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도 출판사도 “손해 안 봤네”…소설ㆍ음반 순위 껑충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가수 아이유 신곡 '제제'(Zeze)의 가사를 둘러싼 선정성 논란이 오히려 원작 소설 판매 급증과 음원 순위 상승을 가져다준 것으로 나타났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제제’ 논란이 본격화한 지난 5일부터 11일까지 7일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판매량이 이전 7일간 판매량보다 약 6.5배나 많았다. 온라인서점인 예스24에서도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이 기간 동안 종이책과 전자책을 포함해 모두 1250부가 판매됨으로써 어린이 도서 분야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다. 이전 7일(170부)의 약 7.4배가 늘어난 셈이다.
출판사인 ‘동녘’은 ‘제제’ 논란으로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판매량이 급증했음에도 마냥 웃지만은 못했다. 인터넷과 SNS에서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었냐”는 의심의 목소리가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동녘 관계자는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는 이미 500만~600만 부가 판매된 출판사 스테디셀러”라며 “판매량을 생각해 가사를 비판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말했다.
출판사 동녘은 회사의 전신인 광민사가 갖고 있던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를 1982년에 재출간하면서 작품을 국내에 소개했고, 2002년에는 오역과 빠진 부분을 바로잡은 완역본을 펴냈다.
아이유의 노래도 ‘제제’ 논란이 확산되면서 오히려 더 큰 관심을 받고 있다. 아이유의 ‘제제’는 음원 사이트 멜론 지난주 주간 차트 9위로 전주보다 두 계단 올랐으며 앨범 수록곡 7곡 모두 주간 순위 50위 안에서 선전했다.
앞서 ‘동녘’은 지난 5일 자사 페이스북에 “아이유가 ‘나의 라임오렌지 나무’의 주인공 ‘제제’를 성적 대상으로 삼아 유감”이라고 비판하면서 선정성 논란의 불을 지폈다.
아이유의 신곡 ‘제제’의 가사 가운데 ‘넌 아주 순진해. 그러나 분명 교활하지. 어린아이처럼 투명한 듯해도 어딘가는 더러워’라는 대목을 문제 삼았던 것이다.
동녘은 ‘아이유님. 제제는 그런 아이가 아닙니다’라며 아이유가 어느 인터뷰에서 고작 다섯 살, 아동 학대의 피해자인 제제를 성적인 대상으로 삼았다고 주장했다.
브라질 작가 주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로스(1920~1984)의 베스트셀러인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는 가난 속에서도 꿈과 순수함을 잃지 않는, 다섯 살 악동 ‘제제’의 성장기다.
동녘에서 아이유를 비난하는 글을 올리자 SNS에서 누리꾼과 문화평론가 등은 ‘예술 표현의 자유’를 두고 설전을 벌였다.
특히 아이유편 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제제편으로 여론이 나뉘어 찬반 논란이 거셌다. 아이유팬과 허지웅, 진중권 등이 아이유 편을 든 반면 많은 네티즌과 영화 소원의 소재원 작가는 아이유(또는 아이유를 옹호하는 해석)에게 차가운 잣대를 들이댔다.
영화평론가 허지웅은 SNS에서 “출판사가 문학의 해석에 있어 엄정한 가이드를 제시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모든 문학은 해석하는 자의 자유와 역량 위에서 시시각각 새롭게 발견되는 것이다. 제제는 출판사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문화평론가 진중권 역시 “아이유 ‘제제’ 문학작품에 대한 해석을 출판사가 독점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이 시대에 웬만큼 무식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망발”이라며 “문학에 대해 표준적 해석을 들이대는 것은 역사를 국정화하는 수준 떨어지는 행위다”고 출판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이와는 반대로 소설가 소재원 씨는 SNS에 “예술에도 금기는 존재한다. 만약 내 순결한 작품을 누군가 예술이란 명분으로 금기된 성역으로 끌고 들어간다면 난 그를 저주할 것”이라며 “최후의 보루는 지켜져야 예술은 예술로 남을 수 있다. 그보다 창작의 고통을 모르는 평론가 따위의 말장난이 더 화가난다”고 주장했다.
소설가 이외수도 아이유 ‘제제’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묻는 네티즌에게 “전시장에 가면 ‘작품에 손대지 마세요’라는 경고문을 보게 됩니다. 왜 손대지 말아야 할까요”라며 에둘러 아이유를 비판했다.
이에 대해 허지웅은 “이외수 작가님은 자기 작품이 박물관 유리벽 안에 아무도 손대지 못하게끔 박제되기를 바라는 모양”이라고 빈정대는 듯한 글을 남겼다.
그러자 이외수는 허지웅에 반박하듯 “누군가 오스카 와일드에게 평론가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을 때, 평론가는 전봇대만 보면 한쪽 다리를 들고 오줌을 누는 개와 흡사하다는 논지의 대답을 했었지요. 저의가 어떻든 전봇대의 입장에서는 불쾌할 수밖에 없겠지요”라는 글을 적었다.
논란이 커지자 아이유는 지난 6일 페이스북에 “‘제제’의 모티브가 된 곡 ‘나의 라임오렌지나무’는 저에게도 정말 소중한 소설”이라며 “저는 맹세코 다섯 살 어린아이를 성적 대상화하려는 의도로 가사를 쓰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어 “가사 속 제제는 소설 내용의 모티브만을 차용한 제3의 인물”이라면서도 “하지만 제 음악을 들으신 많은 분들의 말씀을 듣고 제 가사가 충분히 불쾌한 내용으로 들릴 수 있다는 것과, 그 결과 많은 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혀드리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전적으로 제가 작사가로서 미숙했던 탓”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아이유는 또한 “한 인터뷰에서 어린 제제에게 섹시하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다섯 살 어린이가 아닌 양면성이라는 ‘성질’에 대해 이야기했다”며 “하지만 이 역시 어린이가 언급된 문장에서 굳이 ‘섹시하다’는 단어를 사용함으로써 오해를 야기한 저의 불찰”이라고 용서를 구했다.
이후 동녘 출판사도 결국 지난 10일 페이스북을 통해 “해석의 다양성을 존중하지 못한 점에 사과를 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원작자의 의도와 그 의도를 해석하고 공감하며 책을 출판해왔던 저희로서는 또 다른 해석을 낯설게 받아들여 그와 관련해 글을 올리게 됐다”며 “부디 앞서 게재된 글이 하나의 의견으로서만 여겨지기를 바란다”고 썼다.
한편 영국일간지 가디언에 아이유의 ‘제제’논란이 게재되자 해외 네티즌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지난 10일 가디언은 책 메뉴 서브 메인에 출간한 지 40년이 넘은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가 한국에서 다시 화제가 되고 있다며, 아이유의 ‘제제’논란을 집중보도했다.
이에 해외 네티즌들은 “제제 가사에 왜 소아성애 딱지를 붙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반응과 함께, “인용된 가사들만 보면 뭐든 끼워 맞출 수 있을 만큼 애매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노골적으로 성을 표현하는 영미권 ‘음악’보다 아이 같은 모습에 논란이 생기는 게 신기하다”며 “우리 ‘문화’에서는 시대착오적”이라고 지적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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