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총선 전멸 위기감…손학규가 호남 지지율 1위
유승민 김부겸 등 TK 출신 지지율 올라 ‘이변’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2012년 12월 대통령선거 때 호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광주는 92.0%, 전남은 89.3%, 전북은 86.3%의 몰표를 줬다. 하지만 문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졌다. 그럼에도 호남 유권자들은 문 대표를 버리지 않았었다. 문 대표가 지난 2월 8일 전당대회에서 당권을 잡아 ‘대권 재수(再修)’의 기반을 마련한 것도 호남의 식지 않은 지지 덕분이었다.
2·8 전당대회 당시 문재인 후보는 대의원 투표에서 박지원 후보에게 불리할 것으로 예상됐다. 호남 대의원 수가 상대적으로 많기 때문에 목포 출신으로 DJ(김대중 전 대통령)의 적통을 자처하는 박 후보가 절대 유리할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대의원 투표에서도 문 대표는 45.05%를 받아 박 후보(42.66%)를 눌렀다.
이후 호남 민심은 ‘문재인 대통령’을 다시 기대하는 듯 보였다. 2·8 전당대회 직전에 실시된 ‘리얼미터’의 주간 여론조사에서 문 대표는 호남 유권자의 26.2%로부터 지지를 받아 박원순 시장의 24%를 제치고 1위였다. 당시 문 대표는 전국적으로도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문 대표는 4·29 재보궐선거 직전에는 호남에서 무려 37.8%로 박 시장의 15.6%를 크게 앞지르며 호남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4·29에 이어 10·28 재보선에서도 야당이 참패하자 호남은 문 대표에게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 문 대표가 이끄는 새정치연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한국갤럽’의 11월 첫 주(3~5일) 여론조사에서 호남지역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32%에 그쳤다. 새누리당의 27%에 비해 겨우 5% 포인트를 더 받았다. ‘지지정당 없음. 의견 유보’라고 밝힌 응답자가 무려 38%였다.
재보선 잇단 참패에 등 돌려
호남지역 언론인 A씨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 30%대 지지율에 머물고 새누리당과 5% 포인트 격차만 난 건 사상 초유의 일”이라며 “무응답자의 대다수는 ‘호남 신당’에 기대를 걸기보다는 문 대표가 물러난 새정치연합을 갈망하는 민심으로 봐야 한다”고 밝혔다.
문 대표 개인에 대한 지지율은 더 참담하다. 심지어 문 대표의 호남 지지율이 겨우 8%로, 박원순 시장 31%에 3분의 1 수준, 안철수 의원 20%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조사결과(한국갤럽 10월 둘째 주)도 있었다. 이 조사에선 문 대표가 심지어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9%에도 밀렸다.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나 정계은퇴를 선언한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대상에 포함시키면 문 대표의 호남 입지는 더욱 초라해진다. 지금은 반 총장과 손 전 대표가 지지율 조사에서 자신을 포함시키지 말아 달라는 요청을 했기 때문에 대다수 여론조사기관에서 두 사람을 배제하고 있다.
손 전 대표는 현실정치에서 손을 떼고 전남 강진에 칩거 중이지만 지난 5월 시사저널-리얼미터 호남 지역 유권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22.4%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손 전 대표는 최근 사실상 정치활동을 재개한 상태라는 평가를 받는다. 10월 29일 카자흐스탄 키맵대에서 특강을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만일 어떤 형식으로든 그가 정계복귀를 시작하면 ‘호남의 새로운 희망’이 될 것이란 관측이 많다.
호남의 민심 물결이 요동치고 있음을 읽게 하는 다른 조사결과도 적지 않다. 특히 호남지역에서 수도권 출신인 손 전 대표뿐만 아니라 TK(대구·경북)인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과 김부겸 전 새정치연합 의원이 뜨고 있는 점에 정가는 주목한다.
유승민 의원은 ‘리얼미터’의 10월 5주차 대권주자 지지율 조사 때 호남 지역에서 7.0%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는 유승민 지지율 전국 평균치(3.9%)는 물론이고 자신의 고향인 TK(6.1%) 보다도 높은 수치다. ‘원내대표 직 사퇴 파동’ 이후에도 역사 교과서 국정화와 한국형 차세대 전투기(KF-X)사업 등을 놓고 박근혜 대통령과 사사건건 대립각을 세우는 데 대한 호감의 표시인 것으로 파악된다.
김부겸 전 의원은 아직까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 포함되지 않지만 내년 총선에서 적지인 대구 수성갑에서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에게 이기면 단번에 문 대표 등의 경쟁자로 급부상하게 된다. 최근 ‘공존의 공화국을 위하여’를 펴내고 서울과 대구를 비롯한 전국에서 북 콘서트를 열고 있다.
김 전 의원은 최근 호남지역에서 자주 강연을 갖는다. 10월 초엔 광주시의회 의원연찬회에서 특강을 하기도 했다. 호남 정치권 관계자 B씨는 “이정현 최고위원이 전남 순천-곡성 재선거에서 당선되며 지역주의 극복 가능성을 보여준 이후 호남 민심은 김부겸의 도전에 상당한 기대와 호감을 갖고 있다”고 귀띔했다.
무소속 천정배 의원도 “손학규·김부겸·유승민 세 분 가운데 한 분만 움직여도 신당은 무조건 성공한다”고 말한 바 있다. 천 의원으로선 사진이 창당을 추진하는 신당이 ‘호남 신당’에 머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들의 합류가 절실하다. 하지만 세 사람은 그럴 가능성을 일축한다.
호남지역 언론인 C씨는 비(非)호남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들의 관심표현에 대해 “과거 DJ처럼 지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는 리더가 없는데다, 문재인 대표에 대한 실망감, 거부감 등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당 내홍 지속에 지지세 이탈
호남 민심이 문 대표에게 멀어진 이유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까닭이다. 무엇보다 잇단 재보선 참패를 보면서 ‘문재인 후보’로는 정권탈환이 어렵게 됐다는 인식을 갖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인구가 적은 호남은 DJ가 충청의 김종필 전 총리(JP)와 연대한 1997년 대선 승리로 처음 정권을 잡았다. 이후 PK(부산·경남) 출신인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표를 잇달아 밀었지만 문 대표는 실패했다.
호남 유권자는 문 대표에게 다시 한 번 기회를 줬지만 재보선에서 잇달아 패배하며 리더십의 한계를 드러내는 모습을 본 뒤 마음을 바꿔 먹고 있다. 여기다 박지원 의원을 비롯한 호남의 비주류 측과 문 대표가 끊임없이 갈등을 일으키는 모습을 보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호남 출신 정치평론가 D씨는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신당 추진 세력이 문재인 대표를 지속적으로 흔드는 것도 호남 민심을 이탈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리얼미터’ 이택수 대표 역시 “당 내홍이 지속되는 것이 가장 결정적”이라며 “안철수 의원 등 비주류의 날선 비판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10·28 재보선까지 참패해 문 대표가 호남에서 계속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문 대표가 호남에서 흔들리면 내년 총선 때 수도권 전체에서 새정치연합에겐 악재가 된다. 수도권에 거주하는 호남 사람들이 문재인 대표체제의 새정치연합에 반기를 들어 제3의 선택을 할 수 있는 까닭이다. 문재인 퇴진론을 주장하는 비주류 측에선 호남 뿐 아니라 전국적인 상황을 가상해 문 대표를 압박하고 있다.
결국 문 대표로선 호남 민심을 다시 얻는 일이 급선무지만 뚜렷한 묘책이 없어 깊은 고민에 빠져들고 있다.
ilyo@ilyoseoul.co.kr
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