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김현지 기자] 17대 대선을 열흘 앞둔 2007년 12월 7일.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대선후보는 자신에게 제기된 BBK의혹을 돌파하기 위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대중에게 공언한다. 이 전 후보는 “대통령 당락에 관계없이 재산 전부를 내놓겠다”며 공익재단의 출연을 시사했다. 해를 넘긴 2008년, 이 전 후보는 대선에서 당선됐고 2009년 3월에 재단법인 청계 추진위원회를 발족한다. 그해 7월, 청계재단 설립을 발표했고 8월25일 정식으로 법인 설립허가를 마쳤다. 우여곡절 끝에 설립한 청계재단, 하지만 재산의 사회 환원을 공언한 때로부터 약 8년이 지난 지금 재단이 설립 취소 위기에 처했다는 뒷말이 나오고 있다.

4년간 대출 이자만 12억…장학금 지급액 반토막
장학사업 취지 무색? 공익재단 관리 제대로 해야
BBK 실소유주가 이명박 대선후보 본인이라면 이 후보는 16대 대선에서 낙마할 거란 평가가 당시 쏟아졌다. BBK 주가조작사건은 수많은 개미투자자들을 피해자로 만들었고, BBK를 설립한 실소유주이자 주가조작을 주도한 자가 이명박 후보라면 ‘도덕성’ 등 대통령의 자격에 치명적 결함이기 때문이었다. 당시 일각에선 BBK를 설립한 이로 이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이런 일련의 의혹을 타개하기 위해 이 후보는 재산의 사회 환원을 공언했다. 대선 직전 ‘전 재산’을 대통령 당선과 관계없이 사회에 되돌려주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이 약속에 따라 2009년 이 전 대통령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영포빌딩 △서초동 대명주빌딩 △양재동 영일빌딩 등 3건과 그 부속 토지(한국감정원 평가액 395억 원), 자신 명의의 개인예금(8104만 원)을 합친 395억8104만 원을 ‘청계재단’에 출연했다. 당시 청계재단은 395억8104만 원 중 이 전 대통령 건물과 관련된 채무를 64억3900만 원으로 산정해, 총 331억4200만 원만 자본금으로 설정했다. ‘전 재산의 사회 환원’을 약속한 2007년 12월로부터 무려 1년이 지나서야 출연한 ‘재산’이었다.
총 331억 원 자본금 설정
하지만 이마저도 이 전 대통령의 개인 빚 때문에 본래의 취지가 무색해졌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청계재단이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법인 설립 허가를 공식적으로 받은 시기는 2009년 8월25일. 이로부터 불과 한 달도 안 된 지난 9월22일에 청계재단 측은 서초동 소재의 빌딩(토지 포함)을 담보로 50억 원을 우리은행에서 차입했다. 재단 측은 우리은행에서 빌딩 담보로 빌린 50억 중 다른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한 용도로 30억 원, 제세공과금을 납부하기 위한 용도로 20억 원을 사용 허가내역으로 서울시교육청에 제출했다.
문제는 ‘차입금을 상환하기 위한 30억 원’이었다. 박홍근 새정치민주연합(서울 중랑구을) 의원실에 따르면, 2008년 이 전 대통령이 천신일 전 세중나모 회장에게 개인적으로 빚을 졌는데 2009년에 빌린 50억 원은 결국 이 빚을 갚기 위한 돈이었던 것이다. 2008년 이 전 대통령은 천 회장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서초동 빌딩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30억 원을 대출받았는데, 이 돈을 청계재단 출연 당시 비용에 포함시킨 셈이다. 재단은 이 빚을 갚기 위해 2009년 9월22일 다시 우리은행에 50억 원을 대출받았고, 올해까지 대출이자를 상환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선 장학사업을 하는 재단이 본 취지와 무관하게 개인의 빚을 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우리은행에서 빌린 50억 원의 이자만 5년 동안 약 12억 5천만 원에 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지난 5월11일 대학교육연구소가 국세청 ‘공익법인 결산서류 등 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청계재단의 장학금 지급 실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재단은 서초동 건물을 담보로 우리은행에서 50억 원을 빌렸을 때부터 매해 이자를 지급했다. 2010년 2억6372만 원, 2011년 2억7950만 원, 2012년 2억9170만 원, 2013년 2억2719만원, 2014년 1억8881만 원을 이자로 지급해 5년간 모두 12억5092만 원을 은행 이자로만 낸 것이다. 같은 기간 재단의 장학금 총액은 24억3530만 원. 이를 감안하면 은행 이자로만 지출된 비용이 과도하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개인의 채무 때문에 재단이 과도한 돈을 사용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연구소 관계자는 “공익 목적의 재단을 설립하기 전에 채무를 청산했어야 한다”면서 “채무 30억 원에 이자 포함한 비용 때문에 매년 냈던 돈이 장학금액과 비교했을 때 상당하다”고 말했다. 장학재단의 본 취지를 고려했을 때, 교육계를 중심으로 비판의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하지만 교육청 관계자는 매각이 제대로 이뤄진 뒤 빌린 돈을 갚는다면 설립취소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란 입장이다.
설립 취소 위기?
재단은 2009년 당시 ‘우리은행에서 빌린 50억 원을 3년 안에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상환하겠다’며 주무관청인 서울시교육청에 보고했다. 하지만 재단은 당초 약속했던 2012년 9월21일까지 상환하겠다는 허가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그해 11월2일에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경고장을 받았다. 당시 ‘부동산 경기가 좋지 않아 자산 매각이 어렵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이후 재단 측은 상환기간을 3년 연장하기에 이르렀다. 그 시기가 올 11월1일인 것이다.
지난 5월 재단은 약 150억 원 상당의 양재동 영일빌딩을 급매로 내놨다. 재단 측은 매각 진행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함구했다. 주무관청인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여러 업체와 좋은 조건으로 매각협상을 벌이고 있다”고만 말했다.
매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경우에 대해, 또 다른 교육청 관계자에 따르면 “매각절차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더라도 곧바로 설립취소로 이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면서도 “재단을 감독하는 게 교육청 소관이기 때문에 매각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청계재단 임시회의록’엔 ‘주무관청에서 10월 전에 채무에 대해 상환이행이 이루어지지 않을 시 재단에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경고를 했다’는 대목이 있어, 빚을 상환하지 않을 경우 청계재단은 설립 자체가 취소될 수도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 교육청 관계자는 “매각은 꼭 돼야 한다”며 “만일 매각이 이뤄지지 않으면 설립취소로까지 갈 수 있다”도 말한 바 있다.
실제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 제16조(설립허가의 취소) 2항에 따르면, 다른 방법으로는 감독목적을 달성할 수 없거나 감독청이 시정을 명령한 후 1년이 지나도 이에 응하지 아니한 경우 설립이 취소될 수 있다. 또한 제18조(권한의 위임)는 주무관청(서울시교육청)이 권한의 일부를 하급관청이나 지방자치단체에 위임할 수 있다고 언급했는데, 이 해석에 따르면 서울특별시가 청계재단에 관여할 수 있다.
29일 교육청 관계자는 “언론에선 ‘이번에 매각이 되지 않는다면 청계재단은 설립이 취소될 것이다’라고 말했는데 이 말이 어디에서 나온 말인지 알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만일 서울시로 권한이 위임된다면 관계자의 이 같은 발언은 달라질 수도 있는 셈이다. 한편 교육청 관계자는 “현재 청계재단 주무관청은 서울시교육청”이라고 말해, 권한위임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음을 언급했다.
영일빌딩이 매각돼 상환조건을 지킨다고 해도, 비판의 목소리는 잦아들지 않을 전망이다. 장학사업을 하는 재단이 개인의 채무를 위해 ‘기본자산’인 빌딩을 매각하려 했기 때문이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30일 “재단이 설립자의 개인 채무를 떠안은 격이나 다름없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장학이 목적 맞나
재단의 문제점은 이뿐만이 아니다. 대학교육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재단이 해마다 지급하고 있는 장학금이 4년 사이 반이나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임대료 및 관리비 수입은 해마다 증가했는데, 재단의 본래 취지인 ‘장학사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인 셈이다.
재단은 2010년 6억1915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지만, 2011년 5억7865만 원, 2012년 4억6060만 원, 2013년 4억5395만 원, 2014년 3억2295만 원을 지급해왔다. 재단이 설립된 다음해인 2010년과 국세청 자료에 공시된 최근 해인 2014년을 비교하면, 장학금 지급액이 무려 절반이나 줄어들었다.
대학교육연구소 측은 H사의 기부금 중단과 장학금 지급액 감소가 관계가 있다고 밝혔다. 재단 장학금은 2011년까지 6억 원 내외로 지급되다가 2012년부터 4억 원대로 크게 낮아졌는데, 이는 이 전 대통령과 인척관계였던 H사로부터의 기부금이 중단된 것과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H사는 2010년, 2011년 각각 3억 원씩 재단에 기부금을 냈지만, 이 전 대통령의 집권 마지막 해였던 2012년부터 기부금을 중단했다.
하지만 H사의 기부금 및 이의 중단이 재단의 본질적 문제는 아니다. 일반적으로 장학사업을 하는 재단은 기부금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재단이 장학사업을 하는 만큼 기부금 모집 등 운영 방안에 힘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재단은 기부금을 제외하고, 부동산 임대료 수익으로 장학사업을 해왔다. 교육계 관계자의 비판에 따르면, 문제는 H사가 기부금을 냈던 시기에 이 기부금을 제외한 금액마저 많지 않다는 것이다.
장학금 지급액이 지속적으로 줄어든 반면, 같은 기간 재단이 금융상품에 투자한 금액은 5억 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세청 자료(2015)에 따르면 청계재단의 단기금융상품 투자액이 2012년 1억 원에서 2013년 2억 353만 원, 2014년 7억 834만 원으로 증가해왔다. 재단의 본 취지가 장학사업임을 고려할 때, 단기금융상품을 보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많다는 지적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한 수익으로 장학사업을 이후에 확대한다면 물론 긍정적일 수야 있을 것이다”면서도 “하지만 현재까지 투자 수익금이 장학사업 확대로 이어졌다는 게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에, 장학금 지급액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투자액이 5억 원 넘게 증가했다는 점이 비판을 받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교육청 관계자는 “단기금융상품 논란이 작년부터 불거졌는데, 이는 ‘장기수선충당금’을 위해 재단이 투자할 수 있는 부분이다”며 “하지만 논란 이후 재단 측에선 금융상품 투자를 일반정기예금으로 바꾼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장기수선충담금은 건물 수리를 위해 적립해두는 비용이다. 관계자 말에 따르면, 재단의 금융상품 투자는 미래비용을 위한 것으로 지나치게 비판받을 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연구소 관계자는 장학금 지급액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금융상품 투자액이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한다. 무엇보다 금융상품 투자가 장학사업의 취지와 맞지 않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 교육관계자는 “장학금은 줄어들고 투자액은 늘어난다는 것이 재단의 설립 목적과 맞는지 의문”이라고 언급했다.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재단의 주무관청인 서울시교육청은 관리 및 감독 권한을 가졌고, 본래 목적인 장학사업을 소홀히 하는 등 비정상적으로 운영된다고 판단할 때 재단의 설립 취소 처분까지 내릴 수 있다. 교육 관계자는 “재단이 본래 목적과 다르게 운영된다고 판단될 때 주무관청은 설립 취소 처분을 내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30일 현재 “매각은 원활히 잘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시한은 11월1일까지다.
김현지 기자 yon88@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