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박원순 안철수와 공동지도부 구성 제안의 노림수
문-안 갈등 즐기는 박원순 …“방법 찾아서 돕겠다” 화답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정치민주연합 비주류로부터 거센 퇴진 압력을 받는 문재인 대표는 당 지도부를 ‘3두(頭) 체제’로 이끌자는 카드를 던졌다. 광주 조선대 강연에서다. 자신과 안철수 의원, 박원순 서울시장이 힘을 합치면 내년 4·13 총선을 앞두고 인재영입, 인적 쇄신, 공천 혁신을 이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문·안·박 연대론’이다.
하지만 문 대표의 ‘3두체제’ 카드에 비주류는 싸늘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세 사람이 지분 나눠먹기를 했다는 불만이다. 특히 공동지도부를 구성하겠다는 세 사람이 모두 영남 출신이란 점이 불만이다. 문 대표와 안 의원은 부산, 박 시장은 경남 창녕이 고향이다.
호남 출신의 당직자 A씨는 “당이 위기에 빠진 가장 큰 원인은 문 대표가 호남 민심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럼에도 호남의 박지원 의원 같은 중진들을 공동지도부에서 배제시킨 건 문제의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한 결과”라고 비판했다.
“호남 소외 가중시키는 구상”
박지원 의원도 “이번 제안은 호남민심을 돌리기에 근본적으로 부족하다. 영남패권, 호남 소외를 가중시키는 구상”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주승용 최고위원 역시 “‘문·안·박’에는 호남을 대변하는 인사가 없기 때문에 호남에서 각광받는 프로그램이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공동지도부 진용이 차기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일정한 지지를 받는 주자들로 꾸려진 점도 문제가 되고 있다. 당직자 B씨는 “안 의원과 박 시장은 당 안에 세력이 없는 인물”이라며 “당을 통합하려면 당내에 일정 계파를 거느리고 있는 박지원, 정세균, 김한길 의원 등이 포함돼야 실효성이 생긴다”고 말했다.
당내 지분이 없는 안 의원과 박 시장이 당의 통합에 과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지적이 많다. 문·안·박 연대로 오히려 새정치연합 문 안팎이 더 시끄러워졌다는 소리도 나온다.
문 대표의 제안에 대해 일단 박 시장은 화답했다. 처음엔 “현직 단체장으로서 당무에 관여하기 어렵다”고 했다가 곧장 “가능한 방법을 찾아서 돕겠다”고 말을 바꿨다. 두 사람은 문 대표의 조선대 강연 다음날 만났다. 서울시청에서 열린 ‘고단한 미생들과의 간담회’를 마친 뒤 티타임을 갖고 ‘문·안·박 지도체제’ 필요성에 공감했다.
문 대표와 박 시장은 ‘합의문’까지 내고 “당의 혁신과 통합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고 헌신해야 한다는 데 인식을 같이 했다. 이를 위해서 안철수 의원의 근본적인 혁신방안 실천이 중요하다는 데에도 뜻을 같이 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안철수 의원은 “당을 걱정하는 분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겠다. 다양한 계층이나 다양한 분들로부터 말씀을 계속 듣고 있다”고만 했다. 문 대표와의 회동 계획에 대해서도 “만나긴 누가 만나요…”라며 일축했다.
측근들의 전언에 의하면, 안 의원이 숙고의 시간을 갖는 건 ‘3두 지도체제’ 수용 여부가 아니다. 안 의원은 문 대표에게 큰 불신이 있다. 2012년 야권 대선후보 단일화 협상과정에서 일방적으로 당했다는 생각이 강하다. 이 때문에 만일 문 대표의 ‘문·안·박’ 카드를 받으면 실컷 이용만 당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또 버림을 받게 될 것이란 의심을 한다.
앞서 안 의원이 혁신위원장과 인재영입위원장직을 맡아달라는 문 대표의 제안을 잇달아 거절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도 “저한테 어떤 자리를 준다든지 하는 건 완전히 본질에서 벗어난 주장”이라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당 일각에선 안 의원에게 일정한 공천지분을 나눠주는 방식으로 막후 조율이 이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안 의원은 당내 세력이 거의 없고, 당 밖에서도 총선에 나설 만한 측근들이 몇 안 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공천지분 할당도 협상 카드가 되기 어렵다.
정치세력이 없는 안철수
따라서 안 의원이 숙고에 들어간 것은 문 대표가 공동지도부를 정식 제안하기 이전부터 언론에 흘려온 ‘특단의 대책’에 담을 내용이란 게 측근들의 귀띔이다. 여기에는 탈당 후 마이웨이 선언을 포함한 모든 방안이 망라돼 있다고 한다. 이르면 이번 주에 ‘안철수의 폭탄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문 대표의 공동지도부 구성 제안이 오히려 안 의원의 선택을 더 극단적인 쪽으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안 의원은 그동안 자신이 제안한 10개 혁신안에 대해 문 대표가 입장을 밝히라고 요구해 왔다. 그러나 문 대표는 침묵을 지켰고, 조선대 강연에서도 “(당 혁신위가 마련한 혁신안 보다) 더 중요하고 본질적 혁신이 남아 있다는 안 의원의 얘기는 백번 옳은 얘기”라며 원론적인 말만 했다.
사실 ‘안철수 혁신안’은 문 대표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들이다. 안 의원은 ‘부패청산’과 ‘낡은 진보 청산’을 화두로 던졌다. 이 가운데 부패청산은 당 혁신위안에서 만든 혁신안에 대부분 녹아 있다. 나머지 ‘낡은 진보 청산’인데, 안 의원은 흑백논리, 퇴로 없는 강경투쟁, 패권적 운동권 문화를 낡은 진보로 규정하고 있다.
모두 비노계에서 친노계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이다. 결국 친노계를 낡은 진보로 규정한 셈이고, 이는 곧 친노계를 물갈이하자는 요구가 된다. 안 의원은 또 “DJ(김대중 전 대통령), 노무현 정신의 진정한 계승은 극복에서 시작 된다”고 했다. 친노계의 생존 이유인 노무현 정신의 극복을 얘기한 셈이다.
따라서 현 상황에선 문 대표와 안 의원이 ‘불편한 동거’를 이어 갈 가능성은 낮다. 오히려 결별 초읽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그동안은 안철수의 홀로서기가 어려울 것이란 분석이 많았다. 정치세력이 없는 처지에서 독자적으로 신당을 만들기엔 역부족인 까닭이다. ‘안철수 현상’이 일어났을 때 주변에 모여들었던 사람들은 거의 떠난 상태다. 지난해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100년 가는 정당을 만들겠다”며 ‘새정치연합’(가칭) 창당을 추진했으나 결국 한계에 부딪쳐 김한길 대표가 이끌던 민주당과 통합한 바 있다.
그러나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 주변상황이 크게 변하고 있다. 무엇보다 당의 기반인 호남에서 문재인 대표체제는 낙제점을 받고 있다. 대선주자로서의 문재인 지지율이 호남에선 한 자릿수로 떨어졌고, 당 지지율마저 새누리당에 크게 앞서지 못하는 상태다. 호남의 싸늘한 민심은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 사람들에게 그대로 파급된다.
따라서 ‘총선 필패론’에 휩싸여 있는 새정치연합에서의 탈출이 안 의원이 구상하는 ‘특단의 대책 1호’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독자 신당을 추진하기보다는 호남 대안 정당과 손잡을 가능성이 높다. 어차피 현 야권의 텃밭인 호남일 수밖에 없고, 여기에 부산 출신인 안 의원이 참여하면 시너지 효과가 생기기 때문이다.
실제로 신당 창당을 구체화하고 있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광주 서구을)은 안 의원에게 꾸준히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천정배 신당이 호남 신당에 머물지 않기 위해 안 의원과 대구의 김부겸 전 의원, 심지어 새누리당 유승민 전 원내대표에게까지 신당 합류를 직간접적으로 권유 중이라고 한다.
여기다 안 의원이 문 대표와 갈라서는 데 결정적인 명분이 될 일도 벌어지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당명 변경 추진이다. 당초 새정치민주연합은 말 그대로 안철수의 ‘새정치’와 김한길 대표의 ‘민주당’이 연합한 정당이다. 그러나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은 옛 당명인 민주당으로 당 간판을 바꾸는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진다.
당명 변경이 현실화 될 경우 ‘새정치’를 가치로 삼는 안 의원이 설 땅은 사실상 사라진다. 이를 두고 문재인 세력이 눈엣가시 같은 안 의원을 당에서 쫓아내기 위한 프로그램을 가동했다는 말까지 들린다.
문 대표가 내년 총선에서 자기 사람을 대거 공천해 ‘문재인’ 브랜드의 독자 세력을 형성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갖고 있고, 안철수 축출도 그 안에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문 대표가 지금까지 사용한 ‘노무현’ 브랜드는 이미 한계를 노출했다. 차기 대선은 ‘문재인’ 브랜드로 도전할 것”이라고 내다 봤다.
문 대표가 당내에서 패권주의로 낙인찍힌 ‘친노계’를 폐기하고 진정한 자기 사람들로 구성된 ‘친문계’를 새로 짜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이 경우 안 의원의 마이웨이 행보는 더욱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된다. 당분간은 당 안에서 저항하다가 차츰 명분을 쌓은 뒤 탈당해 다른 야권 세력과 손잡고 차기 대권을 노릴 가능성이 높다. 다만 그 시점이 총선 전이 될지 후가 될지는 안철수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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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