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철수= ‘새정치’ 대체 ‘혁신’으로 홀로서기
문재인= 안철수는 ‘아웃’, 장외의 박원순과 협력
박원순= 급할 것 없다 …때를 기다린다
[일요서울 | 류제성 언론인] 차기 대권주자들에 선호도를 파악하는 최근의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흥미로운 현상이 나타난다. 야권 주자 가운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나 안철수 전 대표가 실점하면 박원순 서울시장이 득점한다. 반대로 문 대표나 안 전 대표가 득점하면 박 시장은 실점한다. 문 대표와 안 전 대표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세 사람 사이에 3각 시소게임이 벌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런 추세는 야권 대권주자 3인방이 각자도생의 길을 걷게 만들고 있다. 문 대표는 표면적으론 ‘문·안·박(문재인·안철수·박원순) 희망스크럼’을 짜자고 주장한다. 대권주자들이 힘을 합쳐서 야권 전체의 파이를 키우자는 얘기다. 하지만 속으론 희망스크럼이 현실성이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이 때문에 문 대표는 현재 당내에서 자신과 대립각을 세우는 안 전 대표는 일단 배제하고 박 시장에게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당장 현실정치에 뛰어들기 어려워 미래의 경쟁자로 분류되는 박 시장과는 우호 관계를, 현실의 경쟁자인 안 전 대표와는 적대적 관계를 맺겠다는 복안이다.
문 대표는 10월 20일 오전 박 시장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일자리 대장정’의 첫 현장인 서울 용산구 청파로의 나진상가에서 박 시장을 만났다. 문 대표는 “창조경제를 박근혜 정부가 아닌 서울시가 하고 있다”며 박 시장을 치켜세웠다. 두 사람은 사법연수원 동기이기도 하다.
문-박 사법연수원 동기
안 전 대표의 박 시장을 향한 러브콜은 더 애절하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안 전 대표는 박 시장에게 야당 후보직을 통 크게 양보한 바 있다. 야권 관계자 A씨는 “안철수는 박원순에게 일종의 채권을 갖고 있다는 인식을 하는 것 같다”며 “하지만 그건 냉혹한 정치세계를 아직 모르는 아마추어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그럼에도 안 전 대표는 3각 구도에서 박 시장을 자기편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차기 주자 3인방은 10월 28일 모처럼 같은 자리에 나란히 참석했다. 서울 쉐라톤 그랜드 워커힐 호텔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미래포럼 행사다. 3인방이 공식 석상에 모두 모인 건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6주기 추도식 이후 70일 만이다. 이 자리에서 3각 시소게임을 읽을 수 있는 장면이 목격됐다.
안 전 대표와 박 시장은 한 테이블에 앉았다. 가운데 통로를 건너서 문 대표 테이블이 있었다. 입장할 때 안 전 대표는 박 시장과 서로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나 문 대표와는 서로 눈길을 외면했다. 행사가 진행될 때도 안 전 대표는 박 시장과 서로 고개를 기울여 밀담을 나눴다. 간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안 전 대표는 지난 9월에 박 시장을 초청해 공정경제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두 사람이 경쟁적으로 보내오는 러브콜을 즐기고 있다. 어느 한 쪽에 기울지 않고 균등하게 관리하는 모양새를 연출한다. 10월 28일 아시아미래포럼 행사장에서 기념촬영을 할 때는 행사 동안 별 대화를 나누지 못했던 문 대표와 첫 줄에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었고, 안 전 대표는 둘째 줄에 자리를 잡았다.
박 시장은 ‘일자리 대장정’ 첫 행사에 문 대표가 참석한 점을 감안해 마무리 행사인 30일의 ‘잡담’(JOB談) 행사에는 안 전 대표를 초청했다. 문 대표와 안 전 대표 중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있다는 시그널을 보내는 셈이다. 최근 한 언론인터뷰에선 ‘문재인 대표와 안철수 전 대표가 계속 부딪치고 있는데 두 사람 사이에 다리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이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도울 생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대표와 안 전 대표 사이에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만 간다. 문 대표는 연일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여론 확산을 위해 노심초사하고 있지만 안 전 대표는 당의 방향을 무시하고 당 혁신에 초점을 맞춘 마이웨이 행보를 걷고 있다.
10월 27일 두 사람은 전남 여수를 동시에 방문했다. 개별적으로 여수 방문 일정을 잡았는데 공교롭게도 같은 날 같은 지역을 찾게 된 것이다. 문 대표는 여수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였다. 하지만 안 전 대표는 여수시청 기자실에서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당의 혁신을 위해 제안한 3가지 방향과 5가지 제안에 대해 아직 문재인 대표나 지도부가 구체적인 답을 하지 않고 있어 난감하다”며 문 대표를 비판했다.
현재 문 대표는 호남 민심 때문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갤럽의 ‘차기 정치 지도자 선호도’ 10월 둘째 주(13〜15일) 조사에서 문 대표의 호남권 지지율은 8%에 불과했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제1야당의 대표가 한 자릿수 지지율에 머문 건 충격적인 일이다. 특히 문 대표는 박원순 서울시장(31%), 안철수 전 대표(20%)보다 각각 3분의 1, 절반도 되지 않는 지지를 받았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9%)에게도 밀렸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대표가 여수를 찾아 문 대표를 정면비판한 데 대해 호남에서 ‘반(反)문재인’ 정서를 부추기기 위한 ‘기획 방문’ 아니냐는 관측까지 나왔다. 당장 문재인 진영에선 “야당이 똘똘 뭉쳐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을 해야 할 때인데, 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이 ‘자기정치’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불만이 나왔다.
이처럼 미묘하게 전개되는 3각 구도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통합’과 ‘혁신’이다. 문 대표는 혁신보다는 통합에 무게를 둔다. 당 혁신위가 이미 종합적인 혁신안을 내놓은 만큼 새정치연합, 나아가 야권 전체의 통합을 이뤄서 혁신을 완성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영선 전 원내대표가 제안한 ‘통합전당대회’에 대해 긍정적인 입장을 밝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安, 국민들에게 빚이 있다”
반면, 안 전 대표는 통합 보다는 혁신이 우선이라고 주장한다. 당 혁신위가 제시한 혁신안은 외면하고 독자적인 ‘안철수 혁신안’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자신의 혁신안에 대해 문 대표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공개하라고 압박하기도 한다.
안 전 대표의 측근 B씨는 “안철수는 국민들에게 빚이 있다. 국민들이 ‘새 정치’를 열망하며 자신을 정치권에 불렀지만 현실적인 벽에 부딪혀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따라서 지금이라도 당의 혁신을 통해 새 정치의 기반을 처음부터 닦겠다는 각오가 대단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문 대표의 측근 C씨는 “당초 문 대표가 혁신위원장을 맡아달라고 간청했을 때 이를 거절해 놓고 혁신위가 만든 혁신안을 비판하면 독자적인 혁신안을 내놓는 처사를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박 시장은 두 사람 사이에 눈치를 봐야하는 처지 때문인지 통합과 혁신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다. 다음은 박 시장이 최근 한 초청토론회에서 현재의 야권 상황에 대해 한 말이다.
“굉장히 안타까운 상황이다. 총선이 눈앞에 왔는데 분열과 퇴행을 거듭하고 있으면 안 된다. 뭔가 새로운 큰 변화가 있어야 하는데 저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통합이다. 지금 야권 전체가 단결해도 어찌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그리고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 국민들을 감동 줄 수 있는 만큼의 확실한 변화와 혁신이 없어선 안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선 추상적인 어떤 정치적 논쟁이나 대안이 아니라 시민들의 삶에 가까이 가는 그런 정책을 해야 한다.”
‘통합’을 키워드로 내세운 문 대표, ‘혁신’에 집착하는 안 전 대표의 러브콜을 각각 받으면서도 두 사람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밖에 없는 ‘박원순의 고민’을 그대로 읽게 하는 발언이다.
결국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3인방은 새정치민주연합이란 울타리 안에서 서로 견제하고 협력하면서 불안한 동거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각자가 서로의 방식으로 마이웨이를 하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는 대권길목에서 3각 충돌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구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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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제성 언론인 ilyo@ilyoseoul.co.kr