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함에 항소한 아내, 마약사범 꼬리표 떼다
억울함에 항소한 아내, 마약사범 꼬리표 떼다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1-10-24 15:24
  • 승인 2011.10.24 15:24
  • 호수 912
  • 1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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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선처 위해 나섰다 마약 운반책으로 몰린 아내

최은서 기자 = 마약사범인 남편이 재판에서 선처를 받을 수 있도록 마약사범을 제보하는 등 검찰에 수사협조를 하려던 아내가 마약 운반 혐의로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가 항소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여성은 “브로커가 선물로 준 DVD플레이어 내부에 필로폰이 은닉되어 있는 줄 몰랐다”면서 “마약사범이라는 주홍글씨를 평생 안고 살 수 없다”고 항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필로폰 밀수입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남편 형량 낮추기 위해 마약사범 제보에 브로커 접선까지
“제 3자가 필로폰 밀수입하게 한 후 제보했을 가능성 배제 못해”


김모(45·여)씨는 지난해 7월 남편이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죄로 징역 2년을 선고받자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마약사범 제보에 나섰다. 항소심에서 남편 형량이 낮춰질 수 있도록 검찰에 수사협조를 하려 했던 것이다.

인천공항서 현장 체포돼

김씨는 마약사범을 여러 차례 제보했으나 담당 검사는 김씨의 제보 내용이 수사협조를 빙자해 범죄를 범할 생각이 없는 사람에게 마약범죄를 저지르게 한 후 수사기관에 제보해 검거도록 하는 일명 ‘던지기’라고 판단했다.

김씨는 자신의 제보가 번번이 배척당하자 지난해 7월 19일 중국으로 가 필로폰을 중국에서 국내로 밀반입하는 브로커를 접선했다. 하지만 브로커가 “국내에서는 필로폰을 받을 사람이 없어 필로폰을 보내줄 수 없다”고 해 다음날 김씨는 귀국했다. 이후 남편의 항소심이 진행 중이던 같은 해 8월 27일 다시 브로커를 만나러 중국으로 갔다 3일 뒤 귀국했다.

문제는 인천공항에서 발생했다. 브로커가 김씨에게 선물로 준 DVD 플레이어 안에 필로폰 45.59g이 은닉돼 있었던 것이다. 김씨는 “브로커로부터 DVD 플레이어를 선물로 받아 인천으로 입국하긴 했으나, DVD 플레이어 내부에 필로폰이 숨겨져 있는지 몰랐고 브로커와 공모한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DVD 플레이어 안에 필로폰이 들어 있는 채로 허술하게 여행용 가방에 담아 밀반입했겠는가”고 혐의를 적극 부인했다.

이 같은 김씨의 주장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김씨를 기소했다.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죄로 재판을 받고 있는 남편의 선처를 받을 목적으로 밀수입한 필로폰을 유통시킨 후 이를 제보하는 방법으로 수사협조를 하려 했다는 혐의가 적용된 것. 1심 재판부는 “남편 선처를 받은 목적으로 이 사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입증 증거 없어 무죄

마약사범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된 김씨는 곧장 항소했다. 간접사실이나 정황만으로 죄인으로 몰렸다고 판단한 김씨는 “중국에 간 주된 목적이 브로커로부터 ‘작업’에 대한 정보를 받기 위한 것이었고 아들 유학 목적도 있었다”고 주장했다. 김씨는 또 “DVD 플레이어를 가져오게 된 것은 브로커가 아들 영어공부에 사용하라고 선물로 줘서 받았을 뿐”이라고 말했다.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판사 성기문)는 원심을 파기하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재판부는 “필로폰 밀수입을 입증할 증거가 없어 무죄를 선고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지난해 8월 27일 김씨가 브로커를 만나러 간 것이 ‘작업’을 위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김씨는 그때까지 남편을 위한 수사협조 차원에서 단순히 위법행위의 제보자로서 역할을 하려했던 것으로 보인다”며 “단지 만나러간 목적이 ‘작업’이었다는 이유만으로 필로폰을 공모해 밀수입했다고 성급히 판단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또 “브로커나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제 3자가 작업을 하기 위해 김씨가 필로폰을 밀수입하게 한 후 이를 제보해 김씨가 적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또 브로커가 김씨를 이용해 일단 필로폰을 국내에 밀수입한 다음 연락하여 전달하려고 했으나 그 계획을 알게 된 제 3자가 제보해 김씨가 적발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김씨가 제 3자의 수사첩보를 위한 희생양으로 이용됐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재판부는 “김씨가 DVD 플레에어 속에 필로폰이 들어있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고, 브로커와 필로폰 밀수입 범죄를 공모했다고 입증할만한 증거가 없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so.kr

최은서 기자 choie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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