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년 결혼 생활…“자식 때문에 참았다”
[일요서울|장휘경 기자] 황혼 이혼이 역대 최다를 기록했다. 20년 넘게 혼인 생활을 유지한 부부가 갈라서는 ‘황혼이혼’이 우리나라 이혼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자리잡은 가운데 그 비율이 역대 최고 수준에 다다랐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지난해 이혼사건 11만5510건 중 동거 기간이 20년 이상인 부부의 이혼은 3만3140건으로 전체의 28.7%인 것으로 집계됐다. 황혼 이혼이 이혼 사건 전체의 1/3에 육박한 것이다.
지난해 동거기간에 따른 이혼 사례를 분석한 결과 황혼이혼이 전체의 28.7%(3만 3140건)로 가장 많았다.
2010년 전체 이혼의 23.8%를 차지했던 황혼이혼은 2012년 26.4%로 증가하며 신혼 이혼을 넘어섰고 2013년 28.1%에 이어 지난해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황혼이혼은 남편의 외도나 가정불화 등에도 참고 살던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는 유형이 아직까지는 일반적이다.
한국가정법률상담소에 접수된 60대 이상 남성의 이혼 상담 건수는 2004년 45건에서 지난해 373건으로 10년 새 8.3배가 됐다.
늘어나는 황혼이혼과 달리 4년 이하 신혼부부 이혼은 2010년 3만1528쌍(27.0%)에서 2014년 2만7162쌍(23.5%)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이는 전체 혼인 건수가 줄어든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해 지방자치단체에 접수된 혼인 신고는 30만 7489건으로 최근 10년 내 가장 적었다. 2007년 34만 8229건에 비하면 11.7%나 감소한 수치다.
또한 미성년 자녀수가 적은 부부일수록 이혼율이 높았다. 지난해의 경우 무자녀 부부의 이혼율이 전체 이혼사건 중 처음으로 절반(50.4%)을 넘었다. 이혼 부부 2쌍 중 1쌍은 자녀가 없는 셈이다. 자녀가 1명인 경우는 2만9972건(26%), 2명인 경우는 2만3344건(20.3%)으로 자녀가 적을수록 이혼율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이혼 사유로는 ‘성격 차이’가 5만 1538건(45.8%)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경제문제’ 11.6%, ‘배우자 부정’ 7.6% 순이었다.
이혼소송 전문 권위호 변호사는 “법원이 부부가 이혼할 때 아내에 대한 재산분할권을 확대해 주면서 이혼을 선택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이혼 때 배우자가 미래에 받게 될 퇴직금과 퇴직연금 등도 재산분할 대상에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자녀 양육 등을 이유로 참고 살다 아이들이 다 성장한 뒤 갈라서는 황혼 이혼은 최근 수년간 계속 늘고 있다. 자녀가 결혼하거나 독립한 후, 그간 쌓였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저 참고 사는 게 미덕’이라고 했던 중년 부부의 결혼관, 이젠 옛말이 되고 있다.
황혼이혼 시 가장 중요한 요소인 재산분할 기준은 두 부류로 나뉜다. 예를 들면 한쪽은 위자료고 뭐고 다 필요 없으니 이혼만 시켜달라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은 한평생 노예처럼 헌신했으니까 내 몫을 받아야겠다는 쪽이다.
“뒤늦게라도 내 인생 찾겠다”
‘황혼이혼’이라는 말은 원래 1990년대 일본에서 생겨난 신조어였다. 일본 경제가 불황기에 접어들면서 봉급생활자 가운데 퇴직금을 탄 이후 이혼을 하는 경우가 늘어 이를 빗대 황혼 이혼이라는 말이 퍼졌다.
가부장적인 문화가 팽배했던 예전에는 부부간 부당한 관계가 이어져도 참고 살았지만, 세상이 변하면서 이혼을 해법으로 찾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평균수명도 연장되면서, 뒤늦게라도 '내 인생을 찾겠다'는 사례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의 경제적 능력이 향상됨에 따라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한번 결혼은 영원한 결혼’이라는 가치관이 변하고, 가정을 유지하려는 의지보다 ‘삶의 질’을 우선으로 여기는 풍토가 황혼이혼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견해도 있다. 여기에 단순한 부부싸움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배우자의 잘못으로 이혼을 결심하는 사람도 많다.
대개 여성 쪽에서 황혼 이혼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남성 쪽에서 제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실제로 그동안 황혼이혼 사례를 볼 때 부인이 남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남성들의 황혼이혼 관련 상담이 부쩍 증가해 이목을 끌고 있다.
황혼 이혼은 복잡한 요인들이 쌓이고 쌓여서 이뤄진다. 특별한 인연으로 만나 결혼을 하고 20년이 넘는 오랜 기간 동안 부부로서 생활하며 같은 곳을 바라봤던 동반자와 이별하는 일이다.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감정의 골이 깊어 이혼을 결심하게 됐을 경우,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만약 원만한 협의에 실패했을 경우엔 소송여부도 검토해봐야 한다. 이혼 관련 상담내용 중 상당수는 외도·폭행과 폭언·경제력 결여·불성실한 결혼생활 태도 등이 주요 문제로 꼽힌다.
고미진 이혼전문 변호사는 “황혼이혼은 보통 아이들을 다 키운 후 자신의 남은 인생을 행복하고 자유롭게 보내고 싶어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렇기 때문에 황혼 이혼은 주로 이혼할지 여부와 재산분할이나 위자료 등이 핵심쟁점 사항으로 거론된다”고 설명했다.
hwikj@ilyoseoul.co.kr
장휘경 기자 hwikj@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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