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YS 상가정치의 최대 피해자는 김무성?
친박계 느긋… 청와대-김무성 대표 빅딜설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장면1] 내년 4·13 총선에서 새누리당 공천을 받아 수도권 출마를 희망하는 한 정치신인은 최근 모 선거기획사 대표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기획사 대표는 “새누리당의 공천은 친박계 핵심 A 의원이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내가 A 의원과 아주 친하다. 우리에게 선거기획을 맡기면 A 의원과 면담을 주선하겠다”고 했다.
긴가민가했던 출마 희망자는 친분이 있는 다른 친박계 의원에게 물어봤다. 돌아온 대답은 “A 의원은 이미 박근혜 대통령의 눈 밖에 난 인물이다. 동아줄이 아니다. 다른 루트를 찾아보라”였다.
[장면2] 또 다른 출마 희망자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새누리당에서 발이 넓은 편에 속하는 그는 친박계 의원들을 다양하게 접촉했다. 그 중 한 의원은 “친박계 핵심 B 의원이 공천구도를 짜고 있으며, 청와대 실세 C씨와 긴밀하게 협의해 인재풀을 만들고 있다”고 귀띔했다.
그는 어렵게 B 의원과 접촉했다. 하지만 B 의원은 “대통령의 성격을 모르느냐. 대통령은 큰 원칙만 제시할 뿐 공천에 일일이 간여하지 않는다. 지금 나오는 말들은 다 소설”이라고 타박했다.
[장면3] 영남권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인사는 원래 김무성 대표계열로 통했다. 금배지를 단 경험은 없지만 출마를 희망하는 선거구에서 일정한 조직을 갖고 있어 지난해 7·14 전당대회 때 친박계 서청원 최고위원과 맞붙은 김 대표를 적극 지원했다. 그는 이번에 보은 차원에서 김 대표가 공천을 챙겨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
하지만 김 대표가 “내가 있는 한 전략공천은 없다”며 상향식 공천을 주장하는 바람에 실망이 컸다. 그런 그에게 친박계 핵심 인사 D씨가 은밀하게 접근해 왔다고 한다. D씨는 “지금이라도 ‘무대’(무성이 대장·김무성 대표)와 결별하고 이쪽으로 넘어오는 게 공천을 받는 데 유리할 것”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내년 총선이 4개월여 남았지만 아직 공천 룰조차 정하지 못한 새누리당에서 공천을 둘러싸고 온갖 괴담이 떠돌고 있다. 현행 당헌·당규는 전략공천을 배제하고 상향식 공천을 규정하고 있음에도 “누가 누구에게 공천을 줄 수 있다”는 식의 말이 떠돈다. 이는 현행 ‘우선 추천지역’ 조항을 둘러싼 해석 때문이다.
지난해 2월 개정된 새누리당 당헌 103조는 ‘여성·장애인 등 정치적 소수자 추천지역’, 그리고 ‘공모 신청 후보자가 없거나 신청자들의 경쟁력이 현저히 낮다고 판단한 지역’ 등에 한해 우선추천지역으로 선정할 수 있도록 했다.
공천 관련 온갖 괴담 떠돌아
친박계는 이 조항을 사실상의 전략공천 규정이라고 해석하고 자기편으로 만들 후보들을 찾고 있다. 이런 분위기는 결과적으로 박 대통령이 조성했다고 볼 수 있다. ‘배신의 정치 심판’, ‘진실한 사람 선택’, ‘국회의 립서비스’ 발언이 이어지자 친박계가 이를 정치권 물갈이로 해석하면서 행동에 나선 모양새다.
김무성 대표는 이를 적극 막으려 한다. 자신이 정치생명을 걸겠다고 했던 완전국민경선제(오픈프라이머리)는 이미 물 건너갔지만 전국 모든 선거구에서 여론조사 비중을 높인 경선을 실시하는 것이 목표다. 김 대표는 ‘전략공천’이란 단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그러나 최근의 기류는 김 대표에게 불리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폭제가 된 일은 아이러니하게도 김 대표가 ‘정치적 아버지’라고 불렀던 김영삼 전 대통령(YS) 서거였다. 장례 기간 6일 동안 YS의 업적이 재평가됐는데, 그 중에서도 YS의 인물 발탁 능력이 화제가 됐다. 이명박·노무현 전 대통령은 물론, 이회창 전 총리,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를 비롯해 한국정치를 움직여온 수많은 인물을 YS가 발탁했다.
특히 1996년 4월에 총선으로 구성된 15대 국회는 여야를 막론하고 한국 정치인재의 산실이었다. 당시 YS는 김무성 대표, 이완구 전 총리,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 이재오 의원, 홍준표 경남도지사, 안상수 경남 창원시장, 정의화 국회의장 등을 발굴해 정치에 입문시켰다.
당시 야당의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에 질세라 인물영입에 나섰다. 나중에 야권에서 ‘정풍운동’을 주도하며 열린우리당 창당과 노무현 정부 출범의 개국공신 역할을 했던 ‘천신정(천정배· 신기남·정동영)이 이때 첫 금배지를 달았다. 김한길 전 대표, 정세균 전 대표, 추미애 의원, 작고한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등장도 DJ 작품이었다.
YS와 DJ가 이들을 정치권에 끌어들일 수 있었던 원동력이 ‘전략공천’이었다. 현역 국회의원들과 경쟁을 시키지 않고 적당한 지역을 골라 공천장을 줌으로써 손쉽게 국회에 입성 시켰던 셈이다.
따라서 지금의 친박계는 15대 국회처럼 유능한 인재들을 발굴하기 위해선 전략공천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로선 YS의 업적에 시비를 걸 수도 없고 난감한 입장이다. 이 때문에 “YS 상가(喪家) 정치의 최대 수혜자는 새누리당 친박계, 최대 피해자는 김무성 대표”라는 말이 나온다.
PK지역 전략공천 대두
이런 분위기에 따라 정가에선 ‘청와대-김무성 빅딜 설’ 마저 제기된다. 박 대통령이 큰 관심을 갖고 있는 대구·경북(TK)은 친박계가 공천권을 행사하고, 나머지 지역은 김 대표가 상향식 공천을 하든 알아서 공천을 결정한다는 시나리오다.
친박계 일각에선 부산·경남(PK)지역에서도 박근혜 정부 사람들에 대한 전략공천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미 안대희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실상 부산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도 부산 출마가 유력하다. 최상화 전 청와대 춘추관장은 경남 사천-남해-하동에서 뛰고 있다.
문제는 친박계 핵심부와 거리가 먼 출마 희망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이 도전하려는 지역에 친박계 ‘낙하산’이 투하될지 초미의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또 ‘박심’(朴心·박근혜 대통령 의중)을 등에 업었다고 자처하는 경쟁자들이 정말 박심 메시지를 받았는지, 자가발전을 하는 지를 파악하느라 분주하다.
나아가 새누리당 공천을 희망하는 정치신인들은 실세를 찾아 줄을 대기 위해 모든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 여의도 정가에선 최경환 부총리와 대통령 정무특보를 지낸 윤상현 의원, 김재원 의원 등을 공천에 간여할 수 있는 친박계 핵심 실세로 꼽고 있다. 또 청와대의 모 인사가 정치권 친박계와 긴밀하게 연락을 취하면서 공천 구도를 짜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그러나 명확히 드러난 실체가 없다. 이 때문에 청와대와 친박계 핵심의 내부 사정을 잘 모르는 출마 희망자들은 지금도 동아줄을 찾아 헤매고 있다. 또 이런 심리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선거꾼들도 활개를 치고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