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한국불교 2대 종단인 태고종의 전·현직 총무원장이 종단 내분(內紛) 과정에서 폭력 행위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형사3부(이철희 부장검사)는 태고종 사무실을 서로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상대편 스님 등을 폭행한 혐의로 태고종 총무원장 도산 스님과 반대파인 비상대책위원장 종연 스님을 구속했다고 지난 4일 밝혔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조윤희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들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한 뒤 “범죄 혐의가 소명되고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도산 스님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관을 폭행하고 근거 없이 비대위 측을 비방한 혐의도 함께 받고 있다. 앞서, 종연 스님 등 비대위 측 10여 명은 지난 1월, 서울 종로구 태고종 총무원 사무실로 몰려가 총무원 사람들을 쫓아냈고, 2월에는 반대로 총무원 측이 비대위 측 스님들을 끌어내면서 두 차례 다툼을 벌였다.
수년전부터 종단 빚 청산 등 둘러싸고 극심한 내홍
‘폭력사태’ 왜 일어났나
총무원장 퇴진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극심한 내분을 겪었던 태고종 총무원 측과 반대파인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스님들이 물리적 충돌을 빚은 것은 지난 1월 23일이었다. 이날 오후 5시 서울 종로구 태고종 총무원 청사에 비대위 측 스님 10여 명이 몰려가 문을 부수고 사무실을 점거한 것. 비대위 측은 당시 총무원 안에 있던 스님과 신도 등 15명 가량을 밖으로 내보내고 안에서 문을 걸어잠갔다. 이 과정에서 총무원 측 스님 1명이 가슴 통증을 호소하며 인근 병원에 이송되기도 했다. 총무원 측은 24일 총무원장인 도산 스님 명의의 기자회견문을 통해 “23일 오후 5시 비대위 스님 10여 명이 망치 등 흉기를 들고 총무원 사무실을 불법 난입해 (도산스님)을 포함해 종무원 등을 폭행하고 총무원을 점거했다”고 밝혔다. 이어 “사전에 이런 폭력과 폭거를 막지 못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하며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밝혔다.
총무원 측은 “이는 명백한 불법이자 폭거”라며 “평화적으로 수습해 종단화합과 통일을 꾀하고 이번 사태를 일으킨 주동 세력을 발본색원(拔本塞源)해 종헌 종법에 따라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총무원 관계자는 “도산 스님은 집단폭행으로 거동이 불편한 상태”라고 말했다. 반면 비대위 측은 ‘종단사태에 대한 성명서’를 내고 “승가의 일원으로 오늘의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데 안타까움을 금할 길이 없다”면서 “그러나 도산(스님) 집행부를 방치한다면 불교계 전체의 큰 암덩어리로 남을 수밖에 없기에 총무원사 집입을 결행하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몸싸움은 2월에도 계속됐다. 충돌 과정에서 경비용역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종로경찰서는 지난 2월 11일 총무원 청사에서 몸싸움을 벌인 혐의(공동치상 등)로 경비용역업체 H모(26)씨를 구속하고 총무원장 도산스님(이영식·64)과 비상대책위원회 대표 정호 스님(이태명·53) 등 5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도산스님을 비롯한 총무원 측은 이날 오전 2시쯤 용역직원 7명과 종단 관계자 등 36명을 동원해 정호스님 등 4명을 몰아낸 뒤 청사를 무력으로 점거한 혐의를 받았다. 이들은 이 과정에서 연장으로 창문을 뜯어내고 청사로 진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태고종 자문위원 C모(60)씨는 범행 하루 전인 지난 2월 10일 오후 5시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호텔에서 폭력조직 ‘이태원 식구파’ 두목 S모(56)씨를 만나 H씨 등 용역직원 8명을 소개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폭력행위 등 교사 혐의를 적용해 S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S씨는 “그날 C씨와 통화는 했지만 H씨 등을 소개해 폭력을 돕지는 않았다”고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조건부 동반사퇴’ 제안에 ‘거부’
물리적 충돌 이후 총무원장 도산 스님은 2월 2일 오전 11시께 서울 사간동 총무원 사무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본인과 총무원 집행부, 비대위 측을 포함해 모두 27명이 자진 사퇴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도산 스님은 “향후 5년 동안 총무원장, 직영사찰 주지 등도 모두 맡지 않고 지난 1월 비대위가 점거한 총무원 사무실에서 퇴거하며 즉각 해산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도산 스님은 “시급한 전남 순천 태고총림 선암사 소유권 문제를 수습하고자 비대위는 제안 내용에 대한 수용 여부를 48시간 이내에 답변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비대위 측 종연 스님은 오후 5시께 서울 부암동 AW 컨벤션센터 2층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이 제안에 대해 “협상을 제안하는 사람으로서의 순수성을 전혀 찾을 수 없다”며 “일고의 가치도 없는 것으로 판단해 단호히 거부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종연 스님은 “도산 스님이 현재의 사태만으로도 조건 없이 퇴진해야 함에도 조건의 수락을 전제로 사퇴하겠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종연 스님은 “종단 발전에 걸림돌이었던 부채(47억원)를 조속히 해결하고 안정화를 위해 차기 집행부를 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양측은 1월 총무원 사무실에서 있었던 몸싸움과 이후 경찰 대응과정 등에 각각 이견을 보였고 상대방 측에 문제를 제기했다.
태고종은 수년전부터 종단 권력, 종단의 빚 청산 등을 둘러싸고 극심한 내분을 겪어왔다. 전임 총무원장들이 잇달아 탄핵되면서 2013년 7월 18일 제25대 총무원장으로 도산 스님이 선출됐으나 내분은 계속됐다.
도산 스님은 종회 절차에 따라 호법원장에 당선된 수열스님을 인정하지 않는 등 임기 내내 독단적으로 인사·행정을 주물러 온 것으로 알려졌다. 비대위 측은 중앙종회에서 총무원장 불신임을 가결했고, 종연스님을 총무원장 권한대행으로 선출했다. 지난해 10월에는 비대위 측 스님들이 총무원 청사 진입을 시도, 양측 스님들 간 물리적 충돌 직전까지 이르기도 했다.
도산 스님을 비롯한 집행부 측은 앞서 중앙종회의 불신임 결정에 대해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부에 효력정지 및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서울중앙지법은 “비대위가 태고종 총무원장의 자격으로 행하는 일체의 직무를 방해해서는 안된다”며 집행부의 손을 들어줬다.
도산 스님은 “전 집행부 시절 쌓인 50억 원의 종단 부채를 해결하는 등 개혁을 추진하면서 독단적인 면이 없지는 않았지만, 어떠한 사심도 없다”는 입장이었다. 오히려 부채 발생에 책임이 있는 일부 세력이 집행부 무력화에 나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교계 관계자는 “양측이 법적 공방을 벌이는 등 화합할 여지가 없어서 종단 내분이 더 격화될 것이라는 게 교계의 솔직한 평가”라며 “스님들이 구속까지 돼 면목이 없다”고 말했다.
A신도는 “지난해 조계종이 법인법 문제로 선학원이 분종하는 등 내부 갈등을 빚은 데 이어, 태고종 또한 문제가 불거져 불교계는 해를 거르지 않고 내분이 휩싸인 꼴이 됐다”고 말했다.
英 이코노미스트, 한국불교 강력 비판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13년 인터넷판 기사에서 교계의 부패와 내분 양상을 거론하며 한국불교를 강력하게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한국 불교는 협잡(Monkey Business)”이라는 제목의 아시아판 기사를 통해 2012년 백양사 승려의 음주 도박 파문과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연임하지 않겠다던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의 연임 시도, 그로 인한 일련의 사태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자승 총무원장은 최근 사과하는 데에 익숙해졌다”며 “2012년 원로 승려 8명이 호텔방에서 음주 도박판을 벌인 일로 108배 참회정진을 하더니 2013년에는 ‘연임하지 않겠다던’ 말과 달리 총무원장 선거에 뒤늦게 뛰어들면서(출마로 입장을 바꾼 것을) 재빨리 사과했다”고 보도했다.
이어 “자승 총무원장이 선거에 승리하면 교구본사 주지 승려 24명과 신도 1천만 명, 사찰 2천500곳, 330억 원의 연간 예산과 문화재, 토지임대료 등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게 된다”며 조계종 총무원장의 막대한 권한에 대해 설명했다.
이코노미스트는 음주도박 파문 이후 승려들의 고급 대형 승용차 이용과 고급 식당 출입, 주식투자를 자제하도록 하는 내용의 쇄신안을 마련했다고 소개해 사실상 이런 일이 비일비재(非一非再)하게 일어나고 있음을 꼬집었다. 이 잡지는 또한 “정치권처럼(미국의 일부 초대형 교회처럼) 부패와 성추문, 내분은 뒤섞이게 마련”이라고도 했다.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불교가 돼야”
심각한 내홍을 겪고 있는 태고종. 최근 태고종의 역사는 한마디로 ‘분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총무원 사무실이 마치 6·25 당시 백마고지 전투처럼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분종(分宗·종단의 분열)의 가능성도 없지 않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2004년 6월 태고종 제17세 종정에 추대된 혜초 스님은 “이젠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불교가 돼야만 발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혜초 종정은 스님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내가 불교에 귀의할 당시만 해도 헐벗고 굶주렸던 때라 불교 생활을 열심히 했는데 지금 스님들은 살기가 좋아져서 그런지 너무 편하게 지내려고만 한다”고 지적한 혜초 종정은 “스님의 기본은 고행(苦行)”이라고 강조했다.
또 “스님이라면 신조(信條)를 끝까지 지켜야 하는데 요즘에는 절과 맞지 않으면 나와서 다른 절로 옮기는 스님도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태고종 총무원 측과 비대위 양측이 더 이상 업보(業報)를 쌓는 일을 멈추고 부처님의 지혜를 빌어 사태 해결에 나서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