 들어갔다. 하지만 소설에 관심이 많았을 뿐 잘할 수 있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서 고민하던 중에 시를 쓰게 됐는데 재미있었다. 수업 시간에 시를 접하면서 점점 시와 가까워졌다. 그래도 여전히 소설을 많이 읽는다. 찾아서 읽는 비율은 소설이 많다.

-갈등 구조 조성 등이 어려워서 소설이 맞지 않다고 느꼈나.

▶이야기를 만드는 데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글 쓰는 것을 좋아해 문예창작과에 들어왔지만 그 즐거움이 꼭 소설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를 좋아하게 해준 교수님이 있었나.

▶과목 선생님을 좋아하면 그 수업도 열심히 듣게 되는 것 같다. 이수명 시인에게 강의를 들었는데 매우 멋있었다. 한 번은 자작시를 제출했는데 칭찬을 해주셨다. 대학교 2학년 때였다. 그 이후로 시를 더 자주 썼던 던 같다.

-등단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과 2학년 때 칭찬받았던 수준의 격차는 꽤 나는 편인가.

▶당연히 차이가 나지만, 세계관과 작법은 크게 첫 시집 <구관조 씻기기>와 큰 차이가 없었다. 습작하면서 스스로 쓰는 시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은 있었는데, 등단하는 것과는 별개로 생각했다. 등단하는 과정을 통과할 수 있을까 불안감이 있었다.

-감정을 예민하게 만들거나 소재와 단어를 떠올리는 과정에서 자기도 모르게 타협하고 느슨해지는 때가 있나.

▶항상 그 부분과 싸워야 하는 것 같다. 시를 쓰는 게 힘든 것은 당연하다. 힘이 드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정도 했으면 잘 쓴 것 같다고 생각하는 게 위험하다. 내가 뭔가를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안주하면 성장하지 못할 수 있다.

-등단 후 느꼈던 시의 매력과 한계는 어떤 것이었나.

▶언어를 근원적인 형태, 순수한 형태로 다루는 문학이라는 점에서 장점이 있다. 다른 예술로 느끼지 못하는 지점이 있다. 소설의 경우 이야기라는 더 큰 구조로 굴러가는 것인데 시는 이보다 작은 층위의 기본 단위로 굴러간다. 동시에 언어라는 게 이미지와는 다른 것이기 때문에 크게 확장적이지 못하다. 개념과 생각을 옮길 때 답답한 순간이 있다.

-읽은 시집 중 감동을 했던 시집은 무엇이었나.

▶신대철 시인의 <무인도를 위하여>다. 처음으로 시에 대한 쾌감을 느꼈다. 좋아하는 시집이 워낙 많다. 김춘수, 김수영 시인도 좋아한다.

-이성 간의 사랑, 육체적인 사랑에 대해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시기 같다. 섹슈얼리티를 소재로 한 시도 많이 썼나.

▶시는 1인칭 장르다. 내가 드러나지 않더라도 나를 중심으로 어떤 관계를 불러일으킨다. 그 관계의 형상은 ‘너’와의 사랑으로 다가온다. 연애 경험을 불러들이긴 하지만 그것을 주된 주제로 삼은 적은 없다. 그렇게 될 경우 시가 멀리 나가는 힘을 얻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다. 인간이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근원에 성욕이 깔린 것은 맞지만 그 자체를 표현하기 위해서 창작을 할 필요는 없다. 그 요소를 빌리면서 다른 지점들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런데 사람들이 시를 쓰거나 감수성 짙은 메모를 할 때 내면의 욕망을 최대한 정직하게 옮겨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지 않나.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생각이 ‘솔직하다’라는 것은 착각이다. 일시적인 감정은 조금만 지나면 변한다. 마음속에 있는 생각이나 기분은 종이 위해 적는 순간 훼손된다. 내면에 담겨 있는 것은 한 가지가 아닌데, 적기 위해 선택을 하면 다른 곁가지들이 잘려나간다. 사실 그 곁가지들이 있기 때문에 내면에 어떤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진정성을 보여주려고 하는 순간 진정성은 사라진다. 그래서 시는 그 관념을 우회하면서 보존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러면서 다른 가능성이 생기고 의미가 강해진다.

-자신의 시를 지배하는 시절이나 특정 이미지가 있는가.

▶시집을 두 권 내는 동안 중학교 고등학교를 많이 떠올렸다. 학교는 사람들에게 공통적인 이미지다. 이를 활용해 다른 이미지를 환기했다.

-서정시를 쓰게 되더라도 철학, 인문학 책을 많이 읽어야 할까. 아니면 여행, 영화, 사진 등 이미지가 위주의 경험으로도 시가 성장할 수 있나.

▶철학서를 읽는다면 지식적인 부분보다는 의심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부분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통념을 의심하고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의심하는 태도 가지고 있어야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다. 동시에 시를 많이 읽고 써야한다.

-시가 써지는 상태는 평온할 때인가. 아니면 외롭고 불안할 때 쓸 수 있는 상태가 되나.

▶그 자체는 크게 상관이 없다. 감정보다는 충분히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나. 충분히 ‘딴짓’을 했는지에 달려있다. 딴짓을 해야 딴 생각이 나더라. 시는 하나의 생각을 쭉 물고가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딴생각들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생각이 무르익도록 기다리면서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를 쓰다 보면 처음 발단이 됐던 아이디어도 버릴 때가 있다. 써둔 것들을 보면서 어디로 가야 하나, 어떤 것을 가져올 수 있나, 길을 찾아 나가야 한다. 쌓아올린 것을 포기해야 할 때는 항상 온다. 생각을 다 쓴다고 작품이 되지 않는다. 생각을 하는 것은 쌓아올리는 것이 아니라 버려가는 것 같다. 쓰는 시간보다 방향을 고민하고 포기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hojj@ilyoseoul.co.kr

 

 

 

 

이창환 기자 hojj@ilyoseoul.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