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친 감금· 폭행’…목격자 없어 문제 심각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지난 1일 조선대학교 의학전문대학원(의전원)은 같은 의전원 학생인 여자친구를 4시간 동안 감금·폭행한 원생 박모(34)씨를 제적 처분하기로 결정했다. 조선대 의전원은 이날 오후 학생지도위원회(지도위)를 열어 ‘데이트 폭력’을 행사한 박 씨에 대해 징계절차에 착수했다. 교수 11명, 원생 2명으로 구성된 지도위는 피해자를 조사한 후 박 씨를 불러 소명을 들었다.
지도위는 3시간여에 걸친 회의 끝에 ‘학생 간 폭행으로 상해를 입힌 학생은 제적할 수 있다’는 학칙에 따라 박 씨를 제적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조선대는 총장의 결재를 거쳐 박 씨를 제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적으로 ‘제적’은 ‘출교’와 달리 재입학이 가능하다. 때문에 박 씨 역시 ‘학칙 상으로는’ 향후 다시 의전원을 다닐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박 씨는 재입학이 불가능한 것으로 확인됐다.
조선대 관계자는 “박 씨는 정확하게 ‘징계에 의한 제적’을 받은 것”이라며 “학칙 상 징계에 의한 제적은 재입학을 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신입학’도 허락하지 않는다는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조선대가 박 씨를 다시 받아들이는 건 불가능하다”며 “혹시나 박 씨가 다른 학교 의전원의 입학 절차를 밟는다 해도 면접 과정에서 의전원 징계·제적 전력과 이유가 다 드러난다. 이런 지원자에게 어느 학교가 신입학을 허용하겠느냐”고 말했다.
제적…재입학 불가능
하지만 연세대에서는 2009 ~2010년에 대학원 총학생회장으로 일했던 신모씨가 공금 7290여만 원을 횡령한 사실이 적발돼 ‘징계에 의한 제적’ 처분을 했으나 1년 만에 연세대학원에 새로 입학하는 것을 허락함에 따라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당시 연대 측은 대학원 총학생회가 반발하며 나서자 “‘징계에 의한 제적’ 처분을 받은 학생이 재입학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신입생으로 입학하는 것은 규정상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조선대 역시 명확한 폭행 관련 학칙이 있었음에도, 법원의 (3심) 최종 판단이 나올 때까지 박 씨에 대한 처분을 미루는 등 그동안 소극적인 대응으로 일관해왔다. 그러다가 언론을 통해 파문이 커지자 조치에 나서 비난을 받고 있다.
법원 등에 따르면 조선대 의전원생인 박 씨는 지난 3월 28일 새벽 여자친구 이모(31)씨의 집에 찾아가 전화 응대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 씨를 감금하고 수차례 폭행한 혐의로 기소됐다.
박씨는 폭행을 당하던 이 씨가 다른 방으로 피신해 경찰에 신고하자 따라들어가 전화기를 빼앗고 폭행을 계속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같은 박 씨의 무자비한 폭행으로 인해 이 씨는 갈비뼈 2개가 부러지는 등 전치 3주의 상해를 입었다.
그리고 이 같은 상황은 이 씨가 미리 준비해놓은 녹취에 생생하게 담겼고, 언론 등을 통해 공개되며 충격을 줬다.
당시 피해 여성 이 씨가 녹음한 녹취록을 들어보면 “열 셀 동안 일어나라” “내가 장난하는 것 같냐”는 협박성 목소리와 함께 박 씨가 폭행하는 상황을 전하는 소리가 수차례 반복적으로 들렸다.
이때 피해 여성이 “오빠 진짜 아프다” “일어날 수가 없다”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목소리가 너무 처절해 충격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광주지법 형사 3단독 최현정 판사가 박 씨에 대해 단지 벌금 1200만 원만을 선고함에 따라 이 씨와 박 씨가 계속 함께 학교생활을 할 수 있게 돼 논란이 더욱 커졌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이 씨의 상해가 아주 중한 편은 아니지만 2시간 이상 폭행이 이어져 죄질이 좋지 않다”며 “박 씨가 범행을 반성하고 있고, 음주운전 1회 벌금형 이외에는 범죄 전력이 없다. 피해자를 위해 500만 원을 공탁했고,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학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는 점을 고려했다”고 양형 이유를 들었다.
특히 ‘집행유예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학교에서 제적될 위험이 있는 점을 고려했다’는 부분에 대해 대중 사이에서는 ‘피해자 안위’보다 ‘가해자 미래’를 더 걱정한 것 아니냐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셌다. 또한 지나치게 미온적인 판결이라는 지적과 동시에 봐주기 처분이라는 논란도 일었다.
연인들만의 문제 아냐
최근 이와 같이 연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데이트 폭력' 소식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와 딸을 가진 부모들은 적잖이 우려하고 있다.
그동안 데이트 폭력이 엄연한 범죄행위임에도, 연인들 사이의 문제로 인식되면서 사회적 심각성이나 법적 처벌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데이트 폭력의 원인으로는 달라진 이성교제 문화, 피해자가 피해사실을 은폐하려는 경향, 남성들이 데이트 폭력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재해석 하는 점, 데이트 폭력에 대한 부족한 인식 등이 꼽힌다.
서울여자대학교 3학년에 재학중인 민경희(22)씨는 “가장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커플 사이에서 폭력이 행사됐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충격적인데, 그 폭행 정도가 상당히 심하다는 점에서 놀랐다”며 “기사를 본 후 끔찍하고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자가 부끄러움을 느낄 수 있도록 온당한 처벌을 받아야 또 다른 피해자가 양산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이미숙(32)씨는 “데이트 폭력은 맞은 다음 날 남자친구가 용서를 빌며 잘해주면 마음이 흔들려 그 고리를 끊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변신원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팀장은 “데이트 폭력이 부상된 지는 얼마 되지 않지만 실제로는 전부터 종종 일어나는 사건이었다”며 “문제는 이를 폭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사랑싸움으로 잘못 이해해 그 심각성이 더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변 팀장은 “많은 피해자들이 데이트 폭력과 사랑싸움을 명확히 구분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데이트 폭력은 자칫 반복적으로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작은 구타일지라도 가볍게 넘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평등한 관계에서 소통해야 하는 인간관계인 만큼 인간의 존엄성이 왜곡되면 안 된다는 인식을 분명히 가져야 한다”면서 “데이트 폭력을 범죄로 인식하고 반드시 주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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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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