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집권여당이 12월3일을 기점으로 그동안 ‘숨고르기’에 들어갔던 친박 비박 간 공천을 둘러싼 전운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지난 11월 초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친인척 구설수, 부친 친일 문제에 동문주가조작 의혹까지 ‘십자포화’가 쏟아졌다. 이에 ‘김무성 12월 위기설’이 조기에 현실화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갑작스런 YS 서거에 따른 조문정국, 청와대의 한중 FTA 및 예산안 처리에 대한 강력한 주문으로 공천을 둘러싼 양측의 갈등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3일을 기점으로 노동개혁안을 제외한 청와대의 대국회 주문사항 대부분이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공천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12월 내내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 신호탄은 친박 좌장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이 쏘아 올렸다.
- ‘왕의 남자’ 유기준 귀환 ‘영남 물갈이’ 힘 보태
- 친박·진박 암투… ‘多朴 구도’로 진화

또 다른 하나는 친박 내 주도권 다툼으로 기존 당내 구심점 역할을 해오던 서 최고와 ‘왕의 남자’로 있다가 당에 복귀한 인사인 유기준, 최경환 그룹 간 내부 다툼이다.
‘치고’ 나오는 서청원, ‘한 발’ 물러나는 무대
지난 11월16일 친박 비박간 주도권 다툼은 새누리당 비공식 최고위원회 회의 자리에서 터져 나왔다. 회의 전 당내에서는 김 대표가 공천룰을 정하기 위한 작업이 지지부진해 정치신인들을 위해서라도 공천특별기구와 공천관리위원회를 동시에 출범시키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고 있다는 말이 돌았다. 특히 특별기구 위원장에 황진하 사무총장으로 하고 공천위원을 비박계 인사로 채우려 한다는 소문까지 돌면서 친박계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이런 가운데 이날 최고위 비공개 회의자리에서 김 대표가 “공천관리위원회 구성을 앞당기자”고 제안하자 서 최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룰도 결정되지 않았는데 공천 문제는…발상부터 당을 잘못 이끌고 가는 대목”이라고 불같이 화를 내면서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이에 대해 당시 김 대표는 ‘할 말 없다’며 서 최고의 행동에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상황이 긴박해지자 19일 원유철 원내대표가 중재해 김 대표와 서 최고와 함께 비밀리에 3자회동을 가졌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서로간 입장차이만 확인하고 끝난 것으로 전해졌다.
서 최고 비박 견제 친박 구심점 나서
김 대표와 서 최고 간의 충돌은 공천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국민공천제’를 주장한 김 대표는 공천룰을 빨리 정해야 내년 총선과 차기 대권가도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할 수 있다.
김 대표 측은 국민여론을 최대 70%이상 최소 60%까지 공천에 반영해야 한다고 피력한다. 이 과정에서 인지도가 높은 현역 의원들이 절대적으로 유리하지만 청와대나 친박계의 공천 개입을 최소화하면서 상향식 공천이라는 명분도 얻을 수 있는 일거양득의 전략이 될 수 있다. 이럴 경우 대구/경북에서 친박 키즈들의 입성이 사실상 힘들어지면서 ‘영남 물갈이’ 역시 어렵게 된다. 또한 상향식 공천으로 인해 공천 탈락한 인사들의 김 대표에 대한 ‘불만’도 최소화해 차기 대권을 노리는 김 대표로선 더할 나위가 없는 구도가 된다.
반면 서 대표 입장에서는 기존 경선룰 국민 50 당원 50이 유지될 경우 당원에서 비박계가 열세인 영남과 충청 지역에서 친박계 인사들이 대거 공천을 받을 공산이 높다. 또한 박 대통령이 보낸 후보라는 선거 마케팅이 국민선거인단보다는 당원 선거인단에 더 먹힐 수 있다는 점에서 김 대표의 발상에 찬성할 수 없는 입장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 대표가 발끈한 배경은 일단 김 대표의 제안에 ‘딴죽’을 거는 지연작전 측면이 강하다. 친박계 입장에서는 합의가 어려운 특별기구 구성을 요구하면서 공천관리위원 출범을 최대한 늦춰 ‘기존 공천룰’을 유지시키자는 복안이다.
한편으로 서 대표는 ‘왕의 남자’로 지내다 당에 복귀한 유기준 의원과 이번 달 국회 복귀가 예상되는 최경환 부총리를 견제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사실상 그동안 당내에서 친박 내 구심점 역할을 해오던 서 대표였다. 그러나 유 의원과 최 의원이 당에 복귀할 경우 서 대표의 입지는 좁아지고 내년 총선에서 영향력도 작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김 대표와 ‘대척점’에 서면서 친박 내 명실상부한 구심점 역할을 할 필요성도 ‘진노’의 배경이라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서 대표를 비롯한 친박 내에서는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무리하게 강행할 경우 최고위에서 수적 우세를 빌미로 ‘도미노 사퇴’를 통해 김 대표를 끌어내려 비대위 체제로 갈 수 있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이를 잘 아는 김 대표는 바로 한 발 물러나면서 “공천특별기구를 만들고 그 다음에 총선기획단과 공천관리위원회를 만들어가는 게 순서”라고 양보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나 막판 수적으로 불리한 최고위를 우회해 비박계가 다수인 의원총회를 통해 공천룰을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YS조문정국 끝나 권력전쟁 시작될 조짐
이렇듯 김 대표와 서 대표의 공천 주도권 싸움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하기 전까지 공방이 이어졌다. 하지만 11월 22일 YS서거 이후 급속히 수면 아래로 잦아들었다. 조문정국 중 두 인사 간 ‘YS 진정한 상주가 누구냐’는 논란이 일었지만 크게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조문정국이 끝나자 여당은 청와대가 요구한 한중 FTA 비준동의안과 2016년 예산안 그리고 주요 쟁정 법안을 야당과 마라톤 협상을 벌이면서 갈등이 표출될 여유가 없었다. 그러다 12월3일 노동개혁안을 제외한 쟁점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다시 친박·비박 간 ‘사생결단’식 권력전쟁이 시작될 조짐이다.
특히 ‘돌아온 왕의 남자’ 유기준 의원은 당에 복귀하면서 “박 대통령이 언급한 ‘진실한 사람들’, 정부의 국정철학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많이 당선돼야 당이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우선추천지역을 보다 광범위하게 적용해야 한다며 ‘영남권 물갈이’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한편 유 의원은 해수부 장관이 되기 전 이끌었던 국가경쟁력강화포럼은 12월 중순 최경환 부총리를 초청해 대규모 세미나를 개최해 세를 과시할 예정이다. 바야흐로 20대 총선을 앞두고 기존 비박 대 친박에서 친박 대 진박(진짜 친박), 가박(가짜 친박) 대 진박 등으로 나뉘어 공천을 둘러싼 권력 다툼이 다자구도로 복잡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mariocap@ilyoseoul.co.kr
홍준철 기자 mariocap@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