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저 유물 도굴하고 포상금도 타려다 들통
해저 유물 도굴하고 포상금도 타려다 들통
  • 최은서 기자
  • 입력 2011-07-26 09:49
  • 승인 2011.07.26 09:49
  • 호수 899
  • 16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보물급 조선시대 유물 밀매될 뻔…

태안 앞바다서 해삼 캐다 400년 묵은 해저유물 도굴
보물급 유물 강조하며 팔려했으나 매매업자들 구입 꺼려


최은서 기자 = 태안 앞바다에 묻혀있던 보물급 유물을 몰래 캐내 팔아넘기려 한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이 도굴한 유물 16점 중에는 조선시대인 16세기 말 제조된 휴대용 화기(火器)인 승자총통(勝字銃筒)도 포함돼 있었다. 이 승자총통은 보물로 지정된 차승자총통(次勝字銃筒)보다 시기적으로 앞서 보물급 유물로 평가받고 있다. 경찰은 도굴꾼들에게 털린 유물 16점을 회수 조치했고, 문화재청은 도굴 지역에서 추가 유물 발굴 작업을 벌여 117점을 발굴했다.

잠수부 오모(43)씨 등 4명은 2009년 11월 중순 충남 태안군 원북면 부근 해역에서 불법으로 해삼 채취를 하다 유물 더미를 발견했다.

해삼 캐다 유물 16점 도굴

유물 더미를 보는 순간 오씨는 ‘도굴해 매매하면 큰 돈을 벌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10여 년이 넘는 잠수부 경력을 가진 오씨는 일대에서 잠수를 잘 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인물로, 해저에 매장된 유물에 손쉽게 접근할 수 있었다.

스쿠버 다이빙 장비를 착용하고 유물이 발견된 해저에 들어간 오씨 등 4명은 유물 16점을 도굴했다.
오씨 등이 도굴한 유물에는 선조 16년에 제작된 길이 56cm의 승자총통과 일제 강점기 때 사용했던 백자청화화문항아리, 고려 중기 청자병 등이 포함돼 있었다.

매장문화재 보호법 상 발굴자는 문화재를 발견하면 무조건 신고를 하게 돼 있으며, 발굴자가 문화재를 가질 수 없다. 하지만 오씨 등은 신고 대신 매매를 택했다. 이들은 매매에 앞서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신들이 도굴한 유물 파악에 나섰다.

범행 은폐 위해
문화재청에 제보


오씨 등은 인터넷 검색 끝에 도굴한 16점의 유물 중 여섯 마디 대마디 형태로 속이 빈 쇠막대기가 승자총통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승자총통은 임진왜란 당시 사용된 휴대용 화기로 조선시대의 개인용 소총으로 볼 수 있다. 승자총통이 보물급 유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한 오씨 등은 조모(48)씨 등 2명에게 부탁해 지난해 3월부터 지난 4월까지 경기 평택시 포승읍의 한 수산물가공사업장과 아파트 장롱 속에 숨겨뒀다. 이들은 도굴한 유물 중 도자기는 장식장 속에 보관해두기도 했다.

오씨는 16점의 유물을 도굴하고 은닉한 이후 지인 등을 통해 문화재청에 “태안 화력발전소 부근 해저에서 승자총통과 도자기 등을 봤다”고 제보했다. 도굴 지역에 유물이 매장돼 있다고 행정당국에 제보해 자신들의 도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서였다.

오씨의 신고를 받은 문화재청은 태안 앞바다 인근 해저에서 발굴 작업을 벌였다. 발굴은 2차에 걸쳐 이뤄졌으며 유물 117점을 발굴했다. 문화재청은 추가 매장 유물 등을 찾기 위해 해저 탐사 및 수색 활동 중에 있다. 문화재청은 오씨에게 포상할 계획이었으나 오씨의 도굴 사실이 드러나면서 보상을 취소했다.

매매시도 과정에서
경찰에 덜미


문화재청이 발굴 작업을 벌이는 사이 오씨 등은 잠수부 전모(40)씨 등을 통해 승자총통 매매에 나섰다. 전씨는 승자총통이 허가 없이 발굴된 매장문화재인 점을 알면서도 문화재 매매업자에게 매매를 알선했다. 이 일대는 과거부터 수도권 지역과 중국을 오가며 물품을 싣고 나르던 배들이 많이 침몰된 지역으로 문화재청은 이 일대에 5t에 달하는 유물이 매장돼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이 일대에는 평소에도 ‘도자기 발견하면 연락을 달라’고 연락처를 남기고 가는 매매업자들이 많이 드나들어 전씨가 매매업자에게 접근하기 쉬웠다”고 전했다.

오씨는 전씨의 소개로 만난 매매업자에게 보물급 유물임을 강조하며 5억 원을 제시했다. 하지만 매매는 쉽지 않았다. 매매업자들이 경찰에 쉽게 발각될 것을 우려해 구입을 포기했기 때문이다. 또 승자총통은 흔히 유통되는 유물이 아니라는 점이 매매업자들의 구입을 꺼리게 만들었다.

오씨 등은 매매에 실패하자 수차례 여러 사람에게 매매 시도를 했다. 심지어 주위 사람들에게 도굴된 유물에 대해 자랑하기도 했다. 오씨가 유물을 도굴했다는 사실이 매매시도 과정에서 드러나면서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오씨가 유물을 불법으로 매매하려 한다”는 제보가 접수됐다.

경찰은 탐문수사를 벌인 끝에 수산물 가공공장과 아파트 장롱 등에 숨겨놓은 승자총통 등 유물 16점을 발견했다.

조류 방향 바뀌면서
유물 드러나


문화재청이 감정한 결과 오씨 등이 도굴한 승자총통은 몸통에 ‘만력 계미 십일월(萬曆 癸未 十月日)’ 이라는 문구가 있어 1583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됐다. 또 지정문화재인 보물 제 855호 차승자총통보다 5년 앞서 사적가치가 있는 중요 유물로 확인됐다. 보물 제648호 승자총통은 제작 시기가 명확치 않아 이번 승자총통과 비교가 어렵다. 경찰 관계자는 “승장총통에 명문으로 제작 시기를 기재해 놓은 것은 드물다”며 “시대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라고 전했다.

경찰 관계자는 “인근 화력발전소 건설 등으로 조류 방향이 바뀌면서 유물이 드러난 것 같다”면서 “도굴은 물품 소유주가 없기 때문에 절도에 비해 피의자들의 죄의식이 낮다는 점이 문제”라고 밝혔다. 이어 “도자기 조각인 ‘편유’ 밀매도 큰 문제다. 국외 또는 국내에서 불법으로 복원을 해버리면 가품이라고 감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최은서 기자 choies@dailypot.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