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럿워크’에 대한민국 ‘충격’
‘슬럿워크’에 대한민국 ‘충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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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07-26 15:06
  • 승인 2011.07.26 15:06
  • 호수 899
  • 4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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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녀’들의 행진… ‘야한 옷’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

지난 16일 광화문에서는 이색적인 행사가 열렸다. ‘대한민국 최초의 행사’라고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한 시위였다. 그 이름도 생경한 ‘슬럿워크(Slut Walk)’. 슬럿이란 영어로 창녀, 매춘부를 뜻한다. 하지만 이 시위에 참여한 여성들이 진짜로 창녀 매춘부들은 아니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사회적인 편견에 맞서고자 하는 여성들이 시위를 벌인 것. 그녀들은 여성들이 야한 옷차림을 입었다고 곧 성폭행의 대상이 돼도 된다는 남성들의 인식에 대해 집단적인 반발을 하고 나선 것이다. 그녀들은 시위에서 ‘꼴리는 건 본능 때문이지만 덮치는 건 권력이다’, ‘옷은 양념이 아니다. 그녀는 먹을 것이 아니다’, ‘내가 벗었다고 네가 만질 수 있는 건 아니야’등의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쳤다. 이제까지 이런 행사들은 외국에서는 다수 있어왔다. 특히 캐나다나 미국 등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이런 행사가 벌어진 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었다. 시위는 끝났지만 과연 그 시위가 남긴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남성들은 이에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심지어 어떤 남성들은 꽤 과격한 표현까지 써가며 이들 여성들을 성토하고 있기도 하다. 야한 곳, 꼴림, 본능, 권력 등의 이야기들이 난무하는 이 시위현장은 과연 무엇을 남겼을까.

그녀들이 원하는 건 딱 하나였다. ‘야한 옷이 성폭력을 부른다는 인식이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이 사건의 배경에는 이번 고대 의대생 성폭행 사건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할 수 있다. 당시 피의자들은 어김없이 피해 여성에 대해 ‘평소 행실이 단정치 못했다’, 혹은 ‘먼저 유혹을 했다’는 등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에 분노한 많은 여성들은 남성들이 자신들의 성폭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여성의 행실’, ‘야한 옷’, ‘술에 취한 상태에서’라는 이유를 들고 있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은 꼭 유교 사상이 뿌리깊이 박혀 있는 우리 사회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은 아니다. 올해 1월 캐나다 경찰은 학생들에게 성폭행과 관련한 안전수칙을 배포한 경우가 있었다. 그 내용은 “성폭행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자들이 ‘슬럿’처럼 옷을 입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발표 이후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에서는 ‘슬럿워크’ 시위가 벌어졌고 이번에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남성 성범죄 누구 책임인가?

사실 여성의 옷차림과 남성의 성폭력에 관한 내용은 ‘해묵은 논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오래된 이슈이다. 가장 대표적인 논란은 ‘여성의 야한 옷이 남성을 자극시키고, 그런 자극에 대한 책임이 있는 이상 여성도 그러한 성폭행을 유발시킨 원인이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여성들은 ‘우리는 옷을 우리 마음대로 입고 다닐 권리가 있다. 남성들의 시선 때문에 우리의 자유가 침해당할 수는 없다’고 맞서고 있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여성들은 ‘야한 옷을 입은 여성’에 대한 편견 자체에도 반기를 들고 있다. 도대체 그 ‘야함’의 기준이 어디 있냐는 것이다. 노출이 많은 것은 여성들이 굳이 남성들에게 잘 보이기 위하거나 혹은 성적으로 유혹하고자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자연스러운 취향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 이러한 ‘성적 자극과 옷입을 권리’는 이번 슬럿워크가 일어났던 가장 핵심적이고 본질적인 이슈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이는 이데올로기적으로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맞붙는 형국이기도 하다. ‘여자는 조신해야 한다’는 보수적인 가치관과 ‘여성도 자유롭게 살 권리가 있다’는 논쟁은 이미 대한민국에서 30년 이상 오래된 가치관의 싸움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런 슬럿워크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각은 어떨까. 이날 현장에서 시위를 지켜봤던 직장인 김모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처음 그녀들의 피켓을 보는 순간 너무도 어처구니가 없고 황당했다. ‘내가 벗었다고 해서 만져서는 안된다’는 발상은 참으로 어떻게 말을 해야할지 어이가 없을 정도다. 왜 함부로 벗는단 말인가. 이건 여자가 아니라 남자도 마찬가지다. 아무데서나 벗어서는 안되고 벗는 공간에서만 벗어야 된다. 벗는다는 것은 일종의 ‘만지는 것에 대한 허락’을 내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길을 가면서 자신의 지갑을 꺼내들고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다닌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훔쳐가도 된다는 이야기 아닌가. 훔쳐가길 싫다면 그것을 숨겨야 한다. 최소한 바지 주머니 안에라도 넣고 다니는 것이 지갑이다. 그 소중한 것을 그냥 떡 펼쳐서 보여주면서 혼잡한 길거리를 다닌다는 것이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정말 자신이 자신의 몸을 소중하게 여긴다면 벗어야 하지 않아야 되고, 벗는 것으로 인해서 생기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이건 남자와 여자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사람에 대한 문제이고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문제이다. 자신이 벗고 싶다고 아무데서나 벗는 것이 과연 민주주의의 자유인가. 정말 어처구니없다고 생각한다.”


“중요한 건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 보는 남자들의 태도”

또 다른 한 남성은 ‘야한 옷’에 대한 현실적인 위험을 지적하기도 한다. 직장남성인 최모씨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물론 그녀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본다. 야한 옷을 입었다는 것 그 자체가 ‘나는 성폭행해도 된다’는 메시지는 아니다. 그러나 문제는 ‘현실적인 위험’을 직시해야 한다. 조직폭력배와 마약 중독자들이 가득한 할렘가를 거닐면서 험악한 인상을 쓰거나 욕을 하지 않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그들로부터 어떤 위험을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할램가를 걸으면서 ‘욕하고 인상쓰는 건 내 마음이니 상관하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가. 현실적인 위험이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그 위험을 피하면 그만인 일이다.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성폭행과 성폭력이 횡행하는 사회에서 ‘벗는 건 내 자유다’라고 말하면서 성폭행을 할 생각이랑 하지 말아라고 말하는 것은 그냥 자신을 위험 속에 고스란히 방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한 위험 속에서 스스로도 자신을 방치하는데 과연 누가 그녀들을 보호해줄 수 있단 말인가.”

일부 여성들 또한 이러한 남성들의 이야기에 동의하는 건 마찬가지다. 30대 중반의 프리랜서 디자이너인 김모양의 이야기다.

“옷을 야하게 입고 다니고 싶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그것도 ‘때와 장소’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그러는 것은 얼마든지 찬성이다. 아니 오히려 즐겁게 성을 즐기기위해서는 오히려 그런 옷이 필요하다고 생각도 든다. 그런데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도 아닌 익명의 다수의 낯선 남성들 앞에서 그런 옷차림을 하고 다니는 것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가. 할 필요가 없는 것을 한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무언가 자신의 섹스 어필을 하려고 한다는 이야기 아닌가. 어필을 한다는 것은 반응을 전제로 한다. 야한 속옷이라는 어필은 필수적으로 성적인 본능을 야기 시킨다. 도대체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집에서, 혹은 여행가서 호텔에서 하면 뭐가 덧나나? 굳이 그걸 모르는 사람에게 드러내려는 심리 자체가 같은 여자 입장에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슬럿워크를 하는 여성들을 이해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존재한다.

“사실 야한 옷이라는 것 자체나 혹은 ‘먼저 유혹했다’는 기준 자체가 사실은 상당히 불명확하다. 팔짱을 끼는 것이 유혹이고, 약간 자태를 흐트렸다고 그것을 명백한 ‘유혹’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것은 남성들이 여성들을 ‘먹는 것’으로 비유하며 ‘성적인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큰 문제가 있다고 본다. 이러한 시각이 없으면 여성이 비록 포옹을 하더라도 그것은 그저 친절과 배려의 의미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번 슬럿워크는 여성을 바라보는 남성의 근본적인 태도를 문제삼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시위는 충분히 가치가 있고 남성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이번 슬럿워크 시위는 여러 가지로 한국 사회에서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여성을 대하는 남성들의 태도’를 본격적으로 문제삼은 대규모 첫 집회라고 볼 수 있다. 이제껏 이러한 논의들은 전문가들끼리, 혹은 여권을 주장하는 사람들끼리 탁상공론으로 이뤄진 것이 사실이었다. 그 논의들이 이렇게 거리에까지 등장하며 ‘까발려지기는’ 처음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시위로 인해 남성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 바뀔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물론 시위의 주최자들 역시 한 번의 시위로 많은 것들이 바뀌기를 기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러한 시위가 뭔가 색다른 문제의 시사점들을 가지고 보는 이들에게 임팩트있는 인상을 끼쳤냐고 하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시위를 보는 많은 남성들은 오히려 이러한 여성들의 시위에 반감을 드러낸 것도 사실이다. 어쩌면 이 해묵은 논쟁에 오히려 더 깊은 골을 팠을 수도 있다는 것이 적지 않은 남성들의 공통된 의견이기도 하다.

[이동석 헤이맨라이프 기자] www.heymanlif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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