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잠했던 비주류 일제히 포문
잠잠했던 비주류 일제히 포문
  • 권대경 
  • 입력 2004-06-29 09:00
  • 승인 2004.06.2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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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당지도부와 심각한 표정으로 현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전당대회와 대표 경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박근혜 체제에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박 대표가 최근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대표로서의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한나라당의 전통적 색깔을 잃은 대북 접근방식을 비판하고 국회 공전의 책임을 묻는 불만이 내부로부터 터져 나오고 있는 것.여기에 그간 표면위로 부상하진 않았지만 박 대표와의 갈등 등으로 당 운영에서 배제돼 왔던 영남·수도권 비주류 의원들이 본격적으로 당을 질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어, 순항을 거듭했던 한나라호가 난기류에 휩쓸리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특히 당내 비주류의 좌장격인 이재오 의원이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당 지도부를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서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1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존경하는 박근혜 동지와, 김덕룡 동지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지금 한나라당은 4·15직후의 반성과 결의, 각오와 투지는 온데 간데 없고 대표 한 사람의 대중적 인기에 목을 매는 꼴”이라면서 “당내 인사들은 벌써 대표 눈치보기와 줄서기에 급급해 하고 있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그는 또 원구성의 비공개성·비민주성 문제와 수도이전에 대한 당의 미온적 입장, 한미 관계, 남북문제 새로운 대안 제시 미흡 등을 지적하면서 “몇몇 사람이 당을 소영웅주의로 이끌어 가는 동안 국회의원들은 당의 이름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연구모임이나 개인의 활동에 치중하게 될 것이고 당 이름이 점점 부담스럽게 느껴지면 그때부터 당은 형해화 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표와 김덕룡 총무 등 당 지도부를 향해 “당이 어렵고 나라가 어려울 때는 한 사람의 지혜보다 여러 사람의 지혜가 필요하며 그 지혜를 모으는 방법을 개발하는 것도 지도자의 길”이라 충고했다.

당 일부 관계자들은 이 의원의 발언이 있기 전부터 수도권과 영남출신 비주류 의원들 내부에서 이미 탈당설이 떠돌아 최근의 이 같은 분위기를 가볍게 보기 어렵다고 전하고 있다. 게다가 이 의원의 최근 행보가 3선 중진의 김문수 홍준표 의원 등과의 공조 가능성을 의미한다는 지적도 있어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한편 이 의원뿐 아니라 소장파 의원들의 모임인 ‘수요조찬공부모임’의 박형준 의원도 수도이전 문제와 관련해 “한나라당이 선거를 앞둔 정치논리에 휘둘렸다”면서 “제1야당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으며, ‘안보를 걱정하는 모임’의 김용갑 의원은 6·15 남북정상회담 4주년을 맞아 최근 불고 있는 친북 분위기를 경계하면서 그간 당이 가져왔던 정체성마저 흔들리고 있다며 박 대표를 압박하고 나섰다.한나라당 내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이 같은 목소리의 배경을 두고 박 대표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분석과 박 대표와 영남·수도권 비주류 간 갈등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해석이 엇갈리고 있다.

뿐만 아니라 박대표와 비주류 간 갈등은 자칫 다음달 예정된 전당대회와 대표 경선의 결과에 따라 탈당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제기되고 있다. 지금의 작은 분열 양상이 때에 따라선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먼저 박 대표가 국가적 현안인 수도 이전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어 비난을 사고 있다. 홍준표 의원은 “대통령과 여당은 수도 이전에 대해 명운을 걸고 있는데, 우리는 대변인의 입만을 쳐다보고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으며, 국회 공전에 대해 이재오 의원은 “상임위원장 자리 싸움이 국회를 지연시킬 만큼 중요한 일인가”라며 대표의 태도를 비난했다. 비단 이 의원 뿐 아니라 이라크에서의 한국인 피랍과 관련해 국회차원의 논의가 발빠르게 이뤄지지 않아 여러모로 국회 공전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여당은 물론 한나라당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한편 비교적 박 대표에게 우호적 태도를 보여왔던 소장 개혁파 의원들도 박 대표가 여의도연구소장에 이한구 의원을 정책위의장과 겸직토록 하자 명확하게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중·장기적 전략을 수립하는 한나라당의 핵심 브레인인 여의도연구소의 소장 자리를 정책위의장이 겸직할 경우 정책위 산하조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의원총회를 정례화 하는 등의 내용으로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수습이 쉽지만은 않은 듯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나라 당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이 박 대표의 리더십을 검증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 풀이하고 있다. 그간 박대표의 대중적 인기가 한나라당을 회생시킨 것이 사실인 만큼 이제는 당내 여러 의견을 수렴하고 받아들이는 대표로서의 능력을 검증받아야 한다는 것이다.하지만 이번 사태가 단순히 박대표의 리더십 검증 차원을 넘어 자칫 잘못된 상황으로 번질 경우 일부 의원들의 탈당·분당 등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현재 구체적인 탈당 움직임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의원들 입에서 오르내리는 수준이 가볍게 여길 수 있는 정도가 아니다.

즉 탈당을 거론하는 의원들 대부분이 당에 별다른 애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당 운영에서도 상당부분 배제돼 있어 그들만의 목소리 내기가 결코 진정으로 당을 생각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한 비주류 의원은 “대선 패배로 집권에 실패한 야당에서 그것도 당 운영에서 배제되는 상황이라면 굳이 당에 남을 이유가 없다”고 강조했다. 또 당내 비주류 의원들이 ‘한나라당의 지역적 연고가 영남임이 분명한데도 수도권 소장파 의원들이 종종 무시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분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즉 애정도 없는 상황에서 소장파들에 의해 무시당하느니 차라리 마음 맞는 이들이 뭉쳐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낫다는 이야기다. 물론 민생 중심의 정책 정당으로 나아가는 것이 필요하지만, 지금처럼 지나치게 유연한 정책은 정체성을 잃게 돼 건전한 보수 정당으로 거듭나려는 그간의 수고가 물거품이 될 수 있다고 덧붙이고 있다.

하지만 다른 한 켠에서는 7월 전당대회 때 당 운영에서 배제되지 않으려는 비주류측 의원들이 속내를 털어놓음으로써 당 지도부를 압박해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하려는 계산이라 풀이하고 있다. 전당대회 후 당 전체를 아우를 필요를 느낄 지도부를 향한 일종의 경고성 멘트라는 것이다.사실 박대표의 대중적 인기에 편승해 한나라당이 회생한 만큼 박 대표의 행보에 상당한 무게감이 실렸으며, 그 동안 소장파를 중심으로 한 당내 개혁세력도 급성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영남·수도권 비주류 의원들은 심하게는 당 내부에서 걸림돌로 치부되거나 무시되어 왔고, 자연스레 당 운영에서도 배제돼 왔다. 따라서 지금껏 당의 핵심에서 입지를 굳혀왔던 현재의 비주류 측 의원들이 느끼는 소외감이 당 균열의 원인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권대경  kwondk@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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