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 마음을 치료한다는 점에서 문학은 의사라는 직업과 닮아 있어
내가 어려울 때 가장 위안이 되었던 건 바로 독서였습니다. 특별히 유대인 수용소 아우슈비츠 실화나 카프카의 소설처럼 인간의 부조리를 드러낸 작품을 읽다보면 내 고민 따위는 이미 해결된 거와 다름이 없으니까요. 어쩌다보니 제가 독서 예찬론자가 되었습니다. 마치 거리에서 하나님을 믿으라고 외치는 사람처럼 저도 책을 읽자고 독려합니다. 하지만 자칫 제 의도를 오해 할까봐 걱정입니다. 프란시스 베이컨은 독서에 대해 이렇게 충고 했습니다.
“논박이나 반박을 위해 책을 읽지 마라, 맹목적으로 믿거나 당연한 것으로 여기기 위해 읽지도 말라. 이야깃거리를 찾거나 담화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찰하고 숙고하기 위해 독서하라.” 그러니까 제가 오로지 고찰하고 숙고하느라고 책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 <아프지 마세요>의 머리글에서
[일요서울 | 박찬호 기자] 18명의 의사인 집안의 5남매 중 막내인 김애양원장(57·은혜산부인과)은 환자들에게 종종 소설속의 건강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문학속의 건강과 질병을 주제로 한 수필집 <아프지 마세요>(재남)가 나와 출판계에 잔잔한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2월 2일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
- 책을 내게 된 동기는
▲ 우리들은 언제까지나 병의 노예일 수는 없습니다. 비록 몸은 아플지라도 마음만큼은 꿋꿋하게 아프지 않아야 한다는 게 저의 지론입니다. 그 말을 하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의사가 글을 쓴다면 조금 의아해 합니다. 환자를 진료하기에도 바쁠 텐데 언제 시간이 있어서 차분하게 글을 쓰며 인문학에 몰두할 수 있느냐는 것이지요. 하지만 인간을 제대로 이해해야 좋은 치료를 할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문학만큼 인간을 잘 알게 해주는 것이 없다고 봅니다. 누구나 감추기 마련인 우리 인간의 모순이나 갈등이나 문제점들을 문학은 낱낱이 해부해서 보여주지요. 그래서 문학을 통한 마음 치료에 중점을 두는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 이번 책은 수필집으로 세계적인 작가의 문학작품이 등장한다. 일부러 그러했나.
▲ 제가 읽은 책을 통해 저의 생각과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수필이라는 형식으로 담았습니다. 그동안 한우리 독서신문과 의협신문에 연재해서 독자들의 좋은 평을 받은 내용 위주로 추렸습니다. 내용 중에는 체홉, 생텍쥐페리, 크로닌, 토마스만, 카프카, 셰익스피어, 네루다, 플라톤의 작품들이 등장합니다.
- 제목을 <아프지 마세요>라고 붙인 특별한 이유는.
▲ 시어머니가 92살인데 뉴욕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공항에서 지인 중에 한 분이 ‘할머니 잘 다녀오세요. 아프지 마세요’라는 말을 듣고 마음에 와 닿아, 몸에 병뿐만이 아닌 마음이 아프지 말라는 소리로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의 책 제목도 그렇게 했습니다.
- 의사인데 책을 많이 읽고 책이 환자를 대할 때에 얼마나 도움이 되나.
▲ 저는 의사가 된 후에 책을 읽기 시작했고 그 책들에 매료되어 헤어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책을 읽다 줄곧 내 환자들을 떠올리게 됩니다. 아니 거꾸로 환자를 보다 소설 내용이 기억나는 경우도 많지요. 우리 삶 속에서 차마 털어 놓지 못하는 억울한 일이나 원통한 일들을 문학 작품들은 속 시원하게 표현해 주곤 하잖아요.
긴 근심의 그림자를 이끌고 온 환자들에게 힘을 내라고, 병이란 삶의 과정일 수밖에 없으니 피하려고만 하지 말고 ‘번쩍’ 이겨낼 용기를 가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비록 질병이 찾아오더라도 희망을 갖고 밝은 마음으로 견뎌나가자는 뜻으로 이 한 권의 수필집<아프지 마세요>를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이 수필집이 부디 영혼의 고통을 치유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의사들은 건강관리를 어떻게 하나.
▲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병원을 잘 가지 않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정신과 의사인 남편은 혈압이 높지만 병원에 가지 않습니다. 병원 가면 뻔히 ‘당장 약 먹으라’고 할 것이므로 식이요법을 해볼 기회도 갖지 못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감기에 걸려도 약은 안 먹고 쌍화탕 정도만 마십니다. 자연 치유되는 면역력이 중요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가벼운 병이라도 환자들은 겁부터 먹습니다. 하지만 질병에 의연하게 대처하고 병을 조금 우습게 알 필요가 있습니다. 누구나 다 병에 걸리고 생명은 유한하지 않나 생각을 합니다. 우리 몸은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의사이자 수필가인 김애양 원장은 1998년 <올챙이의 꿈>으로 등단 후 5권의 책을 냈으며 제4회 남촌문학상 수필부문 수상했다. 기자가 찾아간 그의 진료실에는 의료전문서적 못지않게 다양한 문학서적들이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다.
세상을 남다른 시각으로 보는 김애양원장은 환자들을 대할 때도 특유의 독특한 어투로 아픔을 어루만져 주어 진료실엔 오랜 친구 같은 환자들이 끊이지 않는다.
상담 중에 긴장하고 있는 어린 환자에게 ‘내가 정확히 봐 줄 테니까. 걱정 말고 침대에 올라가 자 빠져 봐 유’라고 하면 환자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긴장을 풀고 치료실로 들어간다.
생활 속에서 문학적 표현을 즐기는 김원장은 때로는 시골 장터에서 노인들이 쓸 법한 구수한 어투로 주변사람들의 마음을 무장 해제를 시키고 즐거움을 주곤 한다. 어려운 의학용어를 알가 쉽게 말해주어 환자들의 질병에 대한 두려움을 반감시키기도 한다.
김애양원장의 진료실은 하루에도 여러 번 변화무쌍하다. 예상보다 빨라 치료되었다고 고마움을 표하는 사람, 왜 나만 아프게 치료하느냐고 짜증을 내는 사람 들이 있다.
김애양원장의 <아프지 마세요>에는 뛰어난 상상력과 독특한 문체, 재미있는 진료실 이야기 등을 세계적인 문학작품과 한께 읽는 즐거움이 있다. 김원장은 작품 속에 특별한 이야기, 특별한 부분을 그만의 시각으로 친구에게 이야기 하듯 들려준다.
*김애양 원장은…
1959년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에서 태어났다. 한샘여중, 신광여고, 이화여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평생을 셰익스피어 번역에 헌신한 영문학자 아버지를 흠모하여 작가가 되고 싶어했다. 초등학생 때 전국 글짓기 백일장에 몇차례 입상, 조금은 문학적 재능이 있음을 확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은 배고픈 것’이라는 아버지의 만류로 의사의 길로 접어든다. 의대를 졸업한 후 치료보다 출산에 의미가 큰 산부인과를 택했다.
의사가 된 후에도 작가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문학이야말로 또 다른 출산이라는 생각으로 수필 쓰기를 계속했고, 이내 등단을 한다.
강남구 역삼동에 병원을 개업한 후 낮에는 종일 진료실에서 환자를 만나고 밤에는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1998년 발간한 첫 수필집 <초대>가 제4회 ‘남촌문학상’을 수상하는 덕택에 수필가로 제법 유명해졌다. 현재는 수필 쓰는 의사들이 모여 만든 의사수필가협회 총무와 서울시 강남구의사회 공보이사를 맡고 있으며 ‘수필문우회’ 회원이다. 김 원장은 ‘아폴론이 의학과 문학을 함께 관장하던 신이듯이 문학과 의학이 동시에 치유 역할을 한다는 걸 말하고 싶어’ 글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또한 ‘의사도 때로는 아프다는 것과 그냥 보통사람이란 것’도 말하고 싶어서.
chanho227@ilyoseoul.co.kr
박찬호 기자 chanho22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