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금수저도 자기 능력 시대…사모펀드 업계 꽉 잡았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재벌가 자제들은 흔히 금수저라고 불린다. 특별한 노력을 하지 않아도 이미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예견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금수저들 사이에서도 ‘엄친아, 엄친딸(엄마 친구 아들·딸이라는 의미로 자신과 항상 비교 대상이 되는 특출하게 잘난 자식들을 뜻한다)’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특별한 집안에서 자란 덕도 있지만 스스로의 능력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 이들이다. [일요서울]은 재벌가 속 엄친아와 엄친딸은 누가 있는지를 찾아봤다.
이학수 삼성 고문 아들·김동관·정기선 ‘주목’
권지혜·윤송이 사장 새로운 대표 여장부로 등극
먼저 엄친아와 엄친딸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곳은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라는 이야기가 많다. 실제로 PEF 업계는 정·재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의 자제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대표적으로 이상훈 모건스탠리 PE 한국 대표와 이상호 글랜우드 PE 대표가 있다. 두 형제는 모두 이건희 회장의 복심(腹心)이라 불렸던 이학수 삼성물산 고문의 장·차남이다.
장남인 이상훈 모건스탠리 PE 대표는 작년 11월부터 현대차 그룹의 광고계열사인 이노션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다. 이노션은 지난해 모건스탠리 PE가 주도한 컨소시움에 지분 30%를 팔았다.
서울대학교 총장을 지낸 정운찬 전 국무총리 아들인 정준택씨도 미래에셋 PE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이들 외에도 PEF 시장에는 다양한 엄친아들이 존재한다.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의 사위인 한상원씨도 한앤컴퍼니 대표로 자리하고 있다.
고(故)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의 사위인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도 대표 인물이며 삼성전자 출신인 박영택 어피니티 부회장, 현대상선 LNG사업부와 할리스커피, 대한전선을 인수한 송인준 IMM PE 대표 역시 여기에 속한다.
재벌가 3·4세 가운데는 막내 격인 인사들의 면면이 두드러진다.
특히 자식들에 대한 자부심이 높은 것으로 정평이 나 있는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이 이번 정기인사에서 상무로 승진하면서 그의 이력이 주목됐다.
그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학사 학위를 받고 2010년 한화그룹에 입사, 2012년 한화솔라원 기획실장으로 발령난 뒤 한화큐셀 전략마케팅실장을 거쳐 지난 9월 한화솔라원 영업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는 등 그룹의 차세대 성장분야인 태양광사업을 책임지고 있다.
또 김동관 실장은 최근 태양광 계열사인 한화솔라원과 한화큐셀 통합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올 초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제 44차 세계경제포럼 연차 총회에 참석해 주목 받기도 했다.
정기선 현대중공업 상무도 이와 비슷한 절차를 밟고 있다. 현대중공업 대주주인 정몽준 전 새누리당 의원의 큰아들인 정기선 상무는 2014년 10월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상무로 곧장 승진했다.
1982년생으로 올해 34세인 그는 재벌 3·4세들 중에는 나이가 어린 축에 들어간다. 하지만 여느 재벌가 자제들과 달리 소탈한 모습으로 혹독한 경영 공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정기선 상무는 대일외고,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아버지처럼 학생군사교육단(ROTC) 43기로 임관해 2007년 육군 특공연대에서 군생활을 마쳤다. 2007년엔 국내 중앙일간지에서 1년간 인턴기자 생활을 했고, 2011년 6월 스탠퍼드대 MBA를 취득한 바 있다.
아울러 정기선 상무는 평소 무던하고 부지런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식당에서 직원들과 점심을 하고, 퇴근 후 동료들과 회사 주변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기울이는 일도 잦다.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사무실에 출근해 주중에 미처 챙기지 못한 서류를 보면서 회사 업무 파악에 힘쓰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까지가 대표적인 엄친아로 떠오른 인물들이라면, 엄친딸들의 능력이나 성장도 만만치 않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의 차녀 최민정 씨처럼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준 이들도 있다.
말보단 행동으로
최민정씨는 중국 베이징대를 졸업하고 해군 사관후보생으로 입영해 11주간의 교육을 모두 이수한 뒤 지난 10월 26일 장교로 임관했다. 재벌가 2세나 3세들이 병역을 기피하다 파문을 일으킨 것과는 매우 대조된다.
더욱이 최태원 회장과 노소영 씨(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의 1남 2녀 가운데 차녀인 민정 씨는 중국 베이징대를 다니던 시절 부모로부터 지원을 거의 받지 않는 등 자립심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입대 전에는 한국에서 젊은 유학파 인재들과 판다코리아닷컴을 공동 창업했다. 중화권 대상 온라인 쇼핑몰인 이 회사에서 민정 씨는 부사장으로 근무하다 해군 장교에 지원하면서 그만뒀다.
직접 회사를 이끄는 여성들도 눈에 띈다. 권지혜 삼홍테크 대표는 대표로 취임했을 때만 해도 비데업계에서는 신출내기 금수저의 데뷔 정도로 치부됐지만, 지금은 삼홍테크의 부활에 앞장서고 있다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그가 해외 전시회에서 우연히 만난 경쟁업체 대표에게 첫 인사로 “아파트 시장은 우리가 맡을 테니 일반 소비시장을 맡아주십시오”라고 선전포고하는 강단도 이미 업계에서는 화제가 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윤송이 엔씨소프트 신임사장 역시 능력 좋은 엄친딸이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의 부인인 윤송이 신임사장은 1993년 서울과학고등학교를 졸업, 1996년 한국과학기술원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2000년부터는 MIT 컴퓨터 신경과학 뇌·인지과학전공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MIT 미디어 랩 연구원으로 활동했다. 이후 맥킨지&컴퍼니 프로젝트 매니저로 입사, 와이더댄닷컴 이사 CI TFT, SK텔레콤 CI 본부장(상무)을 거쳐 2008년 엔씨소프트 부사장으로 영입됐다.
이처럼 이들은 앞서 금수저를 물고 태어나 자연스럽게 후계를 이어받거나, 호화로운 생활에 빠져 도태됐던 일부 재계 2·3세들의 모습과는 달리 자신들의 능력을 더해 새로운 재계 리더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강휘호 기자 hwihol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