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지난 3일 교육부는 중학교 사회(역사, 도덕 포함) 과목, 고등학교 한국사 과목을 국정으로 구분한다고 고시했다. 지난달부터 정부를 중심으로 불었던 ‘역사 바람’이 결국 청와대의 의중대로 ‘한국사 국정교과서’로 가닥이 잡힌 셈이다. 교육부의 고시에 대한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다.
논란인 근·현대사 집필진 미공개…공모 나서
청와대 국정교과서 개입 의혹 끊이지 않아
지난 3일 교육부가 국정교과서로 전환할 것을 고시하면서 각 시대별 집필진을 투명하게 공개할 것을 약속했다. 반대여론을 의식한 것으로, 이는 사실 지난달부터 시작된 ‘역사교과서 전쟁’ 중 정부가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이었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여론이 내세웠던 이유 중 대표적인 것은 정부가 말하는 ‘국정교과서 집필진 구성’이 현실에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좌·우 모두를 포섭할 수 있는 집필진을 교육부가 구성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근·현대사를 두고 정치적 논란이 일고 있는 데다, 국정교과서에 대한 정부의 입장이 나오자 이에 대한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또한 역사학자들 중에서도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숫자가 찬성 측의 수를 상회하는데, 과연 학자들이 집필진으로 참여하겠냐는 것이다. 특히 정부가 말한 소위 ‘진보’측 역사학자들은 연이어 집필진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런 현실에서 과연 ‘좌와 우가 함께 참여하는 국정교과서’란 목표는 이상에 가깝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회(위원장 도종환)는 지난 4일 보도 자료를 통해 발표한 내용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평가다. 위원회는 “지금도 늦은 상황에서 집필진도 구하기 어렵고 편찬 기준도 계속 검토해야 하는 상황이라면, 2017년 3월 보급에 맞추기 위해 졸속 제작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정부의 국정교과서 발표 이후 국립대학교인 서울대학교를 비롯해 수도권 유명 사립대 등 전국 각지의 역사학과 교수 및 학생들은 정부 입장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6일 한국갤럽이 발표한 주간 여론조사 결과, 국정교과서를 추진하는 데 반대하는 여론이 53%인 것으로 나타났다. 찬성은 36%에 불과했다. 반대와 찬성 간의 차이가 약 20%로 나타나, 여전히 국정교과서에 대한 대중의 반대가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2명만 공개, 그마저도 1명은 사퇴
이런 와중에 국사편찬위원회(위원장 김정배)는 4일 집필자 기자회견에서 전체 집필진 중 두 명만을 공개했다. 논란의 중심인 근·현대사 집필진은 알리지 않은 채, 상고사·고대사 집필진만을 언론에 알린 것이다.
이날 김정배 위원장은 서울대 최몽룡 명예교수, 이화여대 신형식 교수가 상고사·고대사 집필진으로 참여한다고 밝혔다.
문제는 최몽룡 교수가 기자회견에 배석하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당시 김정배 위원장과 신형식 교수만 기자회견에 참석했는데, 이를 두고 뒷말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이에 최 교수 측은 당시 자택에 집필진 참여를 만류하는 제자들이 모였고, 함께 모인 제자들과 대화를 하며 간단한 약주를 하게 된 최 교수가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최 교수 측은 한 라디오와 TV 뉴스 인터뷰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밝혔다.
하지만 집필진 구성을 두고 나온 뒷말의 배경엔 정치권의 ‘막말’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은 최 교수를 두고,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재선·강릉)이 제자들의 최 교수 자택 방문을 ‘집단테러’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최 교수의 한 제자는 ‘제자들이 교수님 자택에 방문해 함께 의견을 나눈 것을 두고 집단테러로 말하는 것에 어이가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스승이 (최 교수가) 집필진으로 참여하게 되면, 이후 역사학자로서 수치스러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되어 자택을 다른 제자들과 함께 찾아가게 된 것”이라고 방문 이유를 들었다.
특히 논란인 두 명의 집필진 중 최 교수가 6일 사퇴 의사를 밝히면서 국정교과서 집필진 문제는 더욱 난항을 겪고 있다. 이날 최 교수는 ‘여기자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자진사퇴 의사를 밝혔다. 사건은 4일 기자들과 최 교수가 그의 자택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시작됐다. 최 교수가 기자회견에 나오지 않자, 일부 기자들이 최 교수의 집으로 찾아간 것이다. 이날 최 교수의 자택에서 기자회견을 했고, 이후 함께 식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일부 기자들만 남은 상황에서 발생했다. 최 교수가 ㅈ 일간지 여기자에게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는 것이다. 현재 최 교수는 가벼운 농담을 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신체 접촉에 대해선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최 교수는 함께 있던 다른 기자는 불쾌감을 표하지 않았는데, 뒤늦게 논란이 된 것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을 두고 ‘국사편찬위원회에 누가 될 수 없다’며 자진 사퇴의사를 밝혔다.
이에 대해 6일 오후 3시경 국사편찬위원회 관계자는 “우리 역시 최 교수가 사퇴의사를 밝혔다는 부분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며 “현재까지는 확인된 바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날 오후 7시경 국편위는 “최 교수의 사퇴 의사를 존중한다”고 밝혔다. 집필진 두 명 중 최 교수가 사퇴하면서 사실상 국편위가 공개한 집필진은 한 명이 된 셈이다.
청와대 개입 의혹
최 교수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국정교과서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청와대의 입장에 대해 의구심을 표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않은 최 교수에게 현정택 청와대 정책조성수석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기자회견에 참석해 달라’고 종용했다는 의혹이 있기 때문이다.
한 언론사에서 최 교수는 ‘자택에서 제자들과 간단하게 술을 마셔 기자회견 참석이 어렵다고 밝혔지만, 이에 현 비서관이 술을 마셨어도 참석해줬으면 좋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이를 두고 청와대 수석비서관이 직접 집필진에게 전화를 걸어 ‘기자회견 참석을 종용’했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한국사 국정교과서 전환에 대해 청와대는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정부의 공언이 신뢰를 잃을 것이다. 현재 최 교수와 정부 측은 이런 논란의 발언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며 부인하고 있다. 최 교수마저 해당 발언을 부인하고 있어, ‘청와대의 집필진 개입설’에 대한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한편 현재 국편위는 집필진 공모 및 초빙에 나선 상황이다. 국편위 관계자는 “현재까지 명확히 밝힐 수 있는 집필진은 없다”고 말했다.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