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아 사망 사건’ 재수사 요구 나선 유족
‘정경아 사망 사건’ 재수사 요구 나선 유족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1-08-17 10:18
  • 승인 2011.08.17 10:18
  • 호수 902
  • 2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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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죽음 이후 모든 걸 잃었다” 애끓는 모정

2006년 7월 21일 경기 파주 교하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정경아(당시 24)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투신자살로 결론지었다. 지난 5년간 유족은 타살 가능성을 제기하며 전면 재수사를 요구하고 있다. 어머니 김순이(61)씨는 생업도 포기한 채 딸의 죽음에만 매달리고 있다. 김씨는 남아있을지도 모를 타살 흔적을 찾기 위해 사건현장을 샅샅이 뒤졌고, ‘사건의 진실을 밝혀 달라’며 1인 시위를 벌였다. 김씨는 “의심스러운 부분이 한 둘이 아니다. 억울하다”고 말했다. 유족이 제기하는 의혹들을 통해 정경아 사망사건을 되짚어 봤다.

2006년 7월 20일 정씨는 전 직장 동료 배모(당시 30·여)씨 부부와 직장 동료 조모(당시 28) 등과 함께 술을 마신 후 다음날 오전 0시 15분께 배씨 부부 아파트로 왔다. 아파트로 가던 도중 정씨는 헤어진 남자친구 이모(당시 27세)와 휴대폰으로 통화하면서 다퉜다. 당시 정씨는 배씨의 휴대전화기로 이씨와 통화했다.

아파트에 도착한 배씨는 방문을 걸어 잠근 후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경아가 술을 많이 마셔 이대로 내버려 두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고 전했다. 배씨가 이씨와 통화하던 당시 정씨는 방문 밖에서 “무슨 통화를 하느냐, 빨리 문을 열어라”고 큰 소리로 말했다. 배씨가 방에서 나오자 배씨 남편이 휴대전화기를 가로채 이씨에게 욕을 하고 끊었다.


경찰, 투신자살로 결론

이후 정씨는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배씨 등은 정씨가 핸드백과 청조끼를 벗고 나가 담배를 피우러 나간 줄 알았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배씨 등은 정씨가 돌아오지 않자 아파트 주변을 돌아다니며 정씨를 찾았다. 이들은 경찰조사에서 “정씨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부산에 있는 이씨에게 간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이날 오전 1시 14분께 이 아파트 현관 화단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 아파트의 한 주민이 0시 30분께 여자 비명소리를 듣고 숨진 정씨를 제일 처음 목격했다. 아파트에서 떨어진 정씨의 왼쪽 눈두덩은 부은 채 멍들어 있었고, 손목은 골절 돼 있었다. 정씨의 목 눌림 흔적이 발견됐고, 발바닥엔 검은 시멘트 자국이 발견됐다. 정씨가 입은 청바지의 지퍼는 열려있었다.

경찰은 정씨가 아파트 8층 비상 통로 창문에서 뛰어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당시 경찰은 투신자살로 결론지었다. 경찰은 배씨에게만 참고인 진술을 받았고, 부검은 하지 않았다. 이후 김씨의 요청으로 부검했지만 결과는 똑같았고, 정씨는 부검 후 화장됐다.


유족 “자살이 아닌 타살”

김씨는 청바지의 지퍼가 열려있는 점 등을 미뤄 성폭행 시도 과정에서 추락사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또 시신상태 등을 들어 ‘자살이 아닌 타살’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 같은 유족의 의혹제기에 경찰은 “자살로 결론내린 이유는 당시 정씨와 함께 있던 배씨 등이 정씨를 살해할만한 동기가 전혀 없기 때문”이라며 타살 의혹에 대해 선을 그었다. 유족은 “사건 현장에서 정씨의 지문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경찰의 자살 결론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정씨가 뛰어내린 창문 아래쪽에 밟고 선 흔적이 있다”며 “또 손으로 잡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분에만 먼지가 닦인 흔적이 있어 스스로의 의지로 창틀 위로 올라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검감정서에 추락 이전에 해당 부위에 가해진 직접적 외력 가능성을 배재 못한다는 감정결과가 나왔다”며 타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경찰은 “당시 국과수는 정씨 사인을 추락으로 인한 여러 장기의 손상으로 봤다. 그 전에 외력이 있었는지 여부는 수사를 통해 확인이 필요하다고 알려왔다”며 “이는 외력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추락 전 외력 여부는 부검을 통해 알 수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이어 “정씨는 8층 높이에서 떨어진데다 추락하면서 나무에 크게 부딪혀 떨어져 부검을 통해 외력 여부를 판단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문제가 된 청바지 지퍼 부분에 대해서도 경찰은 “지퍼는 2cm 정도 내려간 상태로, 성폭행 시도가 있었을 것으로 보는 것은 억측이다”라고 밝혔다. 경찰은 사건 당시 배씨에게만 참고인 진술을 받았다. 이에 대해 “타살 의혹이 없는 상태라 정씨와 함께 있었던 세 사람 중 한 사람의 진술을 받았다”며 “유가족 중 정씨의 오빠가 ‘동생이 자살한 것 같으니 부검은 원치 않는다’고 밝혀 부검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후 정씨 어머니가 의혹을 제기했다 경찰은 이를 받아들여 부검도 하고 추가 조사를 벌였으나 자살로 종결났다”고 밝혔다.

경찰은 또 “부검 당시 정씨는 혈중 알코올 농도 0.2%로 만취상태였다”며 “남자친구와 크게 싸운 정씨가 만취상태서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5년간 딸의 죽음에만 매달려

김씨는 “경찰의 초동 수사가 미흡했다”며 “사건 현장이 훼손되거나 증거가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경찰 수사 결과에 불신을 표했다. 김씨는 딸이 숨진 이후 5년 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내 딸의 진실을 밝혀주세요’라는 플랜카드와 전단지를 만들어 1인 시위에 나섰다. 청와대 정문 앞에서 차량을 돌진하려다 저지당하고 대검찰청 앞에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현재 김씨는 생업을 포기하고 폐지를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수입은 월 20~30만 원에 불과하다. 김씨는 2009년 5월 원인불명의 화재로 집이 전소돼 현재 가건물을 짓고 혼자 거주하고 있다. 불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국회의원 보좌관을 사칭한 사람에게 사기를 당하는 등 김씨의 사연을 악용하는 사람들로부터 금전적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

김씨는 “이 세상을 다 뒤집어 버리고 싶었다”며 “경아는 첫딸이 두 살이 숨진 이후 어렵게 얻은 막내딸이었다. 경아를 잃은 이후 희망을 잃었다”고 털어놨다. 김씨는 정씨의 부검 당시 가족 대표로 지켜보고, 딸의 시신 곳곳을 촬영했다. 김씨는 “딸의 시신을 보고 타살이라는 것을 강하게 확신했다”며 “부검을 지켜보며 하염없이 울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난 4일 경기지방경찰청에 수사이의신청을 했다”면서 “경아의 죽음 이후 모든 것이 산산이 무너졌다. 딸의 억울한 죽음이 밝혀질 때까지 일인시위를 계속 하겠다”고 말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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