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흔든 빅딜
재계 흔든 빅딜
  • 이범희 기자
  • 입력 2015-11-09 10:02
  • 승인 2015.11.09 10:02
  • 호수 1123
  • 40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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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 보는 장사는 하지 않는다?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한국 재계를 대표하는 삼성과 한화, 롯데, CJ와 SK 등이 각각 ‘빅딜(대규모 거래)’를 단행했다. 매각 기업들은 “매각 대금으로 신사업 유치”라는 뜻을 밝혔고, 인수받은 기업들은 “사업강화”라는 목표를 발표하며 상호 간 '윈-윈 전략'임을 강조한다.

그런데 옛말에 “사업가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과연 이번에 거래한 기업들 중 손해 보는 장사를 한 기업이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한 궁금증을 알아본다.

삼성-롯데·한화, CJ-SK 계열사 매각 ‘윈-윈 전략’
오너 입맛 맞춘 인수합병·이면합의 주목…숨은 노림수는

한 경제학자는 “(기업 간 손해보는 거래는) 시장 특성상 말이 안 되는 부분이며 분명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선에서 모든 거래가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인들도 같은 대답이다. 누구도 손해보는 장사를 하면서 매각을 했을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일부 기업 홍보담당자들만 “그럴 수 있다”는 답변을 하며 모호한 웃음을 지었다.

인수합병이 진행되는 직장인들 다수는 대놓고 이야기를 못할 뿐 속앓이를 하는 모습을 목격할 수 있다. 한 직장인은 “1등 기업에 다닌다는 자부심에서 하루 아침에 직장명이 바뀌는 상황에 처했다”며 자신의 처우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해 불안한 모습을 보였다. 한 기업 임원은 합병 후 자신의 위치와 자기 사람 심기에 혈안이 됐다는 후문이 들린다. 

합병이 마무리 된 기업도 문제가 속출하긴 마찬가지다. 매각 후 노조의 무리한 요구와 파업 속에 인수합병 효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

한화는 M&A를 발표한 지 1년 가까이 지났지만 노조의 거듭된 반발로 제대로 된 시너지를 낼 사업재편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삼성에서 한화로 넘어간 4사 중 한화종합화학은 지난달 30일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노조가 시설물을 불법점거하고 파업을 진행해 안전이 우려된다며 울산공장을 폐쇄한 것이다.

임단협을 무사히 끝마친 계열사는 한화토탈이 유일하다. 하지만 일부 노조원들은 너무 빨리 협상을 마쳤다며 얻어야 할 것을 제대로 얻지 못했다는 비판의 소리를 내기도 했다.

 ‘삼성맨’에서 ‘롯데맨’이 된 3사도 노조가 불안요소가 될 수 있다. 앞선 한화 사례처럼 노조가 합병 과정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며 사업 재편을 불가능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오너 일가의 사업 별 애정에 따라 분류되는 사업 재편이라는 소문이 업계에 떠돌면서 이에 대한 논란의 소지도 남아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창업주가 일궈논 사업인데 후계자의 입맛에 따라 일부 사업부서가 매각 대상에 오르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한다.

일각에선 ‘이면합의설’이 떠오르기도 한다. 기업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그동안 일궈놓은 사업을 내주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기업들이 이와 같은 잡음에도 불구하고 기업 간 빅딜을 추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수의 전문가들은 ‘후계구도’에서 그 답을 찾는다.

실제로 한화그룹이 삼성테크윈과 삼성종합화학을 총 1조9000억 원에 인수하기로 했는데 후계구도와 맞물렸다는 분석이다. 삼성은 비주력사업인 화학과 방위산업을 처분하고, 한화는 주력사업인 화학과 방위산업 역량을 강화하게 됐다. 한화는 이번 인수·합병(M&A)을 통해 석유화학·방위산업 등 핵심 사업 분야에서 단숨에 국내 1위로 올라서는 한편 글로벌 메이저들과도 경쟁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화는 장남 김동관 씨에 대한 후계구도의 기틀을 마련하게 됐다.
삼성도 마찬가지다. 앞서 삼성은 화학사업을 정리하고 전자와 금융 등을 중심으로 주력사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해답은 후계구도

이를 두고 업계 전문가들 사이에선 “삼성에서 화학사업이 다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는 분석”이 많았다.
삼성그룹이 창업2세에서 3세로 경영권이 승계되는 과정에서 전자와 금융은 이재용 부회장이, 호텔과 유통은 이부진 사장이, 패션과 광고는 이서현 사장이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화학사업은 오너 3세 경영의 사각지대에 자리잡고 있다.
삼성그룹 안팎에서 중공업 계열사를 놓고 매각 가능성이 나오는 것도 화학사업 정리와 맥락을 같이 한다. 중공업이 오너 3세들 모두에게 낯선 사업 분야다 보니 챙길 후계자가 없다는 것이다.
삼성그룹과 달리 화학사업을 키우고 있는 대기업 오너들은 화학 계열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만큼 화학사업에 대한 애착이 남다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롯데케미칼 임원으로 한국 재계에 데뷔했다. 롯데그룹에서 신 회장의 가신그룹 역할을 하고 있는 황각규 롯데그룹 정책본부 운영실장, 임병연 롯데그룹 미래전략실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등이 모두 호남석유화학에서 동고동락했던 인물들이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도 화학사업에 대한 의지가 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회장이 한화종합화학과 한화토탈을 인수한 것도 이런 의지의 다른 표현이다. LG화학이 대규모 인수합병으로 화학업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는 와중에도 화학업계 1위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화학사업에 대한 구 회장의 의지가 바탕에 깔려있다.
한편 CJ그룹이 CJ헬로비전을 SK텔레콤에 매각한다는 소식에 통신·케이블방송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번 인수로 미디어 플랫폼 기업으로의 미래 전망을 밝혔다.

지난 3일 CJ그룹에 따르면 CJ오쇼핑은 보유한 CJ헬로비전 주식 53.9%를 SK텔레콤에 1조 원에 매각한다. CJ헬로비전 지분 53.9% 가운데 30%( 2323만4060주)를 현금 5000억 원에 처분하고, 3년 후부터 5년 내에 잔여 지분 23.9%를 5000억 원에 추가로 매각할 수 있는 수 있는 풋옵션을 보유한다.
동시에 SK텔레콤은 잔여 지분을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을 갖게 됐다. 이번 인수가 성사될 경우 5년 내 1조 원의 거래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CJ는 한해 1000억원의 이익을 거둔 CJ헬로비전을 왜 파는 걸까. 이 의문은 그룹 대 그룹의 ‘전략적 협력’으로 해석해야 풀린다.

CJ그룹은 CJ헬로비전을 SK텔레콤에 매각하면서 자금 확보뿐 아니라 SK그룹과의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구축했다. CJ그룹과 SK그룹은 2일 향후 콘텐츠 창작 및 스타트업 지원 사업에 양 그룹이 함께 투자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사업협력 방안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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