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착취재] 반 총장 방북, 대북 협력 본격화되나
[밀착취재] 반 총장 방북, 대북 협력 본격화되나
  • 장연서 프리랜서
  • 입력 2015-11-23 11:07
  • 승인 2015.11.23 11:07
  • 호수 1125
  • 12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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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핵심부 격변 조짐, 술렁이는 정치권
▲ photo@ilyoseoul.co.kr

내년 박 대통령 대북 협력사업 밑그림 본격화
북측 당국회담 호응…남북관계 관리 나선듯

[일요서울 | 장연서 프리랜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북한을 방문할 계획인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정치권에 미묘한 파장이 일고 있다. 일각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시점에 반 총장의 방북은 대권 행보의 포석이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나온다.
반 총장의 방북계획이 전해지면서 청와대의 움직임도 분주해지고 있다. 최근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경제 개방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측은 북한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여러 통로를 통해 북한과 의견을 조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청와대의 상황은 그리 순조롭지 않아 보인다. 일단 북핵문제와 관련해 남북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 남북한과 러시아 중국 미국 등의 입장이 서로 달라 대화를 위한 북한의 요구조건을 관용적으로 수용하기도 어렵다.
한편 북한이 우리 정부가 제안한 남북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이달 26일에 갖자고 호응함에 따라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에 돌파구가 마련될지 주목된다.
북한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북한의 당국회담 수용은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방북을 앞두고 남북관계 관리에 나섰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개방형 경제정책 추진을 도모하고 있는 북한이 반 총장의 방문 이후 개방모드로 급변할 경우 반 총장에 상당한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될 경우 청와대가 지금까지 추진해 온 대북정책이 한순간에 힘을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 반 총장의 국민적지지상승과 함께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 하락이 동반될 수 있다.

반 총장이 북한을 방문해 김 제1 위원장과 마주하게 될 경우 이는 역사적인 장면으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정치적으로도 매우 큰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여기에 경제지원을 위한 반 총장의 제안을 북한이 수용할 경우 반 총장은 그야말로 대망론의 주인공으로 입지를 굳히게 된다.

반 총장의 북한 평양 방문 계획은 시기 결정만 남겨놓고 막판 조율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유엔본부에서는 일단 반 총장의 방북과 관련해 말을 아끼고 있으면서도 방북 계획에 대해서는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신화통신은 한국시간 지난 18일 오전 11시25분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이 신화통신에 반 총장이 다음 주 월요일(23일) 평양을 방문하며, 약 나흘간 머무를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또 낮 12시 55분께 타전한 후속기사에서 북한에 주재하는 익명의 유엔 관리가 반 총장이 조만간 평양을 방문할 것이라는 점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유엔 대변인은 몇시간 뒤 ‘기자들에게 알림’이라는 메시지에서 반 총장이 23일에는 방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방북 시기를 결정하는 부분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김 제1위원장과의 면담 일정 조정 문제, 파리 테러 이후 대(對) 테러 공동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국제사회의 분위기, 유엔 회원국들의 이해상충 가능성 등이 거론된다.

이 중에서 반 총장과의 회동 여부가 주목되는 김 제1위원장 쪽과의 일정 조율이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 총장이 방북 때 정작 김 위원장을 만나지 못하면 방북에 대한 의미가 상당히 퇴색되기 때문에 양자 회동이 가능한지 여부와 그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일부에서는 “앞서 방북했던 유엔 사무총장 2명은 모두 북한의 최고지도자인 김일성 주석을 만났던 만큼, 반 총장이 방북 기간에 김 제1위원장과의 만남이 성사될 가능성이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 프랑스 등 유엔의 주요 상임이사국들은 이 시점에 이뤄지는 반 총장의 방북을 선뜻 반기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유엔 주변에서 흘러나온다.

또 반 총장 개인은 방북을 강력하게 희망하더라도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이 난색을 보였을 것이라는 분석이 있다. 가뜩이나 북한 문제에 대한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유엔 수장이 방북하는 것은 예기치 않은 부정적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우려다.

아울러 반 총장의 일정은 주요 회원국 출신의 다국적 참모들의 의견을 반영해 확정되는데, 이 과정에서 일
부 참모들이 자국의 이해관계를 반영해 반 총장의 방북에 거센 반대의견을 냈을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반 총장의 방북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북한 ‘병진 노선’ 한계 실감

정치권에서는 반 총장이 방북하게 될 경우 북측과 논의할 의제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내 남북관계 전문가들은 반 총장과 김 제1위원장이 만나면 북핵, 인권, 평화협정 체결에 대한 논의가 오갈 것으로 전망한다.

일부에서는 반 총장이 김 제1위원장을 만나 북핵, 인권,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 평화안정 문제들을 논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제1위원장은 한반도의 비핵화에 대한 북한의 입장과 더불어 평화협정 체결과 관련해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과 적대정책에 대한 문제점을 언급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김 제1위원장은 지금껏 한 번도 주요국의 수장과 대화한 전례가 없다. 이번 만남 이후 김 제1위원장이 중국을 방문해 북중 정상회담을 가진 뒤 내년 8월께 남북 정상회담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또 북한의 ‘병진노선’이 한계에 와 있다는 것을 근거로 “내년 5월 7차 당 대회를 축제 분위기 속에서 치러야 하기 때문에 반 총장의 방북을 김 제1위원장의 대외적인 위상을 높이면서 국제적인 고립을 탈피하는 계기로 삼으려 할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이에 국제 환경과 여건이 특별히 변하지 않는 한 향후 6개월은 남북대화 국면이 진전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반 총장과 김 제1위원장의 대화가 매끄럽게 마무리될 경우 북한은 이를 명분으로 남북대화에 적극적으로 임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아울러 북한이 급진적으로 경제정책을 전환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북한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이 같은 관측의 근거다. 한국과 서구의 투자가 막힌 북한이 전통적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로부터 투자 유치를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 18일 대외 선전용 웹사이트인 ‘내나라’에 경제특구인 나선경제무역지대(나진·선봉경제특구)에서 활동할 북한 기업에 대한 외국자본의 투자를 허용하기로 하는 등의 내용을 골자로 하는 나선경제무역지대 종합개발계획을 공개했다.

북한은 내나라 홈페이지에 50여 건의 나선경제무역지대 투자 관련 법규를 게재하면서 관광지 개발대상, 산업구 개발대상, 국내기업 투자대상, 투자항목, 세금정책, 투자정책, 기업창설 절차 등 7개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공개했다.

계획에 따르면 나선경제특구 내 신해국제회의구와 비파섬생태관광구, 해상금관광지구 등 10곳이 관광지로 개발되고, 나진항물류산업구를 비롯한 9곳이 산업개발지로 개발된다. 북한은 또 8개 북한 기업과 프로젝트 합작 또는 합영의 형태로 해외투자를 받는다고 홍보하며 대상 기업 이름을 홈페이지에 공개했다. 북한이 공개한 투자 법규는 투자자가 경제무역지대에 투자한 재산과 합법적으로 취득한 재산을 제한 없이 지대 밖으로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명시적으로 담고 있다. 해외 자본의 투자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대북정책 경제지원 특별안

북한은 이와 함께 기업투자대상으로 △나선종합식품공장 △나진영예군인일용공장△나진음료공장 △선봉온실농장△선봉피복공장 △나선영선종합가구공장 △남산호텔재건(리모델링) 등 모두 8개 사업장에 합영투자나 합작투자를 제안했다.
이밖에도 △동화상제작△농기계조립생산△자동차부품생산 △버스조립생산△강냉이가공생산△풍력 및 태양열발전소 설비생산 △미생물효소산업△생물(식물성)디젤유생산△페놀수지생산△인조합판제료생산 △나무복합제품 생산 △오수정화기술△인삼화장품생산 등 모두 31개 사업에 대한 투자를 제의했다.

북한은 나선지역에 대한 투자는 투자관련 법규를 제정공포해 법률적 기초와 제도적 환경을 마련했으며, 투자정책과 세금혜택, 물자반출입, 외국인 출입, 체류거주, 편의보장 등 구체적인 내용을 소개했다.

북한의 이 같은 발표는 최근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과도 맞물려 돌아가는 분위기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차 터키를 방문 중인 박 대통령은 지난 15일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과 협력의 길로 나온다면 국제사회와 힘을 모아 매년 630억 달러의 수요가 예상되는 동북아 지역의 인프라 투자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안탈리아 레그넘 호텔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제1세션에서 8번째로 진행한 선도 발언에서 인프라 수요와 개발 잠재력이 큰 지역에 대한 국가 간 공동투자 협력을 제안했다.

앞서 출국 전인 지난 13일 박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의 물꼬가 트이고 남북관계 개선에 진척이 이뤄진다면 (남북) 정상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아시아태평양 뉴스통신사기구(OANA) 회원사들과 인터뷰한 자리에서 “저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여는 데 도움이 된다면 어떠한 형식의 남북 간 대화도 가능하다고 밝혀왔다”며 이같이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러나 그(남북 정상회담) 전제는 북한이 전향적이고 진실된 대화의 장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이라며 “북한의 진정성과 실천의지가 더욱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현 단계에서는 남북이 합의사항을 성실히 이행해나가면서 차근차근 신뢰를 쌓아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박 대통령의 발언은 북한이 약속대로 8·25합의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비핵화, 무력도발 중단 등 전향적인 태도 변화를 보일 경우 정상회담을 열어 경협확대 방안까지 논의하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반 총장의 방북 계획 소식이 전해지기 전인 이달 초 박 대통령은 남북 민간교류를 대폭 확대하고 북한 내수시장 활성화에 초점을 둔 경제협력 강화 방안을 검토키로 해 주목을 끌었다. 박 대통령은 민간교류를 책임질 남북 교류협력 사무소 설치를 공식 제안하고, 통일준비를 위해 정부가 추진중인 동북아개발은행의 차별화 전략을 본격 지시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6차 통일준비위원회(통준위)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지난주 열린 남북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통일의 필요성을 더욱 절감하는 계기였다. 민간 차원의 교류와 행사를 통해 서로 가까워지고 같은 민족의 정을 나눌 기회를 넓혀야 한다”며 민간교류 확대 필요성을 역설했다.

박 대통령은 “최근 남북 민간 교류가 역사와 문화, 체육을 비롯해 산림·병충해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는데 이런 흐름이 더욱 확산될 수 있도록 당국 차원의 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며 “앞으로 남북간 합의를 통해 남북 교류협력 사무소를 설치하고, 이를 통해 보건의료라든가 재난안전, 지하자원을 비롯해 남북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분야로 협력을 확대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반 총장의 방북 시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선 전망이 엇갈린다.

일각에선 반 총장과 김 제1위원장이 어떤 식으로든 가시적인 성과물을 도출할 것으로 내다보는 관측이 나온다. 반 총장으로선 임기를 1년여 남겨둔 시점에서 어렵게 이뤄지는 방북이고, 김 제1위원장으로서도 집권 이후 처음으로 국제 외교무대에 데뷔하는 자리인 데다 특히 내년 5월의 노동당대회를 앞둔 시점에서 구체적인 업적을 내놓아야 할 부담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핵 문제, 미사일 문제, 인권 문제 등은 매우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합의점을 도출하기는 쉽지 않으며, 반 총장의 방북은 한국인 유엔수장으로서 북한을 방문했다는 '상징적인 의미' 이상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이 밖에 반 총장이 국가 정상이 아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대화 결과는 합의서보다는 ‘공동 보도문’ 형태로 나올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상이 적지 않다.
ilyo@ilyoseoul.co.kr 

장연서 프리랜서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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