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15억 원 투자로 147억 원 거둬 ‘메이저리그 팜 시스템’ 올인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2015 시즌이 종료되면서 프로야구계가 포스팅과 자유계약선수(FA)시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중 넥센 히어로즈가 지난해 강정호에 이어 올해 박병호를 통해 2년 연속 MLB 포스팅에서 홈런을 치면서 신흥 명문 구단으로서의 명성도 쌓고 수익도 올리는 최대 수혜자가 됐다. 2012년에는 한화 이글스가 류현진의 포스팅으로 돈방석에 앉으며 포스팅 시스템 덕을 실감하는 등 늘어가는 운영비를 두고 새로운 대안으로 떠올랐다.
2015시즌 출발부터 포스팅을 염두해 두고 있던 넥센의 간판타자 박병호는 지난 10일 미네소타 트윈스로부터 1285만 달러의 포스팅 금액이 결정돼 함박웃음을 짓게 됐다.
아직 세부적인 연봉협상에 돌입하지 않았지만 이미 야구계에서 약 1000만 달러 규모의 연봉 계약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지난해 메이저리그 진출에 성공한 강정호(4년 1100만 달러)의 2배정도 되는 금액이다. 이와 함께 약 147억 원에 달하는 포스팅 비용도 아시아 타자로는 두 번째 규모에 해당하는 대박행진을 기록하면서 그에 대한 미국 현지 언론들의 관심도 뜨겁다.
승자 미네소타
리빌딩으로 화답
이번 포스팅의 두 주인공인 미네소타와 박병호는 큰 이변이 없는 한 계약이 성사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원 소속팀인 넥센은 이번 포스팅 결과를 수락했다.
이처럼 박병호의 계약이 기정사실화 되면서 미네소타는 벌써부터 트레이드를 단행하는 등 본격적인 ‘리빌딩’에 들어갔다. 특히 테리 라이언 미네소타 단장의 계획대로 박병호의 향후 포지션에 따른 팀 내 연쇄 이동이 눈에 띄면서 박병호의 존재감을 확고히 하고 있다.
미국 ESPN은 지난 12일(한국시간) 미네소타와 뉴욕 양키스가 외야수 아론 힉스를 내주고 포수 존 라이언 머피를 받는 일대일 트레이드를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힉스는 외야 모든 곳을 소화할 정도로 착실한 수비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공격력이 아쉬운 선수로 평가된다. 지난 3시즌 동안 247경기에 나서며 타율 0.225에 그치는 등 장타를 생산해줘야 할 외야수치고는 다소 부족한 성적을 나타내면서 결국 트레이드 대상이 됐다.
이 같은 구단의 결정에는 박병호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라이언 단장은 단독협상권을 확보했다고 발표하며 박병호를 일찌감치 지명타자로 쓰겠다는 뜻을 밝혔다. 올 시즌 지명타자를 소화한 ‘유망주’ 미겔 사노는 올 겨울 외야 전향 수업을 받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힉스를 내보내고 사노를 채우면서 지명타자 자리에 박병호를 넣겠다는 퍼즐을 끼워 맞추고 있다. 박병호는 경쟁자가 사라지면서 주전자리를 꿰찰 것이라는 긍정적인 전망을 더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미네소타는 지난 11일에도 애리조나에 포수 크리스 허만을 보내고 1루수와 외야 백업이 가능한 다니엘 팔카를 받아왔다. 팔카는 1루나 지명타자를 맡을 조 마우어의 부진이 길어지거나 외야로 전업한 사노의 수비가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미네소타 측은 박병호 영입을 전제로 팀 구상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라이언 단장은 “마냥 기다릴 수 없다”며 적극적으로 계약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해 결국 박병호의 계약도 시간문제일 뿐 메이저리그 진출에는 큰 이변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205억 원 남는 장사…
짭짤한 선수 장사
더욱이 넥센은 FA시장에서 종종 타 구단에 비해 총알이 약한 문제점이 노출됐지만 2년 연속 포스팅에 성공하면서 실탄 확보에 청신호를 켰다. 선수는 메이저리그 진출의 꿈을, 구단은 금전적인 실리를 챙기면서 모두가 윈-윈하는 경사를 맞았다.
이 같은 넥센의 선수 운영정책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넥센은 태생적으로 모기업을 두지 않아 머니볼 시스템을 적극 도입한 바 있다.
머니볼은 미국 오클랜드의 빌리 빈 단장이 주장한 이론으로 홈런이나 타율이 높은 타자보다 출루율이 높은 타자가 득점의 확률이 높다고 판단한 것으로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과를 얻는 경제학적 원칙을 구단 운용에 적용한 것을 말한다.
넥센은 그간 네이밍 스폰서를 비롯해 후원사 지원금, 광고비용으로 구단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에서 포스팅 금액이 구단 살림에 숨통을 트이게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넥센은 타 구단에 비해 가능성 있는 선수들의 빅 리그 진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여기에 넥센이 강조하는 육성 시스템이 결합하면서 긍정적인 효과를 만들어 내고 있다.
넥센은 2016년 시즌부터 퓨처스팀(2군)과 육성팀(3군)을 ‘메이저리그 팜 시스템’으로 운영하기로 했다.
이장석 넥센 대표는 “프로야구단의 가장 중요한 미션 중 하나가 육성이다”라고 강조하며 “향후 퓨처스팀과 육성팀은 3~5년에 걸친 개별 선수 자료 축적을 통해 독립적인 전략 육성시스템을 구축할 것이고 포지션 별 중장기 스카우트 플랜을 달성하는 효과를 얻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이 대표의 의중에는 유망주를 집중 육성해 선수를 키워 빅 리그에 입성시키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성공적 포스팅,
선수육성 신호탄
최근 KBO구단의 자생법으로 등장한 포스팅 시스템은 1998년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일본야구기구(NPB) 간에 맺어진 선수 이적에 관한 협약으로 탄생한 제도다. NPB 소속인 선수가 MLB 팀으로 이적할 때 30개 구단에 공평한 영입 기회를 주기 위해 비공개 입찰(포스팅)을 진행한다. 이때 가장 높은 포스팅 금액을 써낸 팀이 선수와 30일간 독점 협상권은 가지게 된다.
특히 포스팅 금액은 선수에게 가지 않고 원소속구단에 지급된다. 이는 프로축구 이적료와 비슷한 개념이다. 단 이적 협상이 불발되면 포스팅 금액 역시 사라지게 된다.
여기에 MLB와 NPB는 2012년부터 협약을 개정해 포스팅 최고 금액을 2000만 달러로 제한하는 대신 어느 팀이라도 최고 금액을 입찰하면 선수와 협상할 수 있게 돼 사실상 독점 협상권이 사라지게 됐다.
KBO도 이 제도를 표방해 2001년 MLB와 협약을 맺고 시행에 들어갔다. 일본과 차이점은 KBO선수에게는 포스팅 금액 상한선이 없고 리그에서 7시즌 이상 뛴 선수들만 포스팅에 참여할 수 있다.
올해 박병호의 경우 1285만 달러로 결정되면서 MLB에 진출한 아시아 타자 중 스즈키 이치로(1312만5000달러)에 이어 두 번째다. 또 한국 선수 중에는 류현진(2573만7737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다.
지금까지 KBO에서 포스팅을 통해 입성에 성공한 사례는 류현진과 강정호에 불과하다. 1997년 이상훈이 보스턴 레드삭스로부터 60만 달러의 입찰을 받았으나 당시 LG 트윈스가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됐고 진필중과 임창용은 시도했으나 이뤄지지 않았다.
지난해 김광현(SK 와이번스), 양현종(KIA 타이거스)이 포스팅에 도전했지만 꿈을 이루지 못하면서 포스팅이 선수들에게는 잔혹사로 남았다. 여기에 2009년 최향남(당시 롯데)이 세인트루이스로부터 101달러라는 상징적인 금액만으로 진출했지만 결국 메이저리그 땅을 밟지는 못했다.
미국 스포츠 전문 웹진 에스비 네이션은 “손아섭의 출루율과 콘택트 기술은 흥미를 가지게 하지만 강정호 같은 장타력을 보여주는 선수는 아니다”라고 평가해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할 수 있을지 의문을 나타냈다.
롯데 역시 지난해 김광현, 양현종처럼 낮은 포스팅 금액이 결정될 경우 손쉽게 놓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와 손아섭보다는 황재균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결국 두 선수의 포스팅 결과가 마무리돼야 KB0 포스팅 농사의 향방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MLB타자 적응…
진출 우선 과제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병호의 결과만으로도 KBO는 이미 축제 분위기다. 하지만 박병호의 협상만 남겨둔 상태에서 우려의 시각도 제기되는 등 박병호의 적응여부에 현지 언론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스포츠미디어 스포츠쿼션트는 지난 13일 “박병호가 MLB에서도 잘 해낼까”라는 의문을 제기하며 멕시코 리그를 초토화시킨 자펫 아마도르, 강정호, 마쓰이 히데키 등의 사례를 들었다.
이들은 2015 시즌 타율 0.343 53홈런 146타점을 기록한 박병호의 수준을 마이너리거 스러거(강타자)와 견주며 1루수와 지명타자로 뛴 아마도르는 멕시코 리그에서 103경기를 뛰며 41홈런을 때렸는데 그를 제외한 누구도 35홈런을 넘기지 못했다며 “이를 보면 박병호가 MLB에서도 충분히 통할만한 파워를 갖춘 것은 틀림이 없어 보인다”고 전망했다.
스포츠 쿼션트는 또 “강정호는 신인왕 경쟁을 벌일 만큼 좋은 성적을 냈지만 훨씬 높은 경쟁력을 보유한 투수들을 상대하는 바람에 파워는 많이 줄었다”며 “29세 때 MLB에 진출한 마쓰이도 파워가 실종됐다. 다만 마쓰이는 빅리그 적응을 마친 이후 7시즌 중 5시즌간 20홈런 이상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매체는 “마쓰이의 성적을 돌이켜보면 2년차 시즌을 맞는 강정호도 같은 길을 걸을 가능성이 크다. 박병호가 파워 히터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MLB 투수들에게 빠르게 적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메이저리그 칼럼리스트 마이크 보먼은 지난 12일 MLB홈페이지를 통해 “현대 야구에서 파워는 점점 더 중요해 지고 있다”며 “KBO에서 50홈런을 넘긴 박병호는 미국에서도 시즌마다 20~25개 홈런이 예상된다. 지금의 FA 시장에서 파워에 대한 비용은 비싸다”는 견해를 내놨다.
다만 보먼은 2010년 미네소타에 입단했으나 2년 만에 일본으로 되돌아간 니시오카 쓰요시를 예를 들어 “박병호가 니시오카보다 우위에 있다. 박병호에 대한 미네소타의 투자는 가치가 있다”면서도 우려의 시각도 내비쳤다. 또 폭스스포츠의 캔 로젠탈 기자는 같은날 ‘한국의 슬러거 박병호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라는 칼럼에서 박병호의 가능성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그는 “박병호에 대해 강한 호기심이 가는 부분은 그의 배트 속도가 메이저리그 탑 클래스 선수들과 비슷하다는 점”이라며 “우려스러운 점은 그의 스윙이 길고 너무 많이 삼진을 당하며 한국 투수들이 메이저리그 투수들만큼 강한 공을 던지지 않는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로젠탈 기자는 또 “박병호가 올 시즌 KBO 리그에서 53개 홈런을 쳤지만 메이저리그에서 겨우 두시즌을 버틴 에릭 테임즈(NC 다이노스)도 그에 버금가는 47개의 대포를 쏘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부실한 육성체계
여전히 아쉬워
이 같이 엇갈린 반응이 쏟아지고 있지만 박병호의 메이저리그 진출까지는 이제 최종관문만 남겨둔 상태다. 더욱이 프리미어 12 대회에서 아직 이렇다 할 포문을 선보이지 않아 답답한 표정을 짓고 있지만 박병호는 그간 KBO에서 쏘아올린 홈런포처럼 올 시즌의 대미를 장식했다.
특히 넥센은 박병호라는 걸출한 대들보를 발굴해 내면서 그간 그에게 들인 비용이 모두 합쳐 15억 원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10배 가까운 수익을 창출해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더욱이 비정상적으로 급등하는 FA시장과 외국인선수 연봉 등 정상 범위를 넘어 서고 있는 KBO 구단들에게 포스팅 시스템은 새로운 수익원이자 경영정상화의 기초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FA시장을 통해 빅 리그에 진출하는 한국선수들까지 가세한다면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불거진 불미스러운 일들로 KBO리그는 마무리가 다소 어수선했지만 선수 농사만큼은 합격점을 받게 됐다.
다만 포스팅으로 거둬들인 수익들이 단순 FA시장에서 또 다른 선수자원을 확보하는 비용에 그치지 않고 확실한 유소년 시스템을 정립하고 유망주를 키워내는 데 적극 투자되는 선순환 구조로 연결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프리미어 12 개막전에서 일본의 신예 투수 오타니 쇼헤이에 혼쭐난 경험을 되돌아볼 때 어린 선수들이 제대로 성장하기도 전에 팀의 승부를 위해 무리하게 등용시키는 한국야구 시스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바 있어 야구종사자들의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뉴시스>
김종현 기자 todida@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