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공육 위험… 소·돼지고기도 암 일으킨다”
반발 일자 단지 절제하라는 뜻이었다고 해명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가 지난 10월 26일 소시지·햄·베이컨 등 가공육을 석면과 같은 등급인 1군 발암물질로 규정하고, 소·돼지·양·염소 고기 같은 붉은 육류 역시 암을 일으킨다고 발표하자 세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충격을 받은 가공육 업계가 펄쩍 뛰었고 육류 생산업자들이 크게 반발했으며 일반 소비자들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사흘 뒤 WHO는 “IARC 보고서는 저장육류(가공육)를 전혀 먹지 말라고 한 것이 아니라 다만 섭취를 줄이면 암 발병 위험을 낮출 수 있다고 밝힌 것”이라는 요지의 해명을 내놓았다. 아예 먹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절제하라는 뜻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경고는 WHO가 처음이 아니다. 미국 식생활지침 자문위원회를 비롯한 주요 보건기관들이 앞서 주로 미국인을 대상으로 육류 소비를 줄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IARC의 이번 보고서는 △암과 관련해 육류가 몸에 해롭다는 증거는 정기적으로 육류를 섭취하는 사람에게 생기는 결장·직장암과 대부분 연관되며 △육류 소비가 암을 유발하는 전반적인 위험은 작지만, 한 사람이 섭취하는 육류의 양에 따라 암에 걸릴 위험은 높아진다는 사실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쉽게 말해 “고기 너무 좋아하지 마라”는 이야기다.
육류 소비 줄이라고 권고
IARC는 화학물질에서부터 제초제, 담배연기, 와이파이에 이르기까지 온갖 것을 조사해 발암인자를 찾아내는 일을 한다. 그런 다음 연구를 통해 확보한 증거를 근거로 어떤 물질이나 행위가 인간에게 암을 ‘확실히, 아마도, 어쩌면’ 유발한다고 분류등급을 매긴다. 이번에 IARC가 초점을 맞춘 것은 가공육과 가공 안 된 붉은 육류였다. IARC는 학술지에 발표한 이번 보고서에서 “가공육이 암을 일으키는 설득력 있는 증거가 있다”고 했는데, 이것은 IARC가 사용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표현이다. 그렇다고 해서 가공육이 흡연만큼 몸에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IARC는 가공육과 특정 형태 암 사이의 고리가 뚜렷하고 확립돼 있다고 평가했고, 그 내용을 발표했을 뿐이다.
IARC 연구에 따르면, 구체적으로 매일 가공육을 50그램(핫도그 1개) 먹으면 결장·직장암에 걸릴 상대적 위험도가 18% 높아질 수 있다. 사람이 평생 동안 결장·직장암에 걸릴 위험도는 약 5%인데, 매일 육류를 소비하면 절대적 위험도가 약 1% 포인트(평생 위험도 5%×18%=0.9% 포인트) 높아져 6퍼센트에 이르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 IARC는 가공되지 않은 붉은 육류는 “아마도 발암성이다”고 결론지었다. 이 대목에 있어 증거는 덜 명확하다. 하지만 연구진은 가공되지 않은 육류를 하루 100그램(햄버거 1개) 섭취하면 대략 가공육의 경우와 마찬가지 비율로 결장·직장암에 걸릴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을 알아냈다고 밝혔다. IARC가 제시한 암 위험도 증가치는 사실 높지 않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것을 무시해서는 곤란하다. 육류를 많이 먹는 사람이 대장암에 잘 걸린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는 많다. IARC의 이번 경고도 그래서 나온 것이다.
그렇다고 너무 겁을 먹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IARC가 밝혀낸 강력한 증거는 결장·직장암이라는 한 가지 형태의 암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위험도는 주로 과도한 육류 소비와 연관된다. 이번에 나온 IARC 보고서는 햄버거 등을 가끔 먹는 것이 암 위험도를 높인다고 말하고 있지 않다. 육류를 많이 먹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연구진이 강조하듯이 사람의 암 위험도는 “소비되는 육류의 양과 더불어 높아진다.” 하지만 평소 육류를 많이 소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절대적 위험도는 작다. 크리스토퍼 와일드 IARC 소장은 성명에서 “이러한 연구결과는 육류 섭취를 제한하라는 현행 보건 관련 권고를 추가적으로 뒷받침한다”면서도 “붉은 고기에는 영양가가 있다”고 딴소리를 덧붙였다.
미국의 뉴스 웹사이트 ‘vox’의 보도에 따르면, 가공육에는 엔니트로소 화합물과 다환 방향족 탄화수소 등의 발암성 화합물이 포함되어 있다. 영국 암연구협회에 따르면 엔니트로소 화합물은 장(腸)의 내막(內膜)을 형성하는 세포를 손상시킴으로써 세포로 하여금 치료를 위해 자기복제를 하도록 한다. “세포의 DNA에서 실수가 발생할 확률을 높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가외의’ 복제이며 이것이 암으로 가는 길의 첫 걸음이다.” 그런가 하면 붉은 육류를 단지 요리하는 것만으로 이러한 발암물질이 생길 수 있다. IARC는 “요리는 소화 능률과 맛을 증대시키지만 이와 동시에 알려졌거나 의심되는 발암물질을 생산할 수 있다”면서 프라이팬에서 볶거나 그릴에서 굽는 식으로 고온에서 요리하면 대체로 발암물질이 가장 많이 생긴다고 밝혔다.
요리하면 발암물질 생겨
육류소비가 암 발생률을 높인다는 IARC 발표에 대해 육류업계는 펄쩍 뛰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육류업계 전문가들이 “그 증거가 WHO 연구진이 끌어낸 것과 같은 종류의 강력한 결론을 끌어낼 만큼 충분히 확실한지 여부를 의심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북미육류연구소가 “IARC 연구결과는, 육류와 암 사이에 아무런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연구, 그리고 육류를 포함하는 균형 잡힌 식생활의 많은 건강상 이점을 보여주는 여타 연구들을 무시한다”고 반박한 것으로 전했다. 이런 저항을 예견한 듯 IARC는 보고서에서 아예 방어막을 쳤다. “방대한 데이터, 그리고 다른 모집단(母集團)들에 대한 연구들을 가로질러 나타난, 가공육 소비와 결장·직장암과의 일관성 있는 연관성에 근거할 때, 이것은 (우리의) 설명을 우연, 치우침, 틀림으로 만드는 것 같지 않다.” IARC는 이번 보고서가 10개국 22명의 전문가가 참여해 육류 섭취와 암의 상관관계에 대한 800여 건의 연구조사를 검토한 결과 나온 것인 만큼 학술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어쨌든 IARC는 이번 보고서 발표를 계기로 전 세계 육류업계를 적으로 만든 셈이 됐다. IARC는 사람의 육류 소비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과도한 육류 섭취가 인체 내 콜레스테롤 증가에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해서는 일절 관심이 없으며 오직 암 관련 연구만 한다. 그렇더라도 이번 보고서 발표 때 육류에 단백질, 비타민B, 철분 등 인체에 유익한 영양소가 풍부하게 들어 있다는 사실을 함께 소개했더라면 혼란이 덜했으리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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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