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여왕 벗고 깐깐한 노처녀 됐어요”

‘칸의 여왕’ 전도연이 돌아왔다. <밀양>으로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연의 차기작은 독특한 로맨스 물 <멋진 하루>. 세간의 예상과 달리 소박한 규모지만 <밀양> 이후의 부담감을 떨치고 싶던 전도연에겐 더없이 좋은 작품이었다. 빌려준 돈을 받기 위해 옛 연인을 찾아가는 깐깐한 노처녀로 변신한 전도연의 연기에 기대가 모아지는 건 물론이다.
지난 8월 26일. <멋진 하루> 제작보고회가 열린 아트선재센터에는 400여명의 취재진이 운집했다. 지난 해 <밀양>으로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전도연의 차기작에 걸맞는 취재열기였다.
뜨거운 관심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이날 전도연은 날로 예뻐지는 비결을 묻는 질문에 “화장발이에요”라는 농담을 건네는 등 시종일관 여유로운 모습을 보였다. “놀 듯 편하게 촬영했다”는 <멋진 하루>가 남긴 기분 좋은 후유증 같았다. 임신 4개월째의 부른 배를 살짝 가려주는 헐렁한 원피스와 경쾌한 단발머리가 더욱 편안한 이미지를 연출했다.
<여자, 정혜> <러브 토크> 등을 연출한 이윤기 감독의 신작 <멋진 하루>는 제작비 20억원, 촬영일수 60여 일의 저예산 영화다. ‘칸의 여왕’의 선택치곤 의외다 싶지만 기존 로맨스 물과 차별화되는 내용은 전도연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임신 4개월 헐렁한 원피스 잘 어울려
“<밀양> 촬영 중 원작인 단편소설을 읽었고 이후 이윤기 감독님이 쓴 시나리오를 봤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바로 출연을 결정했어요. 시간이 흐를수록 쌓여가던 <밀양>에 대한 부담감을 털어내고 싶던 차에 좋은 시나리오를 받은 거죠.”
칸 수상 이후 점쳐졌던 해외 진출에 관해서는 “외국어 연기가 어려워서 생각도 안 한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사실 해외에서 출연제의를 몇 번 받았는데 우리나라 말로 하는 연기도 어려운데 외국어로 하면 얼마나 어려울까 싶더라고요. 언젠가 송강호씨랑 ‘우리는 (외국어로 연기하는 게) 자신 없다’고 결론 내렸고 이후로는 생각도 안했어요.(웃음)”
<멋진 하루>는 350만원 때문에 헤어진 지 1년 만에 재회한 연인의 하루를 그린다. 극중 전도연이 맡은 역할은 돈도, 직장도 없는 깐깐하고 자존심 센 노처녀 ‘희수’. 떼인 돈 350만원을 받기 위해 옛 연인 병운(하정우)을 찾아간 희수는 아는 여자들에게 돈을 빌리는 병운의 여정(?)에 동행하게 된다.
사실 희수는 극단의 감정을 넘나드는 <밀양>의 ‘신애’에 비하면 평범하다 못해 밋밋한 캐릭터. 때문에 연기가 쉬울 것 같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표출되는 감정보다 조용히 움직여지는 감정을 표현하고 느끼게 하는 게 더 힘들다”는 전도연은 “계산하지 않고 편하게 연기하는” 방법으로 희수를 만들어나갔다. 초심으로 돌아가 어떤 배우보다 모범적이고 열정적으로 촬영에 임하기도 했다. 상대배우 하정우가 “한 번도 현장에 늦으신 적이 없다. 늘 먼저 오셔서 메이크업하는 모습을 촬영 처음부터 끝까지 봤다”고 말할 정도.
전도연은 희수의 성격을 보다 분명하게 드러내기 위해 디테일한 부분에도 신경을 썼다. 그중 하나가 짙은 아이라인과 아이섀도우로 눈매를 강조한 ‘스모키 메이크업’.
밋밋한 캐릭터 자연스런 카리스마
“영화가 하루 동안 벌어진 일을 그려서 심심하지 않을까, 희수처럼 자존심 세고 깐깐한 여자는 어떤 모습으로 옛 연인을 찾아갈까 등을 고민했어요. 그 때 분장 해주시는 분이 스모키 메이크업을 권했는데 희수의 자존심과 닮은 것 같아서 망설임 없이 선택했어요. 여자에게 화장은 ‘나 정말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일종의 무기기도 하잖아요.”
대표적인 ‘동안 연예인’답게 전도연은 5살 아래 후배 하정우와 동갑내기 연인 연기를 자연스럽게 소화해낸다. 외모에서 나이차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건 물론이고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귀여운 느낌까지 자아낸다. 3년 전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에서 주연배우와 신인배우로 만났던 사이라곤 생각하기 힘들 정도. 전도연은 모든 공을 하정우에게 돌린다.
“정우씨가 병운이랑 비슷해서 정말 즐겁게 촬영했어요. 유연한 배우라 저를 포옹하고 받아줘서 연인처럼 보인 것 같아 고맙고요. 정우씨는 <프라하의 연인> 때도 좋은 배우였어요. 그 자세가 변하지 않았고 열정을 다 바쳤기 때문에 지금의 자리에 섰다고 생각해요.”
<멋진 하루>를 보고 나면 헤어진 연인이 생각나고 안부가 궁금할 거란 전도연. 하지만 관객들은 그보다 앞서 전도연이 보여줄 연기를, 한결 가벼워진 모습을 궁금해 하고 있다. 영화는 오는 9월 25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신혜숙 프리랜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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