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송승환 기자]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58)이 중국으로 밀항(密航)할 때 해양경찰이 이를 알고도 봐준 정황이 담긴 녹취록이 최근 공개됐다. 한 종편방송사는 2008년 12월 9일 조희팔이 충남 태안에서 중국으로 밀항할 때 이를 경찰에 제보한 양식업자 P모씨(48)와 해경 관계자 간 당시 통화 내용을 지난 10월 28일 보도했다. 녹취록 내용을 보면, 해경 관계자는 P모씨에게 “경비정 몇 마일(mile) 떨어져서 계속 감시하는 걸로. 그래서 공해상에서 일망타진하는 걸로 검거 계획서를 그렇게 짰다고. 접선할 때 중국 어선까지 다 일망타진하는 걸로 해버렸거든”이라고 말했다. 해경이 조희팔을 태운 배가 지나가는 곳에 잠복하고 있다 모두 체포하기로 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경 관계자는 이어 “계획서를 무시해버린 게 서장이야. 아침에 출근할 때 갖다 주니까 놓고 내려가라고 하더라고. 한 시간 있다 부르더니 경비정 다 빼래”라고 말했다. 당시 K 태안해양경찰서장이 조희팔을 체포하기 위해 잠복하고 있던 경비정을 철수하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K서장은 조희팔 검거 실패의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됐지만 넉 달 뒤 복귀해 현재 강원지역에 근무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녹취록에는 검찰과 경찰 간부의 실명도 등장했다. 밀항 제보자 P모씨는 금어기에 키조개 1만 개를 불법 채취한 혐의로 최근 구속됐는데, 수사기관의 유착 의혹이 드러날까 봐 자신을 구속시킨 것이라 주장하고 있어 논란이 예상된다.

서해안 중부 ‘중국 밀항’루트 공식화
2008년 12월 9일 낮 1시 15분. 충남 태안군의 마검포항에서 모터보트 한 대가 빠져나갔다. 배에는 낚시꾼 차림을 한 성인 남성 8명이 타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항구를 빠져나간 보트는 100㎞를 넘게 달려 공해상에서 기다리고 있던 중국 어선과 접선했다. 보트에 타고 있던 남성 중 한 명이 재빨리 어선으로 옮겨탔고, 이 배는 곧장 중국으로 빠져나갔다.
공개 수배중이었던 조희팔이 백주대낮에 유유히 밀항에 성공하는 순간이었다. 해경이 조희팔을 태운 배가 지나가는 곳에 잠복하고 있다가 모두 체포하기로 돼 있었지만 작전에 들어가기 직전 상황이 바뀌었다. 당시 태안해경 서장인 K씨가 배치된 경비정을 모두 빼라고 지시했기 때문이었다. 해경 감시망에 구멍이 뚫린 것.
이후 K서장을 비롯한 해경 관계자들과 조희팔 측의 유착 의혹이 제기됐지만 내부 감찰에서 밝혀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김찬경 전 회장도 비슷한 경로
조희팔이 충남 태안을 통해 중국으로 빠져나간 사실이 알려진 뒤 김찬경(59)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도 비슷한 경로로 밀항을 시도하다가 붙잡히는 등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으로 인해 서해 중부 지역이 공공연한 밀항루트로 거론되고 있다. 서해안 항포구가 국내 범죄자들의 중국 밀항 루트로 공식화된 셈이다.
김 전 회장은 2012년 회사돈 200억 원을 챙겨 서해상을 통해 중국으로 몰래 빠져나가려고 했으나 사정 당국이 밀항 첩보를 입수하면서 실패했다.
지난해 세월호 침몰 사고 직후에는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이 서해안을 통해 중국으로 도주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군과 경찰이 합동으로 검문검색을 벌이기도 했다.
서해안 지역은 매일 수백 척의 배가 드나들고, 주변에 인적이 드문 섬과 크고 작은 항구가 많아 눈에 띄지 않게 배에 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태안에 사는 한 어민은 “서해를 통해 밀입국을 하는 사람이 많다는 게 비단 어제 오늘의 얘기는 아니다”며 “서해안은 섬이 많아 은신이 가능하고 중국과의 거리도 짧기 때문에 밀입국 주요 경로로 이용돼 왔다”고 말했다.
전북 군산에 사는 어민도 “서해안에서 중국으로 밀항하는 건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브로커만 있다면 중국 배 갈아타는 건 매우 쉽다”고 말했다.
이어 “범죄자들이 특히 중국 밀항을 선호하는 것은 생김새가 비슷하기 때문”이라며 “조희팔이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현재 공식적으로 국내 수사기관이 파악조차 못하고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같은 장소에서 세 번씩이나 대담한 밀항을 시도했던 조희팔. 조희팔이 서해안에서 밀항을 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야기가 나돌았을 때 조희팔은 서해안과 정반대인 경남 양산에 있었다.
그는 밀항 날짜가 정해진 바로 전날 택시를 대절해 충남 서산으로 이동했다. 한 달 넘게 치밀한 계획을 세워가며 밀항을 도운 조력자만 6명. 승려인 H모씨와 유흥업소 사장인 C모씨, 사설 경호원, 조 씨의 내연녀 등이 차량과 국내 선박 등을 준비했고, 조 씨의 조카인 Y모씨가 중국 어선을 구했다.
당시 이미 수배령이 내려졌지만 대낮에, 변장도 하지 않은 조희팔을 막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당시 조희팔의 밀항을 제보한 P모씨는 “(조희팔을) 자신이 직접 중국 공해상까지 데려다줬다”며 “도저히 밀항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사람이 여유스러웠다”고 말했다.
조희팔은 출항 다음날, 중국 공해상에서 조카가 준비해온 중국 선적 어선에 타면서 결국 밀항에 성공했다.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조희팔이 격렬비열도 인근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고, ‘만세’라고 외쳤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조력자들의 판결문을 보면, 조희팔을 태웠던 선주가 “수배된 사람이 밀항한다”고 해경에 알린 뒤 수시로 출항 계획과 동태를 보고했지만, 해경은 조희팔을 놓쳤다. 해경이 눈앞에서 조희팔 밀항을 도왔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가장 큰 이유다.
송승환 기자 songwin@ilyo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