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기와 뚝심, 지혜의 정치인 김영삼
- 현 야권 시계는 3년 전에 멈춰 있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결기와 뚝심의 정치인, 호랑이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가 결국 호랑이를 때려잡은 지혜의 정치인, YS라는 이니셜로 우리에게 더 많이 친숙한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역임한 김영삼이 서거했다. 지난 26일 엄수된 국가장은 2009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세상을 등진 노무현, 김대중 두 전직 대통령의 장례 때와는 사뭇 다르게 진영논리에 얽매이지 않고 차분하게 진행되었다.
YS는 그동안 3당 합당을 통해 군사독재의 후예들을 연명시키고, 영남독식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는 지역주의를 공고화시킨 점과 IMF 경제위기라는 사상 초유의 국가부도사태를 초래한 장본인으로 그 책임론 때문에 민주화와 문민화라는 큰 업적을 이룩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평가 되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의 서거를 계기로 여야를 막론하고 그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언론도 그렇고 여론도 마차가지다. 아마도 그가 뿌려 놓은 씨앗이 여야를 막론하고 우리 정치권 곳곳에 싹을 틔우고 크게 자라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 것이다.
김대중, 김영삼, 김종필을 우리는 3김이라 부르고 있고, 그들이 현실정치에서 활약했던 시기를 3김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3김정치는 구태정치와 동의어인 경우가 많았는데, 3김정치가 공식적으로 종식된 2003년 2월 김대중 대통령이 퇴임한 이후에는 3김 정치가 우리의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런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 이르는 보수정권이 계속되는 동안 민주화와 산업화의 경계가 애매모호해지면서 3김정치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기도 하다. YS서거는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우리 정치권, 특히 야당의 리더들은 다시 한번 그의 정치역정을 되돌아 볼 필요가 있고, 거기에서 큰 교훈을 얻어내야 할 것이다.
3년 전 이맘때로 정치시계를 되돌려보자. 11월 23일 심야, 분루를 삼키며 대통령 후보직을 사퇴하던 안철수의 기자회견을 필자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떨리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발음은 정확하게 하면서 차분히 후보사퇴 기자회견문을 읽어 내려가던 그의 모습이 내게는 평생 잊히지 않는 장면 중의 하나다. 안철수 후보의 사퇴에 문재인 후보 측은 쾌재를 불렀겠지만, 안철수 후보 사퇴 후에도 지지율이 크게 오르지 않은 가운데, 안철수가 선거운동을 돕지도 않던 시기가 3년 전 이맘때다.
그 때의 안철수 후보는 지금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바뀌어 새정치민주연합에 당적을 두고 정치를 하고 있다. 2013년 4월 24일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이 된 안철수는 새로운 정치에 대한 국민 열망을 담아내겠다며 신당창당을 추진했지만, 작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붕괴 일보 직전에 있던 민주당과 전격적으로 통합하면서 기성 정치권으로 편입되었다. 일약 제1야당의 대주주로 변신한 안철수 의원이었지만, 4개월 만에 야당대표의 무덤이라는 재·보궐선거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하고 중도하차했다.
당시의 문재인 대통령 후보는 본선에서 박근혜 후보에게 패한 뒤 절치부심의 시간을 보냈지만, 지난 2월 전당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대표로 선출되면서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는 대표로서의 위상을 세워보지도 못한 채 리더십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규모가 크든 작든, 의미가 있든 없든, 그가 대표가 되어 치른 두 번의 재·보궐선거는 역대급으로 참패했으며, 당내 반대세력은 노골적으로 그에게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 새정치민주연합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광주 서구을 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됨으로써, 문재인 리더십에 결정적 타격을 가한 천정배 의원은 지난 11월 18일 창당추진위원회를 출범시킴으로써 그동안 베일에 가려있던 신당의 모습을 드러냈다. 이에 위기감을 느낀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같은 날 76일 만에 광주를 방문하여 문재인 대표에게 성난 호남민심을 달래기 위한 비책을 내놓았다.
그 내용은 다가오는 총선까지 여론조사 상 당내 유력대선주자인 문재인 대표,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중심이 되어 당을 이끌어보자는 이른바 ‘3자공동지도부’ 구상이었다. 당돌하기 짝이 없는 제안에 당장 호남출신 주승용 최고위원과 86세대의 대표주자인 오영식 최고위원이 공개 반발했다. 이러한 제안은 기본적으로 최고위원회의를 무력화시키는 제안인데, 당사자인 자신들과는 전혀 논의가 없었다는 것이다.
결국 오영식 최고위원은 이러한 문재인 대표의 독선적 정치행위를 막지 못한 책임을 지고 27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직을 사퇴했다. 당내 비주류의 대표격으로 불리는 박지원 의원은 이 제안을 ‘영남연대 호남소외’로 규정했다. 3자연대 제안은 그 내용과 형식 모두 성난 호남민심을 달래기 위한 제안이 아니었던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얼마 전 창당 60주년을 거창하게 기념했다. 그런 역사를 자랑하는 정당의 당대표가 당을 사유화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이미 사당화 된 정당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당정치의 측면에서 절차적으로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는 ‘문-안-박 3자 공동지도부 구상’을 제안한 것이다.
제안의 상대가 된 박원순 시장은 “당의 혁신과 통합을 이루자는 문 대표의 제안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고, 현직 서울시장임을 감안해 협력방안을 모색해 나가기로 했다”며 화답했다. 당내 기반이 거의 없는 현직 단체장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아직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제안 자체가 안철수 의원을 겨냥한 제안이고 정치적 셈법도 복잡하기 때문에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안철수 의원은 당초 26일경 이 제안에 대한 답을 내놓을 생각이었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인해 29일 혹은 30일경에 이 제안에 대한 답변을 내놓겠다는 생각인 것 같다. 문재인 대표의 제안 이후 날짜가 많이 지나서인지, 아니면 안철수 의원의 장고 스타일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까지는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제안을 받아들일것이다. 제안을 거부하고 탈당할 것이다. 전당대회를 요구할 것이다’는 등등의 많은 억측들이 여의도 정가에서 돌고 있다.
필자는 안철수 의원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에는 관심이 없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YS와 같은 결기와 뚝심, 지혜에 바탕을 둔 선택을 하기를 바란다. 그가 정치적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필자는 제1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의 실력이 이 정도밖에 안 되는지 답답할 다름이다. 당의 전략단위에서 호남민심에 대한 정확한 진단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문재인 대표의 이러한 제안이 가능했을까? 호남민심을 알고 있더라도 친노 특유의 시간 끌기와 밀어붙이기 전략이 유효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호남에서 5%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대표가 당의 심장인 광주에 가서 하는 제안이라면, 적어도 자신의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았을 경우의 진퇴문제 정도는 언급해야 하지 않았을까?
지금 야권의 시계는 3년 전에 멈춰 있다. 당시 야권의 대통령 단일후보 자리를 놓고 다투던 문재인과 안철수의 공방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3년 전 밀실에서 하던 단일화 협상을 지금은 공개적으로 언론과 민심을 통해서 하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3년 전 실패 이후 국민들에게 자신들의 선택에 대한 진솔한 자기반성과 성찰의 모습을 보여준 적이 없다. 두 사람은 아직 작은 정치인인 것이다. YS가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할 때는 항상 그 책임을 다해왔다는 점을 두 사람은 명심해야 할 것이다. <김영필 전북대 겸임교수>

일요서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