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관들의 성추문 잇따라…권력과 권위도 구분 못하나
[일요서울|장휘경 기자]최근 경찰관들의 성희롱, 성추행, 성폭력 등 성 비위가 잇따름에 따라 강신명 경찰청장이 지난 8월 ‘원스트라이크 아웃’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는 성범죄를 저지른 경찰관에 대해 즉각 파면 또는 해임 조치하는 제도로서 앞으로 경고에만 그치지 않겠다는 경찰 수장의 일갈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강 청장의 의지는 3개월 만에 무색해지고 말았다. 김재원 전북경찰청장의 성희롱 소식이 알려진 데 이어 두 건의 경찰 성추문 소식이 함께 공개됐기 때문이다.
경찰이 부하직원을 성추행하거나 성범죄 피해자를 조사하다가 성폭행하는 등 성관련 혐의로 징계 받고 구속당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어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다.
지난 16일에는 언론을 통해 전북경찰청장의 발언이 보도되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김재원 전북경찰청장이 지난 13일 오후 자신의 관사에서 열린 출입기자단 초청 만찬 자리에서 한 언론사 여기자에게 쌈을 싸주며 성희롱 발언을 했다.
그는 여기자에게 쌈을 싸주며 “고추를 먹을 줄 아느냐”고 물었다. 여기자가 “그렇다”고 답하자 김 청장은 “여자는 고추를 먹을 줄만 알면 안된다. 잘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또 김 청장은 수차례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여기자에게 직접 싼 쌈을 먹여주려 하고, 일부 여기자들에게는 술잔에 지폐를 둘러 건네는 등 상식 이하의 행동을 했다.
논란은 거세졌고, 김 청장은 결국 “술에 취해 범한 실수였다. 당시 발언에 대해 사과드린다”며 “술잔에 지폐를 둘러 건넨 것은 택시비 명목으로 건넨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날 김재원 전북경찰청장의 여기자 성희롱 소식에 이어 성범죄 피해를 신고하러 온 미성년자를 성추행한 서울 종암경찰서 소속 37살 C경사에 대한 소식은 경찰들의 도덕적 해이가 위험수위에 달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게 했다.
피해자인 18살 A양은 지난달 22일 자신이 촬영된 음란 동영상을 경찰서에 신고했다.
C경사는 다른 직원들이 출근하지 않는 일요일에 A양을 경찰서로 다시 부른 뒤 수사를 위해 필요하다며 휴대전화로 A양의 신체 부위를 촬영하고 만지는 등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조사 결과, C경사는 성폭력피해아동 보호기관에서 나온 상담사를 사무실 밖으로 내보낸 뒤 CCTV 사각지대에서 이런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C경사는 “동영상에 등장하는 인물과 A양이 동일인물인지 확인하는 차원에서 사진촬영이 불가피했다”고 주장하며 성추행 등에 대해서는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경찰은 범행이 사무실 내 CCTV 사각지대에서 이뤄졌다는 점과 촬영이 불가피했다면 여경이 담당했어야 했다는 점을 들어 C경사의 행위를 범죄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가장 안전해야 할 경찰서 안에서 성범죄를 저지른 점은 중대한 문제라며 C경사에게 파면이나 해임 수준의 중징계를 내릴 방침이다. 이와 함께 종암경찰서 간부들이 관리감독을 제대로 했는지도 확인할 계획이다.
같은 날 위력추행·유사성행위 혐의로 여주경찰서 관할 파출소 소속 P경위도 구속됐다. P경위는 지난 5월부터 10대 여성인 피해자의 옷을 벗기고 뒤에서 껴안고, 옷 속으로 손을 넣어 신체 부위를 더듬는 등 힘으로 상대를 억누르고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유부남인 P경위는 내연녀의 딸인 피해자에게 유사성행위까지 요구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자신이 담당하던 성추행 사건의 피해 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결국 파면된 경찰관도 있다.
순천경찰서 소속 D(47)경위는 자신이 담당한 사건의 피해자인 20대 여성 B씨와 술을 마시고 지난달 2일 새벽 순천의 한 모텔에서 B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긴급 체포됐다.
D경위는 합의 하에 성관계를 맺었다고 혐의를 부인했으나 피해자가 뺨을 맞았다고 진술하고 팔에서 멍 자국이 발견돼 경찰은 D경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D경위는 이후 보강 수사에서도 증거가 부족해 불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되면서 사실상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경찰은 D경위가 담당 사건 피해자에게 사적으로 접촉하고 부적절한 성관계로 경찰공무원 행동 강령과 품위 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성폭행 혐의와는 별개로 D경위가 보호받아야 할 성추행 사건 피해자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은 파면 또는 해임에 해당하는 비위이자 경찰에 대한 신뢰를 땅에 떨어뜨린 행위”라고 말했다.
“음주 단속 무마해 주겠다”
女 운전자 성추행까지
이렇듯 경찰의 잇딴 성폭행·성추행 사건이 발생하고 있어 시민들의 질책이 쏟아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의 한 경찰서 간부는 후배 여경을 성폭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에 따르면 K경감은 지난달 16일 밤 회식을 하고서 술에 취해 몸을 잘 가누지 못하는 후배 여경을 종로구의 한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조사에서 그는 자신이 모텔에 간 것은 맞지만, 여경을 침대에 재우고 자신은 바닥에서 잤다며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건이 알려진 뒤 경찰은 K경감을 대기발령했고, 이달 중 징계위원회를 열어 징계 수위를 결정할 방침이다.
지난 5월에는 경찰서 안에서 “음주운전 단속을 무마해 주겠다"며 여성 운전자에게 금품을 요구하고 성추행까지 한 현직 경찰 간부가 적발돼 비난이 빗발쳤다.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G(48)경위는 술을 마시고 운전하다 적발된 30대 여성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강제로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됐다.
G경위는 지난 5월 16일 새벽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불법 유턴을 하던 여성 E씨에게 음주 사실이 감지되자 “음주측정을 하겠다"며 강남경찰서로 임의 동행했다.
G경위는 음주 측정을 준비하던 과정 중 E씨가 경찰서 7층 비상계단에서 따로 만나 선처를 요청하자 무마를 대가로 금품 5백만 원을 요구하고 강제로 포옹하며 입을 맞추는 등 20여분간 추행했다.
E씨는 음주 측정 결과 혈중 알코올 농도 0.05% 미만이어서 바로 훈방조치 됐으나 5일 뒤 다른 경찰서에 이런 사실을 털어놓아 경찰은 감찰 조사 뒤 G경위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이처럼 ‘죄질’이 안 좋은 모습을 드러내는 경찰들에 대해 시민들은 강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는 회사원 김미선(36) 씨는 “권력과 권위를 구분하지 못하는 경찰들이 늘어난 것 같아 안타깝다”며 “경찰이 이런 식으로 행동하면 시민은 대체 누구를 믿어야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했다.
마포구 공덕동에서 딸만 둘을 키우고 있는 정수철(51) 씨도 “시민을 지켜야 할 경찰들이 성범죄의 온상이 된 것 아니냐”면서 “불안해서 아내와 딸들을 밖에 내보내기가 무섭다”고 말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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