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2000년대 초반 권력형 비리사건 ‘이용호 게이트’ 의 핵심 인물로 지목돼 5년 6개월간 복역한 김영준(54) 이화전기공업 회장이 횡령 혐의로 또 다시 구속됐다.
김 회장은 검찰의 추적을 피해 10여 개의 대포폰을 사용하고 3개월간 도망쳤으나 결국 붙잡혔다. 그의 범죄가 과거 사례를 복습한 것으로 드러나면서 새로운 권력형 비리사건으로 비화되는 것은 아닌지 이목이 쏠린다.
이화전기·이트론 거래 정지…피해액 ‘눈덩이’
사측 “문제없다”…자사 홈페이지에 해명글 올려
김 회장은 업계에서 ‘기업 사냥꾼’으로 알려져 있으며 차명으로 소유한 회사만 수십 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검찰과 김 회장의 악연이 또 다시 시작된 것은 지난 3월께다. 증권선물위원회가 이화전기공업과 김 회장 등을 사기적 부정거래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올해 4월 검찰이 이화전기 본사와 대표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본격적인 수사를 시작하자 김 전 회장이 잠적했다.
당시 검찰은 김 회장의 사주를 받아 이화전기 및 계열사 주가를 고의로 부양한 혐의(시세조종)로 노 모씨와 홍 모씨 등 시세조종 전문가 두 명을 붙잡아 구속기소했다. 이어 김 회장과 또 다른 시세조종 전문가 한명은 법원이 체포영장을 발부하자 도주해 종적을 감췄다.
검찰은 지난달 6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소재의 한 오피스텔에서 김 회장을 체포했다. 이후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부장검사 이진동)는 지난 4월 압수수색 당시 수집한 자료 등을 토대로 김 회장의 횡령 및 주가조작 등의 혐의를 추가로 포착했다. 그 결과 김 회장은 이트론, 이아이디 등을 포함해 문어발식으로 여러 상장사를 인수합병한 뒤 자금을 유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미국계 자원개발회사인 K사와 바이오업체 N사 등 여러 기업의 주가 조작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김 회장은 검찰이 수사에 나서자 압수수색에 대비해 회사에 보관중이던 관련 서류를 정리해 숨기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김 회장과 시세조종 일당은 적정한 담보 없이 회사 자금을 유출하고, 허위공시를 통해 소액주주에게 손실을 전가했다”며 “자본시장을 혼탁하게 하는 경제사범들을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김 회장이 과거 이용호 게이트의 배후인물로 주목받었던 점에 착안, 이번 횡령에도 고위관료가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기도 한다. 아직 뚜렷한 혐의가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래도 가능성은 열어 둔채 수사 범위를 확대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횡령’부인 두 달 만에
‘상폐’ 위기
한편 이번 사건으로 이화전기와 이트론의 거래가 정지됐다.
지난달 26일 한국거래소 코스닥시장본부는 이화전기와 이트론을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에 해당하는지 심사키로 했다고 공시했다.
이화전기과 이트론이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인지 판단하는 기간까지 매매거래는 정지된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 여부는 15거래일 내 결정된다.
상장적격성 실질심사 대상으로 확정되면 이화전기와 이트론은 15거래일 안에 개선계획서를 제출하고, 기업심사위원회를 거쳐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하지만 회사의 늦장 대응에 대해서는 책임을 회피하기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이미 지난 8월 한국거래소는 이화전기에 횡령 관련 보도에 대한 조회공시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화전기 측은 두 차례의 답변 모두 “현 임직원이 기소된 사실은 없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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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호 게이트란?]
이용호 게이트는 G&G그룹 회장 이용호 씨가 삼애인더스, 인터피온 등 자신의 계열사 전환사채 680억 원을 횡령하고 보물선 발굴사업 등을 미끼로 주가를 조작, 250억여 원의 시세차익을 챙긴 혐으로 구속기소된 사건이다.
당시 이 사건은 정치인과 검찰간부, 국정원, 금감원 등이 연루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권력형 비리의 종합판’이라는 용어까지 나왔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은 이 씨가 추진했던 보물선 발굴사업에 대한 사전 검토작업을 벌였을 뿐만 아니라 보물선 민간사업자 선정과정에서도 모종의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따라 이 사건의 수사를 위해 2001년 특별검사(차정일)가 임명되었으며, 특검 과정에서 신승남 전 검찰총장 동생, 이형택 전 예금보험공사 전무 및 김대중 대통령의 차남 김홍업 씨, 처조카 이형택 씨 등 권력층의 비리가 추가로 밝혀졌다. 김홍업 씨는 이후 검찰 수사에서 이권청탁 대가 등으로 47억 여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 구속 기소됐다.
당시 이 사건을 조사한 차정일 특검은 김대중 대통령의 주변 인사들을 줄줄이 구속하면서 ‘특검의 존재 이유를 보여줬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이 씨는 5년 6개월을 복역한 중이던 2007년 3월, 유죄 증거가 됐던 증언 중 일부가 위증으로 확정되자 관련 혐의에 대한 재심을 청구했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였다.
이후 이 씨는 재심에서 일부 혐의에 무죄판결을 받고 징역 2년 3월에 벌금 250만 원을 선고받았으며 2007년 3월 형집행 정지로 풀려났다. 그러나 수감 중이던 2006년 9월, 변호사를 상대로 5억 원 상당의 사기 행각을 벌인 사실이 드러나면서 2010년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고 다시 구속됐다.
이범희 기자 skycros@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