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보험금에 눈 먼 아내

최은서 기자 = 수억 원 대의 빚을 갚기 위해 남편 명의로 거액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뒤 내연남과 공모해 남편을 살해한 부인이 경찰에 붙잡혔다. 충남 천안서북경찰서는 보험금을 노리고 남편 장모(44)씨를 살해한 채모(41·여)씨를 붙잡아 살인혐의로 지난 19일 구속했다. 경찰은 채씨로부터 살인을 청부받고 장씨를 살해한 채씨의 내연남 방모(40·무직)씨와 방씨의 친구 김모(41)씨를 살인 혐의로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은 3일이 지나도록 사체가 발견됐다는 연락을 받지 못하자 경찰에 실종신고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은 실종신고 후 남편 장씨 앞으로 생명보험이 일시에 집중 가입된 사실을 확인, 이들을 추궁해 자백을 받아냈다.
내연남과 내연남 동업자, 채무자로 가장해 남편 납치 후 살해
보험금을 탄 즉시 해외 도피 위해 출국 계획까지 치밀히 세워
부인 채씨는 건축업을 하던 남편이 펜션 사업에 실패하자 경제적 어려움으로 인한 가정불화를 겪었다. 주변에서 돈을 빌려 쓰며 7억5000여만 원에 이르는 빚을 지게 되자 부부의 다툼은 더 잦아졌다. 이에 남편 장씨가 하루도 쉬지 않고 건설 현장에서 일용직 노동자로 일했지만 생활고는 가중됐고 부부 간 갈등의 골도 점점 깊어졌다.
내연남에 남편 살해 청부
그러던 중 채씨는 사업 관계상 알고 지내던 방씨를 상갓집에서 2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됐다. 이후 채씨가 운영하던 커피숍에 방씨가 자주 드나들면서 두 사람은 내연관계로 발전했다.
가족들의 눈을 피해 방씨와 이중생활을 해오던 채씨는 채무자들이 집으로 찾아와 항의하는 일이 빈번해지자 남편 청부 살해를 계획했다.
이에 채씨는 “남편을 살해하면 5000만 원을 주겠다”며 방씨에게 제안했다. 주유소 창업 준비로 경제적 어려움에 처했던 방씨는 채씨의 남편 살해 계획에 동참하는 한편 동업자인 김씨도 끌어들였다.
채씨는 방씨 등에게 착수금으로 1000만 원을 미리 건네줬다. 방씨 등은 각각 500만 원씩 나눠 가진 뒤 개인 용도로 사용했다.
범행을 공모한 이들은 지난 7월 11일 밤 10~11시께 채무자로 가장해 장씨를 아파트 주차장으로 불러냈다. 이후 방씨와 김씨는 “채무 정산 등에 대한 이야기를 좀 나누자”며 장씨를 승용차에 태운 뒤 천안 동남구 풍세면의 미개통 도로로 끌고 갔다.
경찰 관계자는 “미처 정산하지 못한 채무로 장씨 집에 채무자들이 들이닥치는 일이 빈번했다. 그때마다 장씨는 채권자들을 직접 만나 어려운 생활형편을 이야기하며 양해를 구했다”며 “이들은 이를 악용해 자신들이 채권자인 것처럼 꾸며 장씨를 집 밖으로 불러낸 뒤 손쉽게 납치했다”고 말했다.
방씨와 김씨는 인적이 드문 도로공사현장에서 장씨를 강제로 무릎 꿇린 후 미리 준비한 둔기로 장씨의 머리를 5차례 때려 숨지게 했다. 경찰 관계자는 “방씨 등이 둔기로 여러 차례 장씨의 머리를 내리쳐 장씨의 두개골이 심하게 훼손됐다”고 전했다.
범행 후 태연히 내연남과 동거
채씨는 살해 공모에 앞서 지난 6월 남편 명의로 보험사 5곳에 보험 상품 6개를 집중 가입했다. 채씨가 가입한 보험상품은 모두 생명보험으로 남편 사망 시 총 보험금은 11억 원에 달했다.
이들은 장씨의 시신이 쉽게 발견돼 보험금을 서둘러 타기 위해, 장씨의 시신을 장씨 소유의 무쏘 승용차 트렁크에 실은 뒤 사람들의 통행이 잦은 충남 아산시 모종동 시외버스터미널 주변 노상에 방치해뒀다.
하지만 3일이 지나도록 장씨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채씨는 “남편이 채권자에게 납치된 것 같다”며 경찰에 직접 실종신고까지 했다. 실종신고를 내고 5년이 지나면 사망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장씨의 사체는 범행 50여일이 지난 8월 29일 백골로 변한 사체로 발견됐다.
범행 이후 채씨와 방씨는 온천유원지 등으로 여행을 가는 등 태연히 생활해 왔다. 채씨는 검거 전까지도 방씨와 원룸에서 동거생활을 하는 등 애정행각을 벌여 온 것으로 드러났다.
채씨는 또 보험금 수령 이후의 계획도 치밀하게 세워뒀다. 보험금을 탄 즉시 해외로 도피하기 위해 이사 견적을 내는 등 출국 계획을 면밀히 세웠다. 또 국제 면허를 미리 발급받고 자녀들을 학교에서 자퇴시킨 뒤 여권을 발급받아 놓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하지만 경찰은 실종신고 이후 채씨의 행적에 수상쩍은 정황을 발견했다. 장씨가 실종되기 1달여 전부터 상해나 질병보험이 아닌 생명보험에만 집중 가입한 사실을 수상히 여긴 경찰은 CCTV와 휴대전화 경로 등을 추적했다.
경찰은 채씨와 방씨가 범행 당일 함께 있는 모습이 포착된 CCTV를 발견한데 이어 방씨 등이 장씨를 납치하는 모습이 찍힌 CCTV를 증거로 확보했다. 경찰은 사건 당일 채씨와 방씨의 이동경로도 일치하는 점도 확인했다.
이 같은 증거를 토대로 경찰이 추궁하자 채씨 등은 범행을 실토했다. 경찰에 따르면 채씨 등은 거액의 생명보험을 일시에 집중 가입한 사실 때문에 경찰에 의심을 살 것을 우려해 휴대 전화 위치까지 조작했다.
채씨는 경찰조사에서 “회생 의지가 보이지 않아 남편이 싫어졌고 남편과 사이도 좋지 않았다”며 “억대 채무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었고, 보험에 가입하면 거액의 보험금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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