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2사태는 쿠데타 아니다”… “광주 사태 진범은 유언비어”
[최은서 기자] 노태우 전 대통령이 지난 9일 회고록을 출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노태우 회고록에서 대선 비자금 등 정치 비화를 털어놓았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회고록을 통해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대통령 후보에게 3000억 원 불법 선거자금을 지원했다고 과거사를 밝혀 파장이 일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수감 직전에 ’나 혼자 모든 책임을 지고 어떤 처벌도 나 혼자 달게 받겠다‘고 밝힌 이후 정치자금과 관련해서 어떤 발언도 하지 않았다”며 “이제 역사의 기록으로 남기는 마당에 사실관계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박철언 전 국회의원은 “YS쪽에서 부인하면 녹음테이프가 공개될 수 있을것”이라 폭로해 파문이 예상된다. 노 전 대통령은 “김영삼 총재가 대통령 후보로 결정된 직후 대선자금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적어도 4000억~5000억 원은 들지 않겠습니까’라고 말해왔다”면서 “경제상황과 기업사정을 잘 아는 금진호 장관과 이원조 의원을 통해 각각 1000억 원 정도의 기금을 조성해줬다”고 밝혔다.
YS, 1000억 긴급 지원 받고 “이제 살았다”
노 전 대통령은 이어 “대선 막바지에 이르러 김 총재와 당 선거관계 참모들로부터 자금이 모자란다는 SOS(긴급요청)을 받고 금 장관을 통해 한 몫에 1000억 원을 보내줬다”며 “김 총재는 한밤중에 전화를 걸어 와 ‘이제 살았습니다. 고맙습니다’라고 감사 인사를 했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이 1987년 대통령 후보로 나섰을 때 전두환 전 대통령으로부터 1400억 원의 선거자금을 지원받았고 당 재정위원, 후원회 등에서 모은 500억 원을 합치면 민정당 선거자금은 2000억 원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비자금 사건 수사를 통해 드러난 2757억 원에 달하는 자금 보유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자금이 모두 사용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내가 민자당을 탈당함으로서 자금지원 공식창구가 없어지고, 자금 관리를 책임진 이현우 경호실장이 안기부장으로 보직이 바뀌어 차질을 빚었다”며 “김 전 대통령이 당선 후 청와대로 찾아오지 않아 남은 자금을 후임자에게 전해주지 못한 채 퇴임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노 전 대통령은 “전 정권과 한국 현대사의 정통성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김 전 대통령의 취임사를 듣는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며 “남은 자금을 반드시 후임 대통령과 상의하고 그에게 인계해 줄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비록 내가 퇴임하더라도 국가를 위해 유용하게 쓰면 되는게 아닌가 이런 생각마저 들게 됐다“고 회고했다.
그는 “함께 일한 많은 사람들과 국민 여러분들에게 걱정과 실망감을 안겨 준 데 대해 자괴할 따름”이라며 “이런 일로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이 법정에 서는 일은 내가 마지막 사람이었기를 진실로 바란다”고 썼다.
“12·12사태는 돌발 사고”
노 전 대통령은 12·12 사태에 대해 “12·12 사태는 국가 원수를 시해한 김재규를 수사하는 과정에서 그 사건에 관련이 있다고 의심되는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을 연행하려다가 일어난 돌발 사고였다”며 “쿠데타가 성립될 수 있는 구성요건이 전혀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5·17 계엄확대결정에 대해서는 “학생들의 흥분이 정점에 올라있는 시위현장에 군인들을 투입시키면 쌍방 간에 불상사만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 시위의 근원지를 진압해 무력화 시키기로 했다”며 “사람의 심리는 새벽 2~3시경 가장 약해진다. 새벽 2시를 기해 서울 주요 대학에 병력을 출동시켰고, 예상대로 거의 저항이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광주사태의 진범은 유언비어”라며 “경상도 군인들이 광주시민들 씨를 말리러 왔다 등의 수많은 유언비어가 사실인양 퍼져나가 광주시민들이 무기고를 습격하고 군장비를 탈취해 군과 대응하게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반도 비핵화 선언 어떻게 나왔나
노 전 대통령은 한국의 비핵화 배경에 대회서도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배치된 전술 핵무기를 철수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한국 내 전술 핵무기도 곧 철수시킨다는 정보보고를 받고 이를 정책적으로 활용하자고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1991년 9월 부시 대통령이 핵 군축 선언을 하기 직전 두 차례의 정상회담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전달하고 비핵화 선언을 발표했다”고 전했다.
노 전 대통령은 북방 외교의 결과로 한국 외교가 능동적으로 발전했고, 북한의 군사력을 견제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또 “한소(韓蘇) 수교는 남북한 간의 안정 내지 한국 안보에 크게 기여했다”며 “한소 경협 이후 북한에 대한 소련의 전투기 공급은 즉각 공급 중단됐고, 북한에 대한 무역특혜를 철폐하고 현금 지불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자신의 퇴임이후 한국 정부가 한-러 관계를 소원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3金 등 주요 정치권 인사 평가
노 전 대통령은 김대중·김영삼·김종필 등 주요 정치권 인사들에 대한 인물평도 썼다.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에 대해 “수없는 난경을 겪어 오면서 얻은 경험이 몸에 배어 있었다. 관찰력이 예리하고 상대방 이야기를 한 대목도 놓치지 않았다”며 “‘어쨌든 대단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지만 시간에 따라 총명함이 많이 흐려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나는 왜 YS의 인간됨과 역사감을 오판했을까 여러번 자문했다”며 “2년간 매주 만나다시피했고 내 옆에서 국가 경영을 봐오기는 했으나 진지한 면보다는 피상적으로 접근한다는 인상이었다”고 회고했다.
또 김종필 전 총리에 대해서는 “30년 가까이 국정에 몸담아 온 관록이 있어서인지 믿음직스럽게 여겨졌다”고 평했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활동적 인물”이라며 “인식의 차이로 인해 전임자는 나에게 배신감을 느끼면서 서운해 할 수 있는 것이고 나는 미안해하면서도 어쩔 수 없다는 마음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해서는 1978년 박 전 대통령 신년 가족 식사자리 일화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박 전 대통령이 날밤 1개를 집어 큰 영애(근혜)에게 주었으나, 근혜양이 받지 않아 미묘한 분위기가 흘렀다”며 “옆에 있던 근영양이 ‘아버지 저 주세요’ 라며 입에 넣는 것을 보면서 박 대통령이 참 외롭겠다 생각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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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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