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경찰 영장청구에 법원, ‘증거불충분’ 기각
검찰·경찰 영장청구에 법원, ‘증거불충분’ 기각
  • 전수영 기자
  • 입력 2011-10-17 15:25
  • 승인 2011.10.17 15:25
  • 호수 911
  • 1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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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년 전 大盜 다시 등장… 이번에는 누가 털렸나

경찰, 인터폴과 공조 속 범죄행위 밝힌다
‘있는 자’들에 대한 불만 갈수록 커져


전수영 기자 = 1997년 성북동, 한남동 등 고급 주택가에 위치한 재계 인사들의 집을 털었던 ‘대도’가 세간의 입에 오르내렸다. 특히 물방울 다이아몬드와 같은 희귀한 귀금속들이 사라졌지만 모두들 쉬쉬하며 신분노출을 꺼려 절도 당한 물품을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더욱 궁금해 했다.

나중에 경찰이 대도를 검거했을 때 대도는 한 명이 아닌 두 명이었다. 둘은 형제였다. 형은 경찰에 바로 붙잡혔으나 동생은 해외로 나가 그 후 9년간 도피생활을 했다.

형은 그 후 출소했다가 다른 죄로 현재도 수감 중이며 동생은 지난 7월 출소해 또 한 번 대담한 절도행각을 벌이다 체포됐다. 성북동은 대도의 출현으로 바짝 긴장했지만 일부 시민들은 대도의 출현에 쾌감을 느끼기까지 한다.

지난달 27일 성북동에 위치한 이봉서 한국능률협회장(75, 전 상공부장관) 집에서 금품을 절도한 혐의로 용의자 정모씨(56)가 12일 경찰에 붙잡혔다.

정 씨는 이 회장의 자택에 침입해 현금과 귀금속 등 60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는 27일 오후 2시 30분경 택배를 받은 뒤 문을 닫지 않은 현관문을 통해 이 회장 자택의 현관문을 통해 침입해 절도 행각을 벌인 후 유유히 사라졌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범행 수법과 CCTV를 확인해 정 씨를 용의자로 지목하고 수사를 벌여 검거했다.

경찰은 인천에 위치한 정씨의 집에서 발견된 현금 600만 원과 다이아몬드 측정기와 감별기, 금 절단기 등의 도구들을 발견하고 이 도구를 이용해 모조품이 아닌 진품만을 훔치려 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정씨는 “호주에서 금은방을 할 때 사용했던 도구”라고 진술했다.

또한 정씨는 경찰 조사에서 “이 전 장관 집 근처에 간 것은 지나가다 소변이 마려워”라며 이 회장의 집에 침입한 이유를 설명하며 “집에 있던 돈은 홍콩에 갔을 때 카지노에서 딴 17만 홍콩달러를 한국으로 갖고 와 대구에 와서 한국돈으로 바꾼 것”이라 말하며 범행을 부인했다.

경찰은 곧바로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13일 검찰은 정씨가 이 회장의 집에 침입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며 영장신청을 기각했고 같은 날 오후 정씨는 풀려났다. 이에 따라 경찰은 증거 보강을 통해 영장을 재신청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경찰은 지난달 29일 홍콩을 다녀온 정씨가 자신의 계좌에 거액을 입금한 것에 주목하고 있다. 홍콩으로 출국 시 돈을 거의 소지하지 않았던 정씨가 입국하면서 거액의 돈을 가지고 온 것은 훔친 물건을 판 돈일 것이라고 경찰은 보고 있다.

또한 경찰은 정씨가 홍콩 현지 전당포에 300만 원 상당의 시계와 반지를 맡긴 전표를 발견해 이를 인터폴과 공조를 통해 전당포에 맡긴 물건과 이 전 장관 집에서 없어진 물건과 대조할 계획이다.

현재 수사를 맡고 있는 성북경찰서 관계자는 “현재 인터폴에 공문을 보낸 상태다. 모든 방법을 동원해 증거를 확보하겠다”고 말했다.

정씨, 과거 조세형과 비교

정씨 이전에 ‘대도’, ‘의적’으로 불렸던 이는 바로 조세형이다.

조씨는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부유층을 상대로 수억 원대의 절도행위를 일삼았다.

그가 1982년 11월 경찰에 붙잡혔을 때 세상은 떠들썩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의 집에서 압수한 귀금속과 고급시계 등은 마대자루로 2개 분량이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지금도 부유층의 상징인 ‘물방울 다이아몬드’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도 2개씩이나.

조씨가 훔친 물건은 수두룩한데 잃어버렸다는 사람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가의 물건을 잃어버리고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경찰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밝혀진 물방울 다이아몬드의 주인은 바로 전 국회의원과 병원장이었다.

국민들은 털린 비싼 시계와 보석의 양에 놀랐으며, 그것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분개했다. 뭔가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벌고, 부를 축적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조씨는 또 한 번 국민들을 놀라게 했다. 1983년 4월 절도 혐의로 기소되어 당시 서울형사지방법원(서울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 교도관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조씨는 건물 벽의 환풍기를 뜯어내고 그 구멍으로 탈출했다. 이른바 ‘조세형 탈주사건’이다.

탈주 후에도 조씨는 절도 행각을 벌이다가 115시간 만에 경찰이 쏜 총탄을 맞고 다시 검거 되어 징역 15년, 보호감호 10년을 선고 받고 청송감호소에 수감됐다.

1998년 11월 만기출소 후 그는 신앙인으로 거듭났다며 22세 연하의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이뤘으나 2001년 1월 일본에서 대낮에 빈 집에 들어가 절도 행각을 벌이다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당시 조씨는 엉뚱하게도 “일본의 경비 시스템을 시험해보려 했다”고 동기를 설명했다.

3년6월의 형기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조씨는 2005년 서울 마포구의 한 치과의사 집을 털다가 경찰이 쏜 공포탄에 놀라 검거됐으며 지난해 5월에는 강도에게서 억대 귀금속을 넘겨받아 팔아치운 장물알선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 때 조씨는 검찰에서 “난 도둑질은 해도 강도짓은 안 한다”고 말해 흉기로 위협해 금품을 빼앗는 강도와는 다른 ‘급’의 도둑이라고 강변했다. 하지만 그의 말을 믿어줄 사람은 거의 없었다.

양극화 가속에 민심은 흉년

70년대 말에서 80년대 초와 현재의 사회구조와 경제규모는 차원이 다르지만 양극화는 더욱 심해졌다. 특히 중산층이 무너져 하위 계층으로 편입되면서 사회적인 불만은 높아져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렇다 보니 조씨와 정씨 등과 같이 부유층만을 상대로 한 범죄에 대해 쾌감을 느끼는 경우가 생겨나고 있다. 특히 조씨와 정씨가 훔친 물건과 현금은 일반 가정집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금액이다보니 일부 국민들은 이렇게 재산을 많이 축적한 뒤에는 ‘뭔가가 있지 않을까’하는 의구심을 품었다.

그렇다 보니 경찰이 계속 수사를 하다 보면 숨겨진 진실이 드러날 것이며 이를 통해 소위 ‘있는 자’들이 처벌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마저 갖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진 것은 없었다. 그리고 조씨와 정씨 모두는 ‘대도’의 이미지로 부각됐지만 결국에는 한갖 ‘도둑’밖에는 안 되는 인물이 됐다. 결국 국민들에게 잠깐 동안 쾌감을 주는 것에 그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일에 기뻐하는 국민들이 있다는 것에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구조적인 모순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으며 국민들의 불만 또한 높아져 민심은 갈수록 ‘흉년’이 돼가고 있는 것을 방증한다.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전수영 기자 jun6182@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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