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미 군함 또 오면 모든 수단으로 대응”
미국의 오랜 해상패권, 심각한 도전 직면
[일요서울 | 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양위쥔(楊宇軍)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 10월 29일 “중국군은 중국이 영해로 간주하는 남중국해의 인공 섬 인근 해역에 또다시 미국 군함이 진입할 경우 필요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대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양 대변인은 성명에서 "(지난 10월 27일) 미국 이지스 구축함 라센호가 (남사군도에 중국이 건설 중인) 중국 인공 섬 12해리 안쪽에 진입한 것은 중국 주권을 침해하고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고 밝혔다. 양 대변인은 우성리(吳勝利) 중국 인민해방군 해군사령관이 존 리처드슨 미 해군 참모총장에게 화상 회의를 통해 남중국해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미국은 중국이 인공 섬을 내세워 영토 주권을 주장할 수 없다며 중국의 이 같은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라센호의 진입이 중국 주권을 침해하고 국제법을 위반한 것이라는 중국 측 주장에 대해 애슈턴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지난 10월 27일(현지시간) 상원 군사위원회 청문회에서 라센호의 인공섬 12해리 이내 진입과 관련해 "국제법이 허락하는 지역이면 (앞으로도) 어느 곳이든 비행하고 항행하며 작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어디든 항행하고 작전할 것”
미국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집권하던 해인 2012년 중국이 영토라고 주장하는 남중국해의 섬 인근으로 군함을 통과시킨 적이 있다. 미국으로서는 오래 참다 마침내 칼을 뽑아든 셈이다. 이번에 미국이 군함을 연안 12해리 안쪽으로 진입시킨 남사군도(영어명 스프래틀리 군도)의 7개 미니 섬 중 하나인 루비암초는 중국, 필리핀, 대만, 베트남이 서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분쟁지역이다.
현행 국제법에서는 비록 영해(육지로부터 12해리 이내)라 할지라도 외국 선박이 해당국에 해를 입히지 않는 한 자유롭게 통과할 수 있도록 보장하고 있다. 이를 법률용어로 무해통항권(無害通航權)이라고 한다. 지난 8월 오바마 대통령이 알래스카 주를 방문하고 있었을 때 중국 군함 5척이 알래스카 근해의 미국 영해를 항해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중국은 무해통항권을 존중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미국은 지난 2년간 줄곧 중국에 대해 남사군도의 인공섬 건설을 중단하라고 촉구해 왔다. 그러다 이번에 미국을 방문한 시진핑 주석에게 재차 인공섬 건설 중단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하자 무력시위에 나선 것이다. 국제정치학자들 사이에서는 라센호의 루비암초 근해 진입과 관련해 정작 의아한 것은 미국 군함이 군사행동에 나섰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라 왜 이제야 미국 군함이 움직이기 시작했느냐는 점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미국 군함이 이번에 12해리 이내로 진입한 루비암초에 대한 미국 해군의 입장은 명확하다. 그 암초의 주인이 누구든 간에 그 인근 바다는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른 “영해”로 인정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UNCLOS에 따르면 거주 가능한 섬은 그 주변 12해리를 영해로, 200해리를 “배타적 경제수역(EEZ)으로 각각 인정받을 수 있다. 거주 불가능한 암초는 영해를 갖되 EEZ는 갖지 못한다. 간출지(干出地· 썰물 때 해수면 위에 있으나, 밀물 때 바닷물에 잠기는 자연적인 육지)는 그 어느 것도 인정받지 못한다. 중국이 지금 부지런히 매립하고 있는 루비암초와 인근의 다른 두 암초가 간출지에 해당한다.
미국과 달리 중국은 UNCLOS를 비준했다. 하지만 중국은 자국의 남중국해 영유권 주장이 어떻게 UNCLOS에 부합하는지 똑 부러지게 설명하지 못해 왔다. 대신 중국은 막연한 역사적 주장만 되풀이해 왔다. 시진핑 주석은 미국에서 이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말했다. “남중국해의 섬과 암초들은 고대로부터 중국 영토다. 그것들은 선조들이 우리에게 남겨준 것이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논쟁의 소지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UNCLOS는 조상 전래의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국은 당대(唐代)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역사 기록을 들추며 남중국해의 모든 섬을 자국 영토라고 1992년부터 일찌감치 법으로 규정해 놓았다. 이 해역은 중국 입장에서 보면 ‘남중국해’이지만 미국 입장에서는 ‘서태평양’이다. 미국은 서태평양에서의 항행(航行) 자유를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직결된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이번처럼 단호하게 행동한다.
미국의 아시아 전략과 직결
중국은 또 자국이 남중국해에 설정한 가상의 영해 경계인 '남해9단선(南海九段線)'을 그어 넣은 지도를 제작했다. 거대한 U자(字) 형태의 이 선은 사실상 남중국해를 전부 둘러싼다. 그러나 중국은 남해구단선 안에 들어가는 영역 가운데 육지만을 영토로 주장하는지 아니면 모든 바다 또한 영해로 주장하는지에 대해서는 흐릿한 입장이다. 중국이 만든 이 지도 역시 UNCLOS와 부합하지 않는다.
2차대전 이래 미국이 해상패권을 잠시 도전받은 것은 딱 한 차례다. 1970년대 소련은 위풍당당한 대양 함대를 건설했다. 거기에 어찌나 돈을 많이 들였던지, 1990년대 초 소련이 해체된 데에는 무리한 함대 건설도 한 요인이 되었다고 역사가들은 본다. 냉전이 끝나자 비싸게 건조된 이 함대는 북해 기지에서 녹이 슬어 고철로 변해 버렸다. 소련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대양 함대의 건설과 유지에는 엄청난 돈이 든다. 그럼에도 미국이 중국 국방예산 전체와 맞먹는 예산을 해군에 배정하고 있는 것은 미국의 세계전략상 해군력 유지가 그만큼 중요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굳건했던 미국의 해상패권은 최근 또다시 도전을 받고 있다. 지난 10월 7일 러시아는 카스피 해(海) 상의 전함들에서 시리아 내 표적들을 향해 여봐란 듯이 순항미사일 26발을 발사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를 잽싸게 선전전(宣傳戰)에 활용했다. 그는 “러시아가 아마 이런 무기를 가졌으리라고 전문가들이 의식하는 것과 그것들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이번에 처음 보는 것은 별개”라며 어깨에 잔뜩 힘을 넣었다. 서방 군사전문가들은 이제 러시아가 자국 영해에서 저고도 순항미사일을 유럽으로 날릴 능력이 있음에 주목하게 되었다. 하지만 미국의 해상 패권에 러시아보다 더 심각하게 도전하는 나라는 중국이다. 중국군의 지상군 중시 방침은 철회되었으며 중국은 이제 해군력 증강에 많은 힘을 쏟고 있다. 16세기 영국 탐험가 월터 롤리가 남긴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여전히 유효한 가운데 미·중이 해상패권을 다투는 남중국해의 파고는 갈수록 높아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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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철복 수석 편집위원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