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박시은 기자] 아궁이에서 발견된 6억 원의 돈뭉치, 고급 와인 1200여 개가 가득 쌓인 호화주택. 얼핏 들어도 상당한 재력을 가진 이들의 소유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를 소유한 이들은 재력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랜 기간 세금을 내지 않고 버텨왔다. 고액 상습 체납자들인 것이다. 이들이 세금을 내지 않는 수법도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이렇게 체납된 세금만 3조7800억 원이 넘는다.

국세청 007팀 가동…엄정 대처 각오
세금을 체납하는 방법은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기상천외한 방법을 동원해 고액·상습 체납을 하고, 뇌물로 돈을 받는 방법 등이 동원되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서모씨는 100억 원대에 이르는 양도차익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았다. 본인 소유의 부동산 경매로 수십억 원을 배당 받았지만 자금세탁과 현금인출 등을 통해 은닉한 것이다.
국세청 직원들이 예고 없이 전원주택에 나타나자 서 씨는 5만 원짜리 돈다발과 미화 100달러 다발을 가마솥 아궁이에 감췄다가 적발됐다.
또 중개업을 영위하던 이모씨는 해외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후 국내에 해외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구입한 호화주택에서 거주하는 방식으로 소득세 등을 체납했다.
국세청의 조사 결과 체납법인에서 자금이 유출돼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호화주택이 이 씨에게 취득됐다. 호화주택 안에는 고급 와인류 1200여 병과 명품가방 30개, 그림 2점, 골프채 2세트, 금장식(소형 거북선 모양) 1점, 외화(약 150만 원 상당) 등이 존재했다. 이에 국세청은 국세청은 주택처분금지가처분 및 소송을 제기했으며 고급 물품들을 압류하고 봉인 조치 했다.
양도소득세를 체납한 김모씨는 고미술품 감정·판매업자다. 그는 고액체납이 발생하자 폐업 후 미술품들을 숨긴 뒤 다른 사람 명의의 고급 오피스텔에서 호화생활을 하며 살았다.
국세청은 김씨가 미술품을 은닉한 미등록 사업장의 위치를 확인한 뒤 현장수색을 통해 고미술품 500점을 압류했다.
이 밖에 골프장 클럽하우스 금고에 2억 원을 은닉한 체납자도 있다. 골프장을 경영하는 김모씨는 주주 간 이권 다툼으로 경영이 부실화돼 고액 체납이 발생하자 골프장 그린피를 현금 위주로 받아 체납처분을 회피했다. 골프장은 카드매출 압류를 회피하기 위해 현금결제를 유도했고, 현금은 클럽하우스 내 사무실의 금고에 보관했다.
국세청은 골프장 이용객이 몰리는 토·일요일 다음날 금고에 현금이 가장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월요일 업무시작에 맞춰 사무실 현장 수색을 실시했다. 이 결과 사무실 내 금고 4개와 캐디 사물함, 책상서랍 등에 분산 보관 중이던 현금 2억 원을 압류 조치했다.
또 지인 명의를 빌려 부동산 매매대금을 은닉하거나 허위근저당권 설정으로 재산을 은닉한 체납자들도 줄줄이 적발됐다
조세법 처벌법에 따르면 포탈 세액이 3억 원 이상이면 3년 이하 징역에 포탈 세액 3배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상습범의 경우 정한 형의 2분의 1로 가중처벌이 내려지기도 한다.
특히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은 연간 5억 원 이상을 세금포탈하면 무기징역에 처하고, 연간 2억 원 이상 5억 원 미만이면 3년 이상 유기징역에 처한다. 중범죄로 처벌하고 있는 것이다.
친인척 조사도 가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금을 내지 않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다. 2015년 기준 고액 체납자는 2226명에 이른다. 금액으로는 3조7832억 원에 이르며 1인 평균 17억 원에 달한다.
이에 국세청은 지난 1월부터 9월까지 세금을 내지 않기 위해 은닉한 재산을 찾아내 2조3000억 원을 징수했다. 또 부동산 허위 양도, 명의 위장 등 지능성 재산 은닉을 철저히 조사하고 해외 은닉 재산을 끝까지 추적해 체납자들의 꼼수에 엄정히 대응하겠다는 방침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고액·상습체납자 신상정보를 국세청 누리집(www.nts.go.kr)과 세무서 게시판 통해 전격 공개했다. 올해 명단 공개자는 개인 1526명, 법인 700곳이다.
납세자 명단은 체납 발생일로부터 1년을 넘기고 5억 원 이상의 체납액을 납부하지 않은 이들이 이름을 올렸다.
개인 최고액 법인세 미납을 기록한 이는 박기성 전 ㈜블루니어(방위산업체) 대표는 276억 원을 체납했다.
그는 실제 구입하지 않은 부품으로 공군 전투기를 정비한 것처럼 꾸며 243억 원의 정비 예산을 가로챈 혐의로 지난 7월 1심에서 징역 6년에 벌금 30억 원을 선고받았다. 11월 초에는 조세포탈 혐의로 기소돼 징역 2년6월에 벌금 47억 원을 추가로 선고받기도 했다.
또 씨앤에이취케미칼 박수목 대표도 도·소매업을 하며 교통·에너지·환경세 등 490억 원을 체납했다.
이 같은 고액·상습체납자는 연령이 주로 40~50대로 서울·인천·경기 등 수도권 거주자가 많고, 체납액 규모는 5억~30억 원 사이로 나타났다.
세무당국이 이처럼 악성 고액·상습 체납자에 대한 대대적인 단속에 나선 것은 이들의 행태가 대다수의 성실 납세자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고 세수 확보에도 악영향을 끼친다는 판단에서다.
국세청 관계자는 “은닉재산을 끝까지 추적하는 한편 악의적인 체납자는 조세범처벌법에 따라 형사고발하는 등 엄정 대처할 것”이라며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하는 납세자가 존경받는 사회를 만들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체납액 징수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체납 수법이 갈수록 다양해지면서 국세청이 입증해야 하는 것들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도 많기 때문이다. 특히 재산을 타인 명의로 돌려놓은 경우에는 명의를 돌려놨다는 사실에 대한 입증이 어렵다.
이에 정부는 법률을 바꿔 친인척까지 강제 조사할 권한을 국세청에 부여할 방침이다.
한편, 국세청은 ‘은닉재산 신고포상금 제도’(국번 없이 126번)를 운영하고 있다. 신고 한 건당 최고 20억 원까지 포상한다. 지난1월부터 9월까지 총 신고된 건수는 245건으로 체납세액 40억9600만 원을 징수한 대가로 4억7500만 원이 지급됐다.
박시은 기자 seun897@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